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와 팔레스타인의 저항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지난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을 감행했다. 하마스가 ‘알-아크사 폭풍’이라고 칭한 대규모 작전이었다. 15일 현재 이스라엘 측이 집계한 사망자는 1500여 명이며, 150명 이상이 인질로 붙잡혀 가자 지구에 억류된 상태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전시 상태를 선포하고 가자 지구에 일주일 넘게 폭탄 6000발 이상을 퍼부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15일 저녁까지 집계된 누적 사망자가 2670명이라고 밝혔다. 양측의 사망자를 합하면 4100여 명에 달한다. 끔찍한 참상이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과 지중해 사이에 위치하며, 남쪽으론 이집트와 짧게 국경을 맞대고 있다. 직사각형으로 생긴 좁은 지역이며 면적은 약 365㎢로 세종시(465㎢)보다 조금 작다. 약 220만 명이 거주하며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 중 하나다. 주민의 절반이 실업자다. 더욱이 2007년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있어 이스라엘 정부 발급 통행증 없이는 출입이 불가하고, 수도·전기·식량의 유입도 통제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창살 없는 감옥’으로 알려진 좁은 땅 안에 갇힌 가자지구 주민들은 17년째 잔혹한 봉쇄를 당하고 있다.

그런데 국제 뉴스는 하마스의 잔혹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국 <타임>지는 10일 1면에서 “아기들의 목이 잘렸다”는 헤드라인을 내보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공격 당시 어린아이 40명을 참수했다는 보도였다. <더 선>과 <데일리메일>, <데일리텔레그래프> 등도 1면에 같은 주장을 내보냈다. 미국 <폭스> 뉴스와 <CNN> 등도 가세했다. 탈 하인리히 이스라엘 총리 대변인은 11일 “가자지구와 맞대고 있는 크파르 아자에서 아기들의 머리가 참수된 채로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11일 “테러리스트들이 영유아를 참수하는 사진을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우리 언론도 외신을 인용해 관련 뉴스를 쏟아냈다.

하지만 어린아이 참수의 증거는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은 ‘가짜 뉴스’로 밝혀졌다. 백악관은 ‘증거 사진’을 봤다는 바이든의 발언을 철회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바이든이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의 주장과 언론 보도에 근거해 그렇게 주장했다고 해명했다. 팔레스타인 언론인이자 시인, 작가인 모하메드 엘 커드는 미국 비영리 언론 <데모크라시나우>와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허위정보가 SNS와 언론에 넘치는 현상에 대해 ‘이슬람 혐오 정서이자 이스라엘 정권의 PR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예컨대 아무렇지 않게 인용되고 있는 “하마스의 기습 공격”이란 표현은 맞는 말인가? 이스라엘이 아무런 도발도 안 했는데, 하마스가 선제공격을 가해 충돌이 벌어졌고 양측에서 수천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말인가? 미국과 서방 언론의 주류 언론들은 그런 것처럼 보도한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1948년 이래 75년 동안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만행을 저질러 왔는가에 대해선 철저히 함구하면서 오로지 하마스의 비인도적인 측면만을 부각하고 규탄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간단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선후 관계만 따져봐도, 서방 언론의 하마스에 대한 일방적 비난과 규탄이 얼마나 편향된 시각인지 금방 드러난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을 선언했고 하마스가 결성된 때는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뒤인 1987년이다. 다시 말해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땅을 강제 점령하고 나서 한 세대 뒤에야 하마스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75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산물인 것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의 시작이자 근본 원인이다.

미국의 석학 노엄 촘스키 교수가 ‘현존하는 이스라엘 지식인 가운데 가장 양심적인 사람’으로 평가한 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이자 인권운동가 일란 파페(1954년~)는 “하마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들이 이스라엘 점령에 대해 저항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그는 이스라엘 사회의 눈엣가시가 되어 대학교수직에서 파면되고 살해 협박에 시달렸다.

파페는 저서 『팔레스타인 비극사』(유강은 역, 열린책들, 2017년)에서 이스라엘의 건국을 ‘인종청소’라는 시각에서 파헤쳤다. 그가 밝힌 데 따르면,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당시 ‘인종청소’ 계획인 ‘플랜 달렛’(Plan Dalet)의 이름으로 팔레스타인 마을을 공격해 살인, 방화, 약탈, 강간을 자행했다. 1947년부터 1949년까지 530개의 마을이 파괴되고, 1만 5천여 명이 학살당했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85%가 난민이 되었고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땅의 78%를 점령하고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이스라엘 건국이 팔레스타인에게는 대재앙, 즉 ‘나크바’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매년 5월 15일을 ‘나크바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해 세운 나라이다. 태생이 이런 만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인종 분리와 차별 정책은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 백인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 공화국 극우 백인정권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정책) 못지않게 심각하다. 얼마나 지독한가 하면, 이스라엘인은 팔레스타인인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다. 2004년 ‘R대위’로 알려진 이스라엘 장교는 등교 중이던 13세 팔레스타인 소녀를 사살했다. 약 20여 발의 확인사살까지 했고, 이 장면이 비디오카메라에 찍혀 이스라엘 TV를 통해 전국에 방송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군사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정부로부터 배상금까지 받아냈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인에게 무슨 짓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최대의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가자지구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반복적인 공중 폭격과 기습 공격, 군사 작전과 집단적인 처벌에 시달리며 17년간 잔혹한 봉쇄를 당해 왔다. 경찰과 군인이 팔레스타인인을 체포, 폭행, 살해하는 건 예사이다. 올해만 하더라도 이스라엘군은 2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을 서안지구에서 살해했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취재하는 기자들과 팔레스타인인을 위해 투쟁하는 외국인 활동가마저 살해했다. 팔레스타인인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의 지원과 부추김을 받은 정착민 폭도들과 극우 갱단들은 팔레스타인 마을과 집을 불태우고, 민간인을 린치하고 죽이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는다.

이스라엘 국방장관 요아브 갈란트는 지난 9일 가자지구에 식수, 식량, 연료, 전기를 차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인간 짐승”(human animals)이라고 부르면서, “우리는 인간 짐승과 싸우고 있으며 그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도발적인 발언을 했다. 즉 팔레스타인인은 ‘개돼지’이므로 거기에 걸맞게 대우하겠다는 모욕을 준 것이다. 과거 히틀러 나치는 유대인들에게 “나는 더러운 유대인 돼지다”라고 말하라고 강요했다. 과거 ‘돼지’라고 모욕을 당했던 유대인이 오늘은 팔레스타인인을 ‘인간 짐승’이라고 모욕하고 있다. 참극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의 75년에 걸친 점령과 학살에 맞서 목숨 걸고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의 투쟁을 간단히 ‘테러’라고 단정하고 비난할 수 있을까? 매일 이스라엘에 의해 죽어 나가는 팔레스타인의 비극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던 주류 언론들은 팔레스타인이 저항이라도 하는 날에는 요란법석을 떨면서 일제히 비난과 규탄을 쏟아붓는다. 이스라엘의 피해에 초점을 맞추며, 팔레스타인의 ‘테러’를 규탄하는 공식에 맞춰서다. 자유와 인권은 오직 이스라엘만의 권리이며, 팔레스타인에겐 단지 복종과 굴욕의 의무만 있다는 식이다. 아무리 그렇게 떠든다고 한들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의 끔찍한 참상이 은폐될 수 있을까? 하늘 아래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다. (2023년 10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