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이반은 검찰 독재의 자업자득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추석을 앞두고 민심에 큰 영향을 미친 이슈라면 단연 이재명 대표의 구속을 둘러싼 공방이 첫손에 꼽힐 것이다. 제1야당 대표를 구속하겠다고 검찰이 제출한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지난 9월 21일 국회에서 가결됐는데, 가까스로 1표 넘겨 통과됐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이탈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정의당(의원 6명)이 당론 찬성으로 이 대표 체포에 동의한 것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진보를 자칭하는 정의당의 기회주의 본색이 드러난 것이라고 지난주 칼럼에서 비판한 바 있다.

정부·여당과 검찰은,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면 ‘방탄’ 국회라는 비난이 빗발칠 테고 가결되면 야당의 ‘분열’이라는 후폭풍이 몰아칠 테니, 꽃놀이패라고 계산했을 터다. 추석을 앞두고 민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테니 ‘이런 호재가 어딨으랴’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게다. 실제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뒤 더불어민주당은 원내지도부가 사퇴하고 ‘분열’의 내홍에 빠져 정국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럴싸해 보였던 검찰의 꼼수가 오판으로 판명이 나는 데는 채 1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법원은 지난달 27일(추석 연휴 시작 전날)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대장동으로 시작했다가 ‘종목’을 바꿔가며 이 대표에 대해 약 400회 압수수색, 여섯 번의 소환조사를 벌였고, “권력형 지역토착비리” 운운하며 최대 무기징역이 선고돼야 한다고 허풍을 쳤으나 졸지에 낭패를 당했다. 이로써 1년 반 넘도록 먼지털기식 ‘정치 수사’를 지휘해온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기고만장은 여지없이 파탄 나고 말았으며, 추석을 앞두고 거센 여론의 역풍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 장관은 지난 2월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이재명 대표가 대장동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내용을 반박한 것을 두고, “바로 그 이야기를 판사 앞에 가서 하면 된다. 만약 이 대표 말씀처럼 (검찰 수사가) 다 조작이고 증거가 하나도 없다면 대한민국 판사 누구라도 100% 영장을 발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 장관이 당시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면, 이 대표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은 “검찰 수사가 다 조작이고 증거가 하나도 없다”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구속영장 기각 이후 한동훈 장관과 검찰이 보인 반응이 가관이다. 한 장관은 “죄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통상 사건에서도 중간에 영장이 기각되는 것을 많이 보지 않았느냐. 구속영장 결정은 범죄 수사를 위한 중간 과정일 뿐이다”고 말을 바꿨다. 철면피한 궤변이 아닐 수 없다. 검찰 역시 자성은커녕 법원 결정이 “정치적 고려가 있는 것 아닌지 우려한다”고 반발했다. 일말의 사과는커녕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드는 격으로 뻔뻔하기 그지없다.

한 장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건 사필귀정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무위원, 공정한 수사를 지휘해야 할 법무부 수장이 ‘정치 수사’를 했고 그것이 명백하게 실패로 판명이 났다. 그러면 그 결과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게 마땅하다. 자진 사퇴와 파면 촉구는 당연한 요구이며, 사퇴도 파면도 안 하면 국회에서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도 결코 지나친 요구가 아니다. 탄핵은 행정부의 권력 오남용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해 헌법이 입법부에 부여한 권한이다.

한 장관의 책임을 묻는 것과 함께 책임을 물어야 할 사람들이 또 있다. 검찰의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빤히 알면서도 그 수작에 놀아난 일부 국회의원들 말이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설령 이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검찰 수사가 너무나 편파적이고 부당하다는 건 누가 봐도 명백했다. 그런데도 한 장관의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것은 변명의 여지 없는 ‘이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이 『사기(史記)』에서 말했듯이,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물론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이 ‘방탄’용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으므로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할 순 있다. 하지만 검찰이 무소불위의 특권을 휘두르면서 제1야당 대표를 구속하겠다고 수사권을 남용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서 이런 주장을 펴는 건 잘못이다. 윤 정부에 대해 ‘검찰 독재’라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한 장관이 지휘하는 검찰의 편파 수사와 기소권 남용이 유례없이 심각한 상황이다. 매사에 선후가 있는 법이다. 심각한 불신과 비판의 대상인 검찰의 권력 남용에 제동을 걸고 견제하는 것이 우선이며,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폐지 논의는 그다음의 일이다.

본론인 추석 민심으로 돌아오자. 이재명 대표의 구속을 둘러싼 공방은 한동훈 장관과 이 대표의 대립으로 표현됐으나, 그 본질은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승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대결이었다. 승부의 결과는 전자의 완패, 후자의 완승이었다. 그 결과는 곧바로 추석 민심에 반영될 테고, 올해 추석 민심이 특히 중요한 건 내년 4월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아서다. 추석 민심을 보면 다음 해 총선 승자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명절 기간에 지역과 세대가 섞이는 민족 대이동을 통해 가족과 친지가 만난 자리에서 확인된 민심이 6개월가량 남은 총선 여론의 바로미터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최근 총선 결과를 복기해 보자.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둔 2007년 9월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한나라당 47%, 대통합민주신당 16%였고, 총선 결과 한나라당(153석)이 이겼다. 2012년 19대 총선은 직전 추석 때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한나라당(36%)이 민주당(29%)을 앞섰고, 총선 결과 한나라당에서 당명을 바꾼 새누리당(152석)이 승리했다. 2016년 20대 총선은 직전 추석 때 갤럽 조사에서 새누리당(41%)이 민주당(21%)을 앞섰으나, 총선 결과는 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으로 민주당이 신승했다. (※주) 2020년 21대 총선은 갤럽의 직전 추석 조사에서 민주당 38%, 자유한국당 24%였고, 총선 결과는 민주당(180석)의 압승이었다.

올해 추석 연휴 직전 정당 지지율 조사 결과를 보자. 9월 25~26일 엠브레인·YTN 조사는 민주당(34.4%)이 국민의힘(27.0%)을 오차범위를 벗어난 차이로 앞섰지만, 같은 날 실시한 코리아리서치·MBC 조사는 국민의힘(34.8%)이 민주당(34.3%)보다 0.5%포인트 높았다. 9월 25~27일 한국리서치·KBS 조사는 민주당(36%)이 국민의힘(33%)보다 3%포인트 높았다. 9월 26~27일 실시한 리얼미터 조사는 민주당(47.6%)이 국민의힘(36.2%)을 크게 앞섰다.

내년 총선에 대한 조사에선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9월 25~26일 엠브레인·YTN 조사는 ‘내년 총선에서 어떤 정당에 투표할 것인지’를 묻자, 민주당(38.9%)이 국민의힘(29.8%)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같은 날 코리아리서치·MBC 조사는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53.4%,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38.9%였다. 9월 25~27일 한국리서치·KBS 조사는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52%,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39.1%였다.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추석 민심에서 나타난 내년 총선 여당 심판론 우세는 자업자득의 결과이다. 민생 문제 해결에는 관심 없고 오직 야당 탄압에만 여념 없는 정부‧여당을 좋게 볼 리 없다. 민의를 대변해야 할 국민의힘은 용산의 눈치만 살피고, 대통령이 직할하는 검찰이 정치를 대행하고 있는 현실이다. 정치 실종과 검찰 통치에 대한 반발과 저항은 정부‧여당에 대한 민심 이반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내년 총선의 전초전으로 불리는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벌써 민심 이반이 확인되고 있다. 검찰 독재의 자업자득이다. (2023년 10월 2일)

※주. 20대 총선 직전 공천 파동으로 새누리당은 자멸하고 말았다. 당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친박(親박근혜)·비박(非박근혜) 공천 파문을 일으키고, 김무성 당 대표는 ‘옥새 들고 나르샤’로 불리는 황당 공천 활극을 전개했다. 당 대표가 여섯 군데 지역 공천장에 당인(黨印)을 찍지 않고 부산으로 내려가 버리는, 한국 정당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