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일본의 핵 오염수 투기를 지지하나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미국 국무부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투기 결정을 지지한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25일(현지 시간) 일본의 오염수 투기에 대해 성명을 내고 “미국은 안전하고 투명하며 과학에 기반한 일본의 (오염수 투기) 프로세스에 만족한다”고 지지 입장을 밝혔다. 미국 정부가 일본의 오염수 투기 이후 공식적인 지지 입장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전성도 검증되지 않은 핵 쓰레기를 인류 공동의 하나뿐인 바다에 버리는 행위는 인류에 대한 테러이며 생태학살이다. 핵 오염수를 아무리 물로 희석한다고 하더라도 바다에 버려지는 방사능의 총량은 달라지지 않으며, 두고두고 지구와 인류의 후손들에게 미증유의 피해를 미치고 생태계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을 비롯하여 이른바 강대국이라 불리는 서방 나라들(G7)의 반응이 의아하다. 일본의 핵 오염수 투기에 대해 반대하는 나라가 없고, 미국은 오히려 지지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핵 오염수의 피해가 자국민에게도 미칠 게 빤한데, 왜 그러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저들은 왜 그러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핵폐기물 해양투기의 원조이자 주범 국가들이 바로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이며, 그들이야말로 태평양 바다를 핵으로 수없이 오염시킨 범죄국들이다. 그들이 일본의 핵 오염수 투기를 방관‧지지하는 이유이다.

서태평양에 ‘비키니(Bikini)’라 불리는 섬이 있다. 마셜군도의 한 곳으로 수십 개의 산호로 둘러싸여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이 섬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저주받은 땅이 되어 버렸다. 1946년 7월 1일, 미국은 이 섬에서 핵실험을 단행했다. (※주1) 군 당국은 주민들에게 ‘인류의 행복을 위해 그리고 모든 세계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하는 일이니 ‘일시적으로’ 자리를 비워달라고 말했다. 2년 후에는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약속했다.

비키니섬 원주민들의 운명은 기구하다. 미국은 1946년 핵실험을 위해 비키니섬 주민 167명을 인근의 다른 섬으로 강제이주시킨 뒤 1958년까지 23번이나 비키니 환초에서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실험을 했다. 미국은 11년이 지난 1969년 원주민들의 귀향을 허용하면서 안전을 장담했다. 그러나 갑상선암과 위암 환자가 늘어나더니 폐암 환자에다가 급기야 기형아까지 태어났다. 1974년 비키니 원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또 다시 섬을 떠나야만 했다.

1954년 3월 1일, 비키니섬에서 ‘캐슬 브라보’(Castle Bravo)라 불리는 미국 최초의 수소폭탄 실험이 단행됐다. 히로시마 원폭보다 1000배 큰 규모의 폭발이었다. 이 폭발로 세 개의 섬이 지도에서 사라졌고, 폭 2km 깊이 80m 규모의 분화구가 생겼다. 그리고 엄청난 환경 재앙이 뒤따랐다. 버섯구름이 160km 이상 날아가 바다로 떨어졌고 수백만 톤의 오염된 모래와 산호 부스러기가 주변 섬에 5cm 두께로 쌓였다. 비키니 환초에서 동쪽으로 150km 떨어진 롱겔라프 주민들은 당일 밤 머리카락이 전부 빠지기 시작했고, 심한 구토와 설사 그리고 가려움·화상 증상으로 공포에 휩싸였다. 시간이 갈수록 방사능 오염 구역은 점점 넓어졌다. 롱겔라프 주민뿐 아니라 우트릭, 우젤랑, 리키에프 환초 주민들도 대피해야 했다.

섬에서 동쪽으로 160km 떨어진 태평양에서는 ‘제5 후쿠류마루호’ 선원들이 참치를 잡고 있었다. 선원들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죽음의 재’로 인해 구토를 시작했다. 일주일쯤 지나자 머리카락이 뿌리까지 뭉텅이로 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픔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일본으로 돌아온 선원 1명은 2주 만에 숨졌고, 10여 명이 간암, 간경색, 뇌출혈 등으로 죽었다. 살아남은 이들도 암 등 크고 잦은 병치레와 사산 등을 겪으며 힘겨운 삶을 살았다. 당시 조업하던 선박은 약 500여 척에 선원들만 1만 명 이상이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정부는 단 23명의 선원만을 피폭 환자로 인정했다. 피폭이 심한 다른 선원들의 혈액을 조사하고도 ‘아무 이상 없다’고 거짓 발표했다. (※주2)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정치적 판단이었다.

1958년 미국이 마셜군도에서 핵실험을 중단했으나, 영국과 프랑스가 태평양 지역에 뛰어들었다. 영국이 최초로 핵실험을 한 것은 1952년 10월 2일이었다. 영국은 호주 몬테벨로 섬에서 처음으로 핵실험을 했다. 프랑스는 1960년 2월 13일 당시 식민지였던 알제리 남부 사하라 사막에서 핵실험에 성공했다. 프랑스는 1962년 알제리가 독립하자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모루로아 환초와 팡가타우파 환초 지대에서 핵실험을 계속했다. 프랑스는 폴리네시아에서 1966년부터 1996년까지 핵실험을 193차례 단행했다.

2014년 11월 자 외교부 간행물 ‘태평양도서국 개황’ 등에 따르면, 미국은 1946년 6월부터 1958년 8월까지 마셜군도의 비키니섬과 네이위탁섬에서 67차례의 핵실험을 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대표적인 핵 국가가 태평양에서 벌인 핵실험은 300회가 넘는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핵실험으로 막대한 인명 피해를 양산하고 태평양 일대를 거대한 방사능 오염지대로 만든 환경 재앙의 주범 국가들이다. 이런 원죄가 있으므로 그들은 일본의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에 대해 입을 다물거나 심지어 공개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핵실험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7월 16일 이뤄졌다. 이 핵실험에는 ‘트리니티(Trinity)’라는 암호명이, 폭탄에는 ‘가제트(Gadget)’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미국은 새로 발명한 핵무기를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투하했다. ‘리틀보이(Little Boy)’라는 이름의 이 폭탄은 히로시마 600m 상공에서 폭발했고, 폭발 당시 사망자만 8만 명, 이후 방사능 오염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수십만 명에 달했다. 사흘 뒤인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두 번째 핵폭탄 ‘팻맨(Fat Man)’이 투하됐다. 나가사키에서 첫 넉 달 동안에만 6~8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1945년부터 2016년 1월까지 8개 국가가 총 2055번의 핵실험을 했다. 가장 많은 핵실험을 한 나라는 미국으로 1945년부터 1992년까지 1032번의 핵실험을 했다. 소련은 1949부터 1990년까지 715번의 핵실험을 했다. 세 번째는 1960부터 1996년까지 198번의 핵실험을 한 프랑스였다. 영국은 1952년부터 1991년까지, 중국도 1964년부터 1996년까지 45번의 핵실험을 했다. 지구와 바다를 방사능으로 오염시킨 주범인 이들 5개 나라가 현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 핵 오염 재앙의 주범 국가들이 국제사회의 ‘안전보장’을 위한 상임이사국이라니, 기막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세계 최초로 핵폭탄을 개발했으며, 이를 실제로 사용한 유일한 국가이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1963년 발간된 회고록에서 “원자탄, 그리고 이를 사용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현재 전 세계에 걸친 미국의 군사 공약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핵무기를 세계 패권 유지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사용하는 나라이며, 미국이야말로 세계 최대의 핵 위협 국가이다.

그러니 미국으로선 일본의 핵 오염수 투기에 대해 반대 명분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의 핵 위협에 공동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일본을 편들면서 공개 지지하고 있다. 일본의 핵 오염수 투기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기시다 정권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삼국 군사협력 강화를 공식화한 직후에 핵 오염수 투기를 시작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국은 물론 한국도 일본의 공범이 된 것이다. (2023년 8월 28일)

※주1. 비키니섬 핵실험이 있은 지 나흘 뒤인 7월 5일 프랑스 파리 패션쇼에서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수영복이 등장했다. 기존에 전신을 가리는 수영복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만 가리는 파격적인 수영복이었다. 디자이너들은 이 수영복의 명칭을 ‘비키니’라고 했다. 비키니섬 핵실험의 충격만큼이나 쇼킹한 패션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주2. 2014년 8월 일본 NHK의 ‘수폭실험 60년 만의 진실: 묻혀져 있던 피폭’ 다큐멘터리를 통해 일본 정부가 선원들의 피폭 증거를 숨겨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