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의 무책임한 졸속 정책 남발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정부와 여당이 5일 비공개 고위 당정협의회를 갖고 6일부터 내년 6월 30일까지 주식 공매도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전에 공매도가 금지된 것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등 세 차례다. 이와 같은 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정부가 공매도 전면 금지를 내놓는 건 이례적이다.

공매도란 특정 종목의 주가가 하락할 것을 예상해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실제 주가가 내려가면 주식을 싸게 사서 갚아 이익을 내는 투자기법이다. 실적이 과대 평가된 기업이나 부실기업의 주가 거품을 줄이고 시장 신뢰를 높이는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가 거대 자본보다 개인투자자들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불만을 제기하면서 제도 개선을 요구해 왔다. 최근 외국계 투자은행(IB) 2곳의 불법 공매도가 적발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 금지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에 적발된 외국계 IB의 불법 공매도 같은 문제점도 있지만 자본시장 전체적으로 보면 순기능이 더 크며, 금융당국은 ‘공매도는 세계시장 표준’이라는 입장이다. ‘불법’ 공매도에 대해선 감독과 처벌을 엄격히 해 시장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과징금·과태료 등에 그치는 불법 공매도 처벌을 대폭 강화할 필요도 있다. 불법 공매도 세력에 대해 이익 환수는 물론 강력한 형사처벌까지 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제도적 허점이 있다면 개선·보완해야 한다. 하지만 공매도 관련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 없이 공매도 자체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당국의 공매도 금지는 국제표준에도 맞지 않고 그간에 금융당국이 표방해온 정책을 번복한 것으로 일관성도 없다. 2025년까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통해 금융시장이 도약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30년 숙원 사업이다. 한국은 현재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종목에만 공매도를 허용하고 있지만, 국내 증시의 선진국 지수 편입 등을 위해서는 공매도 전면 허용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요건이 공매도 전면 허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공매도 전면 금지 카드를 꺼낸 것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으며 당국의 정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따름이다.

금융당국이 입장을 번복하면서 공매도 금지를 내건 까닭은 국민의힘이 강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외국계 IB의 불법 공매도 적발을 계기로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여당이 이에 편승해 개인투자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정치 논리를 동원해 금융당국을 압박한 것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집권 여당이 수도권 표심을 얻기 위해 김포의 서울 편입 이슈를 터뜨린 데 이어 이번엔 개인투자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공매도 금지라는 포퓰리즘 정책을 깜짝 발표한 것이다.

이에 앞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달 30일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 편입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에선 “김포에서 불을 댕겨 고양 파주로 이어지는 한강 벨트에서 승부를 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등 ‘총선용 의제’임을 숨기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2020년 총선에서 경기도 총 59개 의석 가운데 7석을 얻어 완패했었다. 게다가 지난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하며 내년 총선의 수도권 위기론이 확산되자 서울 편입론을 띄워 부동산값 상승을 기대하는 심리를 자극해 보겠다는 속셈이다.

급조된 서울 편입론은 투기판의 대명사인 ‘떴다방’을 연상시킨다. 김포시가 서울에 편입되려면 편입안 제출, 경기도·서울시의 동의, 국회의 특별법 의결 등을 거쳐야 가능하다. 도저히 총선 전에 매듭지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럼에도 김기현 대표는 “김포 서부권이 잘만 하면 제2의 판교가 될 수 있다”고 바람을 잡았다. 국정을 책임진 여당의 대표가 절차와 과정도 무시한 채 떴다방 투기꾼처럼 무책임하게 선동하는 꼴이 한심하다.

이미 서울은 포화 상태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면적은 국토의 11%밖에 되지 않지만 인구는 51%에 달한다. 가뜩이나 과밀한 수도권 안에서 포화 상태의 서울 면적을 늘리는 것이 과연 발전 방안이 될 수 있는가. 서울 편입을 확대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면 김포시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지방을 전부 서울로 편입하면 되지 않나. 서울과 수도권은 이미 과밀화에 따른 부동산값 폭등, 교통난, 출생율 저하 등 온갖 심각한 문제가 쌓여 있다.

지방을 고루 발전시켜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산업과 인구를 분산시키는 것이 균형발전이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지방은 빠르게 소멸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지방소멸위험지역의 최근 현황과 특징’에 따르면, 2023년 2월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에서 소멸위험 지역은 118곳(52%)이고, 소멸 고위험 지역은 51곳(22%)이다. 게다가 소멸 고위험 지역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2010년엔 없던 소멸 고위험 지역이 2020년 22곳에서 3년 만에 2.3배 증가하였다. 전북은 기초자치단체 14곳 중 전주시를 제외한 13곳이 소멸 위험 지역이다. 강원(88.9%), 경북(87.0%), 전남(81.8%), 충남(80.0%)의 기초자치단체 80% 이상이 소멸 위험 지역이다. (지방소멸위험지수는 만 20~39세 여성 인구를 만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이다. 지수 1.0~1.5 미만 정상지역, 0.5 미만 소멸위험 지역, 0.2보다 미만 소멸 고위험 지역.)

한국은행 조사국이 지난 2일 발표한 ‘지역 간 인구 이동과 지역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수도권 비중은 2020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 나라 가운데 가장 크다. 2015~2021년 수도권 인구 증가의 78.5%는 상경한 지방 청년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지방의 인구 감소도 70~80%가 청년이 떠나서였다. 청년이 빠져나간 지역 경제는 출산이 줄어 인구 감소가 가속화하고 청년층 노동 공급 감소는 기업 유입을 더 어렵게 한다. 전국 생산에서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처음으로 넘어선 2015년 이후 이런 흐름이 강해졌다.

한은 보고서는 “비수도권의 청년 인재 유출과 수도권으로의 집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하려면 지역사회의 청년 이탈을 막고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청년층의 지방 이동을 촉진할 수 있는 정책이 시급하다. 한은 보고서는 비수도권 몇 개 거점도시에 산업과 인프라를 몰아주는 전략이 수도권 인구 집중을 막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제안한다.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도 지난 1일 ‘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종합계획은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을 4대 ‘초광역권’(충청권, 광주·전남권, 대구·경북권, 부산·울산·경남권)과 3대 ‘특별자치권’(강원권·전북권·제주권)으로 묶어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는 ‘초광역권 발전계획’을 담았다. 종합계획은 지역 간 협력을 바탕으로 권역마다 특화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교통과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해 접근성을 높이는 사업을 포함하고 있다. 지역 안에서 고용을 적극 창출해 서울로 가지 않아도 충분히 경제활동이 가능한 정주 여건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내놓은 정책은 김포시 서울 편입을 포함한 ‘메가 서울’ 구상이다. 수도권 쏠림을 심화시키는 ‘메가 서울’ 구상과 지방 분권은 서로 충돌한다. 정부·여당 안에서도 정책이 제각각이고 서로 충돌하는 걸 보면 여당의 정책이 졸속으로 급조된 데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표를 얻어보겠다고 졸속 급조된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고 있는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인다.

정책·여당의 무책임하고 기만적인 정책이 과연 통할까. 지난달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는 ‘빌라를 아파트로’ 개발 공약으로 부동산값 상승을 자극했으나 결과는 참패였다. 그런 참패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왜 졌는지 교훈을 찾지 못한 채 오류를 반복하는 세력은 더 큰 패배를 또 당하고 결국 망하는 길밖에 없다. (2023년 11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