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의 파행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8월 1~12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서 열리고 있는 제25회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가 대한민국 국가 망신의 대형 사고로 기록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폭염에 대한 대비도 문제지만 화장실과 샤워실의 위생과 안전 상태까지 도마 위에 오르고, 일부 해외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새만금 잼버리 야영장에 관한 밈(짤)이 떠돌고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난민촌을 만들어 놓고 전 세계 청소년들을 초대했다”, “한순간에 후진국으로 자유낙하 중이다” 이런 비판의 댓글들이 쏟아졌다.

5일(현지시간) 영국 언론 <가디언>은 16세 아들을 한국으로 보낸 익명의 학부모가 “이 상황을 참을 수 없다”라며 분개하는 인터뷰 기사를 헤드라인으로 실었다. <BBC> 방송은 “영국과 미국 대표단은 단기간에 수천 명을 이동시킬 자금과 자원을 갖췄지만, 그럴 수 없는 나라들도 있다”라고 전했다. <뉴욕 타임즈>는 ‘폭염에 시달린 스카우트들이 잼버리를 일찍 떠나고 있다’는 기사에서 우리 정부의 사과를 촉구하는 잼버리 참가자 부모의 발언을 보도했다.

보도를 통해 소식을 전해 듣는 일반 시민들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새만금에서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길 기원하는 심정인데, 외국에서 자기 자녀들을 우리나라로 보낸 외국 스카우트 대원들의 가족이야 오죽하겠는가. 영국·미국·싱가포르 스카우트 대원들이 조기 퇴영하기로 한 것은 불가피한 결정으로 존중하며, 잼버리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참가자와 학부모들의 불만과 항의 역시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우리 정부가 행사를 제대로 준비하고 운영하지 못해 발생한 사태이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급기야 전북 스카우트 참가자 80명이 영내에서 성범죄 피해를 입은 데 대해 조직위원회가 무성의하게 대응했다고 항의하면서 퇴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전북 스카우트 관계자는 “경찰에 신고했으나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고 피해자 보호와 분리 조치도 없었다”며 “대원들은 ‘무서워서 영지에 못 있겠다’ 말하고 (피해자인) 여성 지도자도 충격이 큰 상태”라고 퇴소 이유를 밝혔다. (※주1)

하지만 조직위와 경찰은 사안을 덮기에 급급했다. 공동조직위원장인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경미한 것으로 보고받았다”고 했고, 최창행 조직위 사무총장은 “문화적 차이”라고 했다. 그러자 “피해자가 사건으로 인한 충격으로 병원에 있는데 어떻게 경미한 일이냐”는 거센 항의가 나왔고, “외국에는 국적을 속이고 샤워하는 것을 훔쳐보는 문화가 있느냐”는 강한 비판이 일었다. 사건을 접수한 전북경찰청은 “가피 분리가 이뤄졌냐”는 질문에 “모른다. 우리는 영내에서 분리됐는지 알 수 없다”고 답했고, “어떤 피해자 보호조치가 있었냐”는 물음에도 답하지 못했다.

정부가 피해자 보호 조처도 하지 않고, 당사자들의 강력한 반발이 있는데도 성범죄 의혹을 경미한 사안으로 덮고 넘어가기 바쁘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행사에서 발생한 우리 국민의 성범죄 피해를 우리 정부가 외면하고 은폐하기 급급하다니, 우리 국민을 우리 정부가 보호하지 않으면 어쩌란 말인가. 그러니 “망한 대회 살려보려고 성범죄까지 덮느냐”는 비난까지 나오는 것이다.

새만금 잼버리에서 드러난 총체적 문제에 대해선 많은 비판이 나오고 있으니, 길게 쓰지 않고 두 가지만 지적하려고 한다. 하나는, 안전 불감증이다. “몇 나라 참가자들만 조기 철수했고 나머지는 괜찮은데 왜 호들갑이냐”는 반응이 그것이다. 잼버리는 세계스카우트연맹이 4년마다 개최하는 청소년 야영 축제로, 전 세계 청소년들이 한데 모여 야영하면서 여러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문화교류와 우애를 나누는 세계 최대의 청소년 국제행사이다. 세계 청소년들이 열악하고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한 오징어 게임을 벌이는 행사가 아니란 말이다.

행사에서 최우선의 고려 요소는 ‘안전’이다. 새만금 잼버리 참가자들이 화장실과 샤워실의 위생 상태가 끔찍해 보건 위협을 느껴 불편과 고통을 호소하고 부상자 속출과 병원 이송자가 늘면서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은 대형 사고이다. 더구나 2023 새만금 잼버리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첫 대규모 국제 청소년 행사’인데,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정부의 안전 불감증이 초래한 끔찍한 파행이 아닐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반대한민국 카르텔’ 음모론이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6일 전북 스카우트 대원들이 대회 조직위의 성범죄 부실 대응을 이유로 잼버리에서 조기 퇴소한 데 대해 “반대한민국 카르텔의 개입”이란 음모론을 들먹였다. 그는 이날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전북 스카우트 퇴소는) 전북도민과 대한민국 국민, 그리고 전 세계인의 뒤통수를 치는 최악의 국민 배신”이라며 “우리나라를 해롭게 하는 데만 혈안인 반대한민국 카르텔의 개입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고 썼다. 그는 “누구의 사주로 그런 반대한민국 결정을 했는지 정치적 배후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면서 야권을 겨냥했다.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궤변이다. 신 의원의 음모론대로 라면, 전북 스카우트에 앞서 먼저 조기 퇴소를 단행한 미국과 영국의 조치는 뭔가. 그것도 “반대한민국 카르텔”(야권)이 배후에서 사주하여 벌어진 일이란 말인가. 신 의원은 “이번 대회가 끝난 후라도, 관계기관은 … 특히 이번 전북연맹이 저지른 최악의 국민 배신행위 뒤에 거대한 반대한민국 카르텔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 철저히 규명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전북연맹에 앞서 미국과 영국의 배신행위부터 그 배후를 철저히 규명하라고 요구해야 맞지 않나.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힌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의 궤변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행사 파행에 따른 분노와 항의의 화살을 다른 데로 돌리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수작이다. 이번 새만금 잼버리를 유치한 것은 박근혜 정부이고 이후 5년간 준비는 문재인 정부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행사를 차질 없이 치러낼 책임은 누가 뭐래도 윤석열 정부에 있다. 행사 운영의 책임이 현 정부에 있다는 건 정부가 뒤늦게 대회 운영에 개입한 뒤로 현장 상황이 개선된 데서도 입증된다.

그런데도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잼버리는 문재인 정부에서 5년간 준비한 행사”라며 민주당과 전·현직 전북도지사 책임을 거론했다. 정부 출범 이후 1년 3개월이 지났는데도 이것도 또 전 정부 탓이라고 책임을 떠넘기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정부의 행정안전부‧여성가족부·문화체육부 등 3개 부처 장관이 공동조직위원장에 포함돼 있는데, 어떻게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단 말인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형 사고가 잇따랐지만, 정부는 단 한 번도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한 적이 없다. (이 정부에게 그런 책임 의식과 양심을 기대한다는 건 산 위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격이다) 벌써 사후 책임을 회피하려고 관련 부처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책임을 묻는다는 건 사적 보복이나 응징을 하자는 게 아니다.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하지 않으면 막을 수 있는 사고(인재)가 반복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윤 정부 이후 대형 사고가 잇따르는 데서 확인되지 않나.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나치 부역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우익의 주장을 반박하며 했던 말이다. 그는 경고했다. “모든 과거의 불행은 반역을 처벌하지 못한 데서 온 것이다. 오늘 또다시 처벌하지 않는다면, 주모자들을 처단하지 못한다면, 커다란 위험이 닥칠 것이다.” (2023년 8월 7일)

※주1. 새만금 잼버리 영지 내에서 “여러 건의 성범죄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CBS 노컷뉴스>는 6일 새만금 잼버리 청소년 활동 지원자의 제보를 인용해 “복수의 스카우트 대원이 샤워장이나 화장실에서 ‘도촬’을 당하는 등의 성범죄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제보자는 “여기(잼버리 영지) 샤워장이나 화장실이 외부에서 노출이 쉬운 개방형에 가깝다”며 “일부 여자 스카우트 대원들이 ‘도촬을 당했다’며 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