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팽개치고 이념 전쟁 앞장선 대통령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에 제일 중요한 것은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이념”이라며 ‘이념’을 들고나왔다. 지난달 28일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에서 윤 대통령은 이념을 반복해 강조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다.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그런 철학이 바로 이념이다. 저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철 지난 엉터리 사기 이념에 우리가 매몰됐고…” 어쩌고 하면서 때아닌 이념 전쟁에 앞장섰다.

이념 대결에 매몰된 나머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투기 비판에 대해선 비과학적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번에 후쿠시마, 거기에 대해서 나오는 거 보라”며 “도대체가 과학이라고 하는 건 (없고),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매도하면서 “이런 세력들과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다”고 강변했다. 오염수 투기를 우려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70% 넘는 국민을 대상으로 윤 대통령은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투기로 ‘해양·수산물 오염이 걱정된다’는 여론이 75%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지자와 보수층에서도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오염수 방류에 우려를 내비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갤럽이 지난 1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후쿠시마 방류로 우리나라의 해양과 수산물이 오염될까 봐 ‘매우 걱정된다’는 응답이 58%, ‘어느 정도 걱정된다’는 응답이 17%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75%가 ‘걱정된다’고 답한 것이다. 반면,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와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는 응답은 각각 10%, 12%였다. 특히 정부·여당에 우호적인 보수층(58%), 70대 이상(57%), 국민의힘 지지자(46%) 중에서도 절반가량이 우려를 표했다.

환경단체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가 1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는 반대 72.4%, 찬성 20.4%로 나타났다. 보수층에서도 61.3%가 반대하는 등 성과 연령, 정치성향을 불문하고 반대 의견이 많았다. 중국의 일본 수산물 수입 금지 조처에 대해서도 ‘잘한 결정’(71.6%)이란 답변이 ‘잘못한 결정’(20.0%)이란 응답의 3배를 훌쩍 넘었다. 우리나라도 일본 수산물 수입 금지를 해야 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대해선 찬성 78.3%, 반대 18.5%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대해 참여하겠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참여(65.2%)가 불참(30.8%)의 2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는 민심을 거스르며 일본의 오염수 해양 투기에 면죄부를 주면서 스스로 정부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그래 놓고선 도리어 국민을 ‘1+1’도 모르는 바보로 만들고 싸우겠다고 대든다. 적반하장으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비는 격이다. 국민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대들며 싸우는 것은 정권이 스스로 제 무덤을 파고 몰락하는 지름길이다.

윤 대통령의 이념 전쟁 독려는 하루도 쉴새 없이 이어졌다. 8월 29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는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대결하는 분단의 현실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은 허위 조작, 선전 선동으로 자유사회를 교란시키려는 심리전을 일삼고 있으며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야당과 진보세력을 겨냥한 이념 대결을 거듭 부추겼다.

지난달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왔다”면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자유사회가 보장하는 법적 권리를 충분히 활용하여 자유사회를 교란시키고 공격해왔다”고 했던 발언의 연장선이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야당과 진보세력을 싸잡아 겨냥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현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사상전은 9월 들어서도 계속 이어졌다.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외교원 60주년 기념식에서 대통령은 “지금 우리의 자유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며 “아직도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미·일 협력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국민의 동의 없이 한일 군사협력을 밀어붙이고 민심의 거센 반발에도 일본의 핵 오염수 투기를 용인함으로써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있는 장본인은 바로 윤 대통령 자신이다. 또한, 난데없이 이념 전쟁을 벌여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낭비하게 만든 당사자도 다름 아닌 윤 대통령 자신이다.

더구나 올해 9월 1일이 어떤 날인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제에 의해 수천 명이 집단 살해당한 간토대학살이 벌어진 지 100주년 되는 날이다. 1923년 9월 1일 간토대지진 직후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 속에 수천 명의 조선인이 자경단과 군, 경찰에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당시 희생된 조선인의 유족들은 일본 정부에 “지금이라도 희생자, 그리고 유족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침묵과 무관심으로 외면하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지난달 30일 조선인 학살에 대한 정부 입장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면 한국 정부가 나서서 강하게 일본 정부를 꾸짖고 사죄와 반성, 책임을 요구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대응은 정반대이다. 이 정부는 한일관계 개선을 내세워 아예 과거사 문제를 덮고 외면하면서 한일 군사협력 강화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리곤 정부의 마구잡이 친일 행보 강행을 비판하는 야당과 언론을 “공산전체주의 세력”이라고 싸잡아 매도하면서 이념 전쟁을 벌이고 있다. 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얻기 위한 이념 전쟁이란 말인가.

지금 경제와 민생은 심각한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 8월 수출입 동향과 통계청 7월 산업활동 동향 등을 보면, 수출은 전년 대비 11개월째 줄고 있고, 산업생산‧소비‧투자가 모두 하락하는 트리플 감소 현상이 올 1월 이후 6개월 만에 나타났다.

올해 정부의 경제성장률 목표치인 1.4%는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코로나 사태와 같은 때를 제외하면 한국 경제 최초의 1%대 성장률이다. 그나마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가뜩이나 부자 감세와 경기예측 실패로 사상 최대의 세수 부족 사태가 예견된 상황에서 정부가 긴축재정을 고집하고 있어 재정의 역할은 기대할 게 없다. 또한, 미국과의 금리 격차와 가계부채 증가 우려 때문에 금리 인하 카드도 쓸 수 없다. 경기 침체 탈출의 돌파구가 없는 것이다.

가계의 고통은 커지고 있다. 소득이 물가 상승을 따라잡지 못해 실질소득이 줄고 있다. 올해 상반기 노동자 실질임금은 355만8천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 줄었다. 상반기 실질임금 하락은 관련 조사를 시작한 2011년 이후 처음이다. 2분기 말 가계대출 잔액은 1천748조9천억 원으로 전 분기 말 대비 10조1천 원 늘었다. 자영업자 ‘9월 위기설’에 대해 정부는 “문제없다”지만,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계속 오름세고 현장의 우려도 여전한 상태다.

윤석열 정부는 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얻기 위해 이념 전쟁을 벌이고 있는가. 정부가 경제와 민생을 외면한 채 이념 전쟁에 몰두하는 저의는 과연 무엇인가. 박노자 오슬로대학 교수가 지적하듯이 “실정을 거듭하고 있는 정권이 이념 문제로 관심을 돌리기 위해” 벌이는 “연막 공작”인가. 박 교수는 지난 2일 자신의 블로그에 “지금 수출이 부진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세계 전체 평균보다 2배나 낮고, 일본 오염수 방류 등 한국 정부가 종범이 된 대형 환경 범죄도 감행되고 있는데, 이 총체적 난국에 대중의 관심을 돌릴 만한 ‘거리’ 하나가 필요했다”면서 “‘홍 장군의 흉상 철거’와 그 철거가 초래한 ‘이념 시비’는 ‘대중의 눈을 돌릴 만한 소재’”라고 썼다. (2023년 9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