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누가 심판받을까?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사전투표가 6~7일 이틀 동안 진행된 결과 전체 선거인 50만603명 가운데 11만3313명이 참여해 투표율이 22.64%로 최종 집계됐다. 역대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를 통틀어 사전투표율 최고치다. 지금까지 재보궐선거 중 가장 높은 사전투표율은 2021년 4·7 재보궐선거의 20.54%였다. 지방선거 중 가장 높은 사전투표율은 지난해 6·1 지방선거 때 20.62%였다.

국민의힘은 높은 사전투표율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7일 강서구 화곡동 유세 후 기자들과 만나 “16년 동안 민주당 구청장이 강서 개발에 아무 관심이 없었던 것 아닌가 할 만큼 낙후돼 있다”며 “(높은 사전투표율은) 민주당에 대한 심판 의지가 확고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 열기가 꼭 투표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독려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주호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은 “민생을 외면하고 정쟁만 일삼으며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만 옹호해 온 민주당을 향한 심판의 열기가 투표장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논평했다. 김태우 국민의힘 강서구청장 후보 측도 논평을 통해 “역대 최고의 재·보선 투표율은 강서구민의 재개발 열망과 민심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착각도 유만부동이지, 집권 여당의 민심 왜곡과 억설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지난주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추석을 앞두고 민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슈는 단연 이재명 대표의 구속을 둘러싼 공방이었으며, 그 결과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완패였다. 그 결과가 추석 민심에 반영돼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우세하다는 건 여러 여론조사 결과로도 뚜렷이 확인되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에서 “민주당 심판” 운운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틀 뒤면 선거 결과가 나올 텐데, 그때도 정신승리에 취해 있으려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되기 전날인 5일 발표된 한 여론조사 결과도 이전의 다른 조사 결과와 다르지 않았다.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2~3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에게 ‘이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어느 정당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한 결과 민주당 51.3%, 국민의힘 29.9%로 집계됐다. (※주)

국민의힘에서는 ‘샤이 보수’(보수성향을 갖고 있지만 여론조사에서는 드러내지 않은 숨은 보수) 결집 효과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국민의힘 강서을 당협위원장인 김성태 전 의원은 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여론조사로 잘 잡히지 않는 이른바 샤이 보수 유권자”가 존재한다며 선거 분위기가 국민의힘에 유리해졌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여론조사로 잘 잡히지 않는 이른바 샤이 보수 유권자는 물론이고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중도 부동층, 이런 유권자들까지 야당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3년 전인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 완패했던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이 마지막까지 기대했던 것이 ‘샤이 보수’였다. 그때 황교안 당 대표는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당 자체 여론조사를 해보면 시중 여론조사 기관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고 있다”며 “구체적인 수치는 말할 수 없지만 숨겨진 표가 많이 있다. 숨어있는 표가 투표 현장에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이진복 당 총괄선거대책본부장(현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작게는 4%, 많게는 8%까지 생길 수 있다고 본다”며 “샤이 보수가 선거장에 나올 경우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 오차범위 내에서 경합하는 지역들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당시 미래통합당에선 숨은 보수층이 대거 투표장에 나가 보수정당을 찍을 것이므로 여론조사에서 10%포인트가량 밀리더라도 선거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샤이 보수’는 없었다. 수도권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압승을 거뒀다. 서울에서 전체 49석 중 41석을, 경기도에서 59석 중 51석을, 인천에서는 13석 중 11석을 각각 차지했다. ‘샤이 보수’가 있었다면 도저히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다. (지역구와 비례 의석 합산 전국 집계 결과: 더불어민주당 180석, 미래통합당 103석)

당시 21대 총선은 거대 양당이 정면으로 격돌하는 양상의 선거여서 양측 지지층이 대거 결집했으며, 그런 상황에선 ‘샤이 보수’가 있을 공간이 없었다. 현재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일개 기초단체장 선거가 아니라 마치 지난해 대선의 연장전처럼 거대 양당이 사활을 걸고 치열한 선거전을 전개하고 있다. 양당 지도부가 총출동해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으며 그 결과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총력전인데, 표가 어디 숨어 있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애초에 국민의힘이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후보로 재공천해 출마시킨 것 자체가 무도하기 짝이 없는 도발이었다. 형이 확정돼 직을 상실함으로써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를 다시 후보로 출마시키는 건 우리 정치사에 있어 본 적이 없는 엽기적 행각이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런 무도한 엽기적 행각은 민심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고 준엄한 심판을 받게 마련이다. 권력에 도취한 나머지 법치도, 정치도, 국민도 모두 무시하는 이런 뻔뻔하고 오만무례한 안하무인의 도발을 대체 어느 국민이 용납한단 말인가?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지역 일꾼을 뽑는 기초단체장 선거지만 지역 현안보다는 정부·여당과 야당에 대한 평가가 표심을 좌우하는 선거이다. 그래서 내년 4월 22대 총선을 앞두고 현재 서울과 수도권 민심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 선거이기도 하다. 나아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치러지는 단체장 선거이자 추석 민심이 반영되는 선거여서 내년 총선 전망을 예측해 볼 수 있는 전초전이기도 하다. 추석 민심을 보면 다음 해 총선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게 정가의 속설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과연 어느 당이 심판받을까?

3주 전 칼럼(<보궐선거의 원인 제공자를 후보로 재공천한 후안무치>)에서 지적했듯이, 이번 강서구청장 보선은 ‘윤 대통령에 의한, 윤 대통령의 선거’이다. 윤 대통령은 유죄 확정판결 3개월도 안 된 김 후보를 8·15에 특별사면했고, 김 후보는 사흘 뒤 강서구청장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뒤 곧바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후보 공천을 꺼리고 주저하는 당내 의견을 정리해 선거 출마를 밀어붙인 배후의 힘도 다름 아닌 대통령실이었다. 따라서 선거 승패에 따른 책임도 당연히 윤 대통령의 몫이다.

게다가 선거전이 한창 전개되는 와중에 윤 대통령은 7일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임명했다. 특히 신 장관의 경우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이견으로 보고서 채택 자체가 불발됐음에도 국회 재송부 요청 기한(이틀)인 6일이 지나기 무섭게 주말 임명을 강행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인사청문회 결과와 상관없이 임명한 장관급 인사가 벌써 18명으로 늘었다. 지난 5일 국회 청문회장을 무단이탈한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임명을 강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국회 청문회를 무력화하고 비판적인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는 채 오만하고 독선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함으로써 민심은 더욱 나빠지고 선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게 틀림없다.

윤 대통령은 과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까? 보다 정확히 말하면,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선거 결과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후보자와 그 후보를 공천하고 선거운동을 전개한 당(국민의힘)이 지게 되지만, 최종적인 책임은 윤 대통령이 져야 마땅하다. 국민의힘이 대통령의 꼭두각시 사조직이 아니라 집권을 책임지고 있는 공당이라면 선거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마땅히 책임을 따져 물을 수 있어야 정상이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선거 결과 못지않게 선거 이후 정부와 여당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2023년 10월 9일)

※주. ‘유리한 정당이 없다’ 11%, ‘잘 모른다’ 7.8%. 무선 100% 자동응답조사(ARS) 방식 조사. 표본 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