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역대 최저 인상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최저임금위원회가 14일 2021년 최저임금을 시급 8720원으로 의결했다. 올해 최저임금 8590원보다 130원 오른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률 1.5%는 최저임금제도를 시행한 1988년 이후 33년 만에 가장 낮은 역대 최저 인상률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으나 지난해에 그것을 공식 파기했다. 연이어 올해는 역대 가장 낮은 최저임금 인상률을 기록했다.

마이너스 5.1%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외환위기 당시에도 최저임금이 2.69% 인상됐고, 김대중 정부 때 연평균 인상률은 9.0%였다. 노무현 정부 때는 10.6%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도(16.4%)와 2019년도(10.9%)까지만 해도 그럴싸했다. 그런데 지난해 2.87%에 이어 올해 1.5% 인상으로 급락해서 집권 4년간 최저임금 평균인상률이 7.7%다. 박근혜 정부 때의 7.4%와 별로 차이가 없다.

최저임금 역대 최저 인상률에 대해 정부는 코로나19 경제위기 상황을 이유로 든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종식 시기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도 최저임금은 최저 인상률 기록 행진을 계속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도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가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고통받는 피해자다. 코로나19 재난의 고통이 왜 열악한 저임금 노동자에게 전가되어야 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본래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취지는 경제공황과 같이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노동자에게 말 그대로 ‘최저’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대의 위기라고 하는 지금이야말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야 할 때이다. 실제 독일은 지난달 말 향후 2년에 걸쳐 최저임금을 11.7%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독일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마이너스 7.8%로 한국(-1.2%)보다 훨씬 암울하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최저임금을 더 인상하여 노동자의 생활 안정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반발 여론이 거세자, 자본의 요구를 받아들여 최저임금의 산입범위를 확대했다. 노동자들이 기본급 이외의 항목으로 받아온 정기상여금, 복리후생비 등을 기본급에 포함시키도록 산입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줬다가 빼앗아갔다’라고 비판받았던 근로기준법 개악이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8년 연구에 따르면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 중 88%는 산입범위 확대의 여파로 인상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저임금 노동자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해 10%가 인상돼도 실질 인상 효과는 2.2%에 불과했다. 2024년까지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점차 확대되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 상당수는 실질임금이 되레 삭감될 수도 있다. 민주노총은 이미 지난해에 2020년 최저임금 인상률(2.87%)로는 복리수당을 20만원 받는 노동자의 임금이 3.57% 삭감되는 역효과가 나타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니 1.5% 오른 내년도 최저임금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명목상 ‘인상’이지만 실제로는 인상이 아니라 ‘삭감’에 다름 아니다.

가관인 것은 문재인 정부의 기만적 행태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한국이 노동자 삶의 질을 높이는 노력에 국제사회와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한 국제노동기구(ILO) 화상 글로벌 회담 연설에서 “한국은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앞에서 보았듯이, 최저임금 역대 최저 인상률 기록에다가 박근혜 정부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연평균 인상률인데, 이것이 어떻게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지속적 노력이란 말인가?

노동시간 단축은 또 어떤가? 정부는 주 52시간제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지난 1월에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를 확대하는 시행령을 공포했고, 7월 14일에는 특별연장근로의 사용 기간을 현행 90일에서 두 배로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상반기에 90일간 특별연장근로를 실시했더라도 하반기에 다시 90일의 특별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올해 상반기 동안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한 경우는 1665건에 달한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첫해 15건이었던 것에 비해 무려 111배나 폭증했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건수: 2017년 15건, 2018년 204건, 2019년 910건, 2020년 상반기 1665건)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힌다.

대통령뿐 아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17일 내년도 최저임금이 역대 최저 인상률인 데 대해 “노동조합이, 노동자가 많이 비판을 할 것이지만 우리 경제 전체 입장에서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이날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하여 한 발언이다. 김 실장은 “소득주도성장, 우리 정부의 포용정책이라고 하는 것이 최저임금 하나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라며 “최저임금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중에서도 고용 안전망과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나가는 게 소득주도성장 그리고 포용정책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김상조 정책실장의 말대로 경제 전체를 놓고 따져보자. 환경기준을 강화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기업들이 있듯이,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버티지 못하는 기업이 생길 수 있다. 그렇지만 환경과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적정한 기준을 강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이 퇴출되어야 하듯이,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못할 정도의 기업이라면 문을 닫아야 맞다. 기업을 위한답시고 노동자에게 ‘노예’ 노동을 강요할 수야 없지 않은가. 최저임금을 지급할 수 없는 기업은 문을 닫는 것이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체질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최저임금을 ‘포용 성장론’의 지렛대로 삼고, 가계 임금과 소득을 늘림으로써 소비를 확대해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을 대표 정책으로 내세운 건 문재인 정부 자신이었다. 하지만 집권 첫해 16.4%라는 높은 인상률에서 내년도 1.5% 역대 최저 인상률로 널뛰기를 한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은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졌다. 적어도 최저임금에 관한 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백팔십도 뒤바뀌었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하지만 청와대의 정책실장은 구구한 변명과 말 바꾸기의 궤변만을 늘어놓고 있다. 무책임하고 후안무치하다.

마지막으로, 최저임금과 관련하여 하나만 덧붙이자. 지난달 23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기자회견 자료다. 경실련은 국민은행 주택가격 동향과 통계청 발표자료를 바탕으로 각 정권의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을 비교했다. 이명박 정부(2008년 12월∼2013년 2월) 때에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는 1500만원 하락(-3%)했다. 박근혜 정부(2013년 2월∼2017년 3월)에선 1억3400만원(29%) 올랐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3년(2017년 5월∼2020년 5월) 동안 3억1400만원 폭등했다. 문재인 정부 3년간 상승률(52%)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상승률(25%)보다 두 배나 높게 나타났다. 각 정권 당시 최저임금으로 중위 가격의 서울 아파트를 구매하는 데 걸리는 기간을 따져보니,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는 각각 38년과 37년이 걸렸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 기간이 43년으로 늘었다. 노동 존중을 표방한 민주 정부의 역설(逆說)이고 배반(背反)이다. (2020년 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