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조국’ 전쟁 국가 미국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지난 10월 7일 발발한 전쟁으로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사망자 수는 1만 1천 명을 넘어섰고, 전체 사망자의 75%가 아동과 여성, 노인이다. 전 세계 분쟁 지역에서 한 해 동안 사망한 어린이의 수보다 지난 한 달 동안 가자 지구에서 사망한 어린이가 더 많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대량 학살의 비극이다.” 채스 프리먼 전 미국 국방부 국제안보 담당 차관보의 말이다.

전쟁은 당사국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비극이다. 그럼에도 전쟁이 끊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전쟁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막대한 돈을 버는 나라가 있다. 세계 최대 무기 수출국인 미국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자료에 따르면, 2018~2022년 국제 무기거래는 2013~2017년에 비해 5% 이상 감소했다. 하지만 유럽의 미국산 무기 수입은 47%, 나토(NATO) 회원국들의 수입은 무려 65%나 증가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에서도 미국은 무기 판매로 배를 불린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에 4,000억 원 상당의 무기 판매를 승인한 사실이 확인됐다. 6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이스라엘 국방부 소유 무기 제조업체에 3억 2,000만 달러(약 4,168억 원) 규모 무기 판매를 승인했다는 내용의 서한을 지난달 말 상·하원 외교위원회에 보냈다. 생산·판매자는 미국 기업 라파엘USA다.

이는 단지 빙산의 일각이 드러난 데 불과하다. 미 국방부는 전쟁이 시작된 지난달 7일 이후 얼마나 많은 무기와 장비를 이스라엘에 지원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정부가 개전 후 이스라엘에 얼마나 많은 무기를 판매했는지에 대해 국방부와 국무부 모두 밝히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뉴욕타임스>는 의회 기록에는 국무부가 지난달 31일 의회에 서한을 제출했다고 나와 있지만, 공개된 의회 웹사이트나 국무부 사이트에서는 이를 확인할 수 없다고 전했다.

미국은 최근 독일과 한국 등의 무기까지 끌어다가 이스라엘에 무기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블룸버그통신>은 미 국방부 내부 문서를 인용해 미국의 이스라엘 무기 지원 상황을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이스라엘에 아이언돔 방공 시스템과 스마트 폭탄 등을 비롯해 아파치 헬기에 탑재하는 헬파이어 레이저 유도 미사일과 155mm 포탄, 야간 투시경 장치, 벙커 버스터 탄약과 군용 차량 등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아파치 헬기용 헬파이어 레이저 유도 미사일 중 일부는 독일과 한국의 재고에서 가져와 이스라엘군에 이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에선 ‘일시적 교전 중단’을 권고하면서도 뒤로는 무기 판매로 전쟁을 부추기는 미국의 기만적인 이중성이 드러난다.

이스라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군사원조를 가장 많이 받은 나라다. 이스라엘은 1946~2022년 사이에 약 2,636억 달러의 미국 원조를 받았는데, 대부분 군사 용도로 사용됐다. 미국은 올해도 이스라엘에 일반 군사지원(33억 달러)과 미사일 방어 지원(5억 달러)을 합해 모두 38억 달러의 군사원조를 제공했다. 그런데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터지자 바이든 행정부는 추경예산을 편성해 이스라엘에 140억 달러에 달하는 추가 군사원조를 의회에 요청했다. 이 예산안이 통과되면 올해 미국이 이스라엘에 제공하는 군사원조는 178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이후 올해 9월까지 우크라이나에 1,100억 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군사원조로 지출하는 국방비는 록히드마틴과 레이시온 등 거대 방산업체의 매출을 올려주니 그들에겐 횡재가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세계 1위 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의 주가는 37% 올랐으며, 2위 기업인 레이시온은 작년 한 해에만 2만7000명을 신규 채용했다. 전쟁의 배후에서 경제적 이권을 챙기고 있는 세력이 누구인가를 보여준다.

레이시온의 최고경영자(CEO) 그레고리 헤이즈(HAYES GREGORY)는 우크라이나전쟁 초기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런 시스템, 이런 무기를 만드는 것에 대해 변명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시간이 지나면 비즈니스에서 이익을 볼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현재 우크라이나로 지급되는 모든 무기는 국방부나 나토(NATO) 동맹국의 비축물자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희소식이다. 이것은 결국 보충돼야 하기 때문이다.” 헤이즈는 최근 월가 분석가들과의 대화에서도 바이든 정부의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패키지와 관련해 비슷한 발언을 했다. “재고를 계속 보충해야 한다. 게다가 미 국방부의 재고 상한선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어 우크라이나에만 무기를 공급해도 향후 몇 년 동안 10~12%의 수익률로 수십억 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17일 ‘중동 전쟁이 전 세계 무기 판매량을 급증시켰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갈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부상과 견제론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무기업체들의 ‘호시절’을 가져왔다”고 보도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해 미국이 외국에 판 무기 금액이 2,056억 달러(약 268조 원)로 전년보다 49% 늘었다고 밝혔다. 세계 무기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45%로 뛰었다. 10년 전의 30%보다 15%포인트가량 급상승한 수치다.

미국의 지미 카터 백악관, NASA, 재무부 등에서 근무한 미국 정부 분석가인 리차드 쿡에 따르면, 미국 방위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약 210만 명이고, 이들이 근무하는 회사의 2022년 매출은 7,410억 달러(약 978조 원)에 달한다. 현역 미군은 137만 명, 예비군은 84만 9천 명이며, 미국 외 80여 개국에 750개의 미군 기지가 존재한다. 미군의 연봉과 복리후생비는 연간 1,460억 달러이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민간인 직원들도 전 세계에 걸쳐 70만 명 이상이 고용돼 있고, 이들의 보수는 총 700억 달러에 달한다. 군산복합체와 밀접하게 소통하는 CIA(중앙정보국), NSA(국가안전보장국), DEA(마약단속국), FBI(연방수사국), DHS(국토안보부) 등 기관의 임원, 관리자, 직원 및 계약직도 수십만 명에 달한다. (미국 독립 뉴스 매체 <쉬어포스트>(ScheerPost) 2023년 9월 26일 기사. ‘군산복합체와 딥 스테이트가 우리를 전쟁으로 몰고 가는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은 퇴임 사흘 전(1961년 1월 17일) 고별 연설을 통해 군산복합체의 폐해에 대해 경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첫해 1953년 봄에도 이렇게 말했다. “모든 총과 군함·로켓은 결국 배고프고 춥고 헐벗은 사람들로부터 빼앗은 것이다. 무기를 사기 위해 자원을 쏟아붓는 나라는 그냥 돈을 쓰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의 땀과 과학자들의 재능, 아이들의 미래를 소비하는 것이다. 장거리 전략 폭격기 한 대면 학교를 30개 이상 세울 수 있고 구축함 한 척이면 8,000명 이상이 살 수 있는 집을 지을 수 있다.”

70년 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연설은 공허한 외침에 그치고 말았다. 지난해 미국의 국방비는 8,770억 달러(약 1,150조 원)에 달해 마침내 ‘천조국’이 되었다. 배고프고 춥고 헐벗은 사람들로부터 그만큼 많이 빼앗았다는 의미다. 그 결과 미국에선 3,800만 명이 기초 생필품 부족에 허덕이고,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도 무려 3,000만 명에 달하며, 집 없는 학생 100만 명이 버려진 건물에 산다. 이런 비극의 참상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천조’ 넘는 국방비를 쏟아붓고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에 예산을 퍼주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2023년 1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