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36년, 이스라엘 75년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1947년 11월 UN은 팔레스타인 분할을 다룬 결의안 181호를 통과시켰다. 절대적으로 유대인에게 유리한 결정이었다. 유엔은 56%에 달하는 땅을 유대인에게 주기로 했고, 비옥한 지역이 유대인에게 주로 할당됐다. 유대인은 올리브 농장과 곡창 지대 80%, 아랍인 공장의 40%를 차지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강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1948년 기준 인구의 94%가 팔레스타인인들이고 유대인은 6%에 불과했다. 팔레스타인 원주민에 대한 ‘인종청소’가 시작돼 1947년부터 1949년까지 530개의 마을이 파괴되고 1만 5천여 명이 학살당했다. 최소 7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자기의 땅에서 추방당했으며,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의 78%를 점령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세워졌고, 팔레스타인은 전쟁의 ‘화약고’로 변했다.

아랍권 국가 정상들이 21일(현지시간) 평화 정상회의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비난했다. 이날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회의에서 요르단 압둘라 2세 국왕은 “아랍 세계가 듣고 있는 메시지는 팔레스타인인의 생명이 이스라엘인의 생명보다 덜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또한 “지금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무자비한 폭격은 잔인하고 비양심적이고, 갇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좌제”라며 “이는 국제 인도주의법을 분명하게 위반한 전쟁범죄”라고 이스라엘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바레인 국왕도 “팔레스타인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중동 안정은 있을 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같은 회의에서 유럽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두둔했다.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무장관은 “어떤 것도 테러를 정당화할 수 없다”며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도 “지난 몇 주 동안 벌어진 고통의 최종적인 책임은 하마스에 있다”며 “이스라엘에 끔찍한 테러를 가하고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것은 하마스”라고 지적했다.

주지하듯이 중동은 과거 프랑스와 독일이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며, 옛 식민지 종주국들은 현 식민지 점령국 이스라엘 편을 들고 있다. 식민지 종주국의 논리에 따르면 피지배 민족의 독립운동은 점령국의 입장에선 폭동이고 테러로 규정된다. 일본제국주의의 입장에선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는 테러리스트이고, 일본은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라고 강변할 터다. 제국주의는 철저히 한통속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8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간단하다. 이스라엘 국민에게, 또 모든 세계인에게 미국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미국은 이스라엘이 자국에 대한 공격에 대응함에 있어,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타야휴 총리는 “(미국이)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언제나 이스라엘 편에 서준 것에 감사한다”라고 화답했다.

앞서 미 국방부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지 하루 만인 지난 8일 제럴드 포드 항모전단을 동지중해에 배치했고, 14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항모전단을 추가로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미 국방부는 17일 미 해병대를 포함한 약 2,000명의 병력을 동부 지중해로 이동시켰고, 21일 미사일 방어 체계인 사드 체계 1개 포대와 패트리엇 대대들을 이 지역 곳곳에 추가로 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겠다는 시오니즘(Zionism)이 본격화된 1946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이 이스라엘에 제공한 군사원조는 무려 2,600억 달러(351조 원)에 달한다. 특히 2016년에는 이스라엘과 양해각서를 체결해 매년 38억 달러(5조 원)의 군사원조를 제공해오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올해 추경예산을 편성해 이스라엘에 140억 달러(19조 원)에 달하는 추가 군사원조를 의회에 요청하기로 했다. 이 예산안이 통과되면 올해 미국이 이스라엘에 제공하는 군사원조는 178억 달러(24조 원)에 달하게 된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자체 국방비 242억 달러(33조 원)를 더하면 이스라엘의 올해 실질 군사비는 420억 달러(57조 원)가 된다.

미국 정부의 이스라엘에 대한 일방적 지지는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바이든 대통령과 요르단·이집트·팔레스타인자치정부(PA) 간 4자 정상회담이 전격 취소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바이든 대통령의 18일 이스라엘 방문을 앞두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10월 11~17일 요르단·카타르·바레인·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이집트 등을 넘나들며 4자 정상회담 합의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아랍 국가들이 예정됐던 정상회담을 거부해 물거품이 되었고, 미국은 체면만 구기고 말았다.

현재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군 진입이 임박하자 진퇴양난의 곤경에 처해 있다. 가뜩이나 내년 11월 차기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후보로 유력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지지율이 뒤지고 있어 재선에 적색등이 켜져 있는 상태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1979~80년 이란 인질 사태(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1979년 11월 4일부터 1981년 1월 20일까지 444일 동안 미국인 52명이 이란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인질로 억류되어 있던 사건)의 여파로 재선에 실패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비슷한 상황이다.

팔레스타인 비극의 본질은 명확하다.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시오니즘을 앞세운 이스라엘의 영토 정복과 팔레스타인 원주민 학살과 추방으로 시작되었다. 자기의 땅에서 원주민으로 살아온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제 점령과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학살)가 ‘나크바’(대재앙)의 근원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강대국(과거 식민지 종주국)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지원이 그 배후이다. 이스라엘이 침략국이고 가해자이며 팔레스타인은 식민지이고 피해자이다.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한 해는 한반도의 남과 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각각의 단독 정부가 수립된 해이다. 한반도의 일제강점기는 36년이었지만,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제 점령은 올해로 75년이 넘는다. 그런데, 일제의 식민지 지배 36년을 경험한 대한민국은 이스라엘의 75년 식민지 지배에서 고난받는 팔레스타인의 편에 서지 않고 되레 이스라엘을 편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관련 긴급회의를 열고 하마스를 규탄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 회의에서 “하마스 무장세력에 의한 민간인 무차별 살상과 인질 사태를 국제인도법을 명백히 위반한 테러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규탄한다”라고 밝혔다. 앞서 윤 대통령은 이날 척 슈머 미국 민주당 원내대표 등 방한 중인 미국 상원의원 대표단을 만나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무차별적 공격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뿐인가. 국민의힘이야 말할 것도 없고,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하마스의 침공을 규탄하면서 “민간인에 대한 살상 행위와 납치 등 비인도적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홍 원내대표는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며 “이로 인해 중동평화가 위협받고,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특히 기존과 다른 공격 양태와 잔혹성이 큰 충격을 주고 있다”며 하마스를 규탄했다.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와 전쟁범죄는 철저히 외면하고 침묵한 채 피억압 팔레스타인의 저항만 규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안타깝고 유감스럽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으면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라고 했던 알베르 까뮈(1913.11.7.~1960.1.4. 프랑스의 작가, 언론인, 철학자)의 경구가 새삼스럽다. (2023년 10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