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정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4‧15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100일 만에 급격히 추락해 40%대로 떨어졌다. 총선 이후 지지층을 이탈시킨 여러 사건들과 쟁점들이 많았지만,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 부동산 정책의 실패라는 진단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지난주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서울의 아파트 값이 무려 52%나 올랐다. 역대 정권 중 최고 상승률이며,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상승률(25%)의 두 배가 넘는다.

지난 10일 문재인 정부가 22번째 집값 대책을 발표했다. 집권 5년 동안 20번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던 이명박 정부의 기록을 3년 만에 갈아치웠다. 정부의 22번째 대책 발표는 그간의 대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래서 정부의 7‧10 대책에 대한 기대와 반응은 불신과 비판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정부가 연이어 강도 높은 부동산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책의 신뢰성과 실효성이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반영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투기수요를 차단하고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고 누누이 밝혀왔다. 하지만 정부의 말을 신뢰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여당 지지층 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부동산 실정에 따른 민심 이반이 심각하다는 걸 정부·여당도 모르지 않을 터다. 하지만 정부·여당 안에서는 뜬금없이 그린벨트 해제 논란이 벌어지는 등 갈수록 정책의 난맥상만 드러내고 있다.

집값 상승은 무엇 때문인가? 시중에 3000조원이 넘는 자금이 풀렸고, 초저금리 시대에 넘쳐나는 과잉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몰리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광의 통화량(M2 기준)은 3053조9000억원이다. 지난 4월(3018조6000억원)에 사상 처음으로 3000조원을 넘어선 뒤에도 빠르게 불어나는 추세다. M2에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금식 예금 외에 MMF(머니마켓펀드)·2년 미만 정기예적금·수익증권·CD(양도성예금증서)·RP(환매조건부채권)·2년 미만 금융채 등 현금화가 쉬운 단기 금융상품이 포함된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 가운데 상당 부분은 부동산 시장으로 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전체 가계대출 잔액은 1521조6969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그 중 주택담보대출 잔액도 858조1196억원으로 최대 기록을 세웠다. 은행권 대출만 보면, 올해 상반기 가계 대출 증가분이 40조6000억원이고,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증가분이 32조2000억원을 차지한다.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어림잡아 65%인 21조원 정도가 부동산에 투자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증시도 열기가 뜨겁다. 투자자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에 맡겨놨거나 주식을 판 뒤 찾지 않은 돈인 투자자예탁금은 지난 6월 46조1819억원을 기록해 1999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를 하기 위해 증권사에서 빌린 신용융자 잔고도 이달 10일 13조원을 넘어섰다. 시중에 풀린 돈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가 자산 가격을 급등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에 대응해 당분간 한국은행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유지될 전망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부동산 시장이 불안하지만,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금리 정책을 완화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중앙은행이 공급한 유동성이 산업생산에 투입되기보다 자산시장에 유입되어 자산 가격을 올려놓고 있다는 점이다. 돈을 풀어봤자 대부분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가다 보니 통화정책이 산업생산과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게 바로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경제의 회복이 더디고 장기 침체에 빠진 원인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주식이나 부동산의 소유 유무에 따라서 부의 분배가 악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한국은 가계자산의 76%가 부동산 관련 자산이고 주택자산이 50%를 넘는다.(한국은행, ‘2018년 국민대차대조표’) 자기 집을 갖고 있는 가구가 61% 정도지만 수도권의 자가 보유율은 54.1%에 불과해 약 절반의 가구가 주택 가격 상승으로 상대적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광풍이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집 없는 서민의 박탈감을 키우는 화근인 셈이다.

게다가 한국은 자산 불평등이 극심해 부동산가격 상승이 경제적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지난달 29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내놓은 ‘자산가격 변화가 경제적 불평등과 대외경제 변수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상위 1%가 순자산의 11.3%, 상위 10%가 42.1%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자산 불평등이 심각하다. 자산 중에서 실물자산이 금융자산보다 훨씬 많아 부동산 가격의 변화가 부의 불평등을 확대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불평등 완화를 위해 부동산 등에 대한 조세의 누진성을 강화하고 부동산시장을 안정화시킬 정책이 함께 필요하다.”는 것이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다.

부동산 투기를 막는 정책은 복잡할 게 없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정책을 시행하면 된다. 보유세(종합부동산세+재산세)로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면 불로소득을 노리는 부동산 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보유세를 강화하면 정부 정책의 빈틈을 찾아 지역과 가격대를 옮겨 다니며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자들은 자연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것은 보유세 강화에 실패한 탓이다.

2005년 노무현 정부는 당시 0.15% 수준이던 보유세의 실효세율을 2017년 0.61%로 높이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실효세율은 주택가격 대비 보유세 비율이다. 하지만 현재 실효세율이 0.15~0.16% 수준으로, 조금도 달라진 게 없이 제자리걸음이다. 부동산 시장이 요동칠 때마다 문재인 정부는 종부세 최고세율을 2.0%에서 3.2%(2018년 9·13 대책), 4.0%(2019년 12·16 대책), 6.0%(지난 7·10 대책)로 높이는 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실행이 따르지 않는 빈말에 그치고 말았다.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된 공시가격을 현실화하는 작업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성만 떨어뜨려 버렸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은 이미 기존 칼럼들에서 여러 차례 다뤘을 뿐더러 근간에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수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므로 굳이 더 길게 언급할 필요가 없으리라고 본다.

끝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진보세력의 민생문제에 대한 감수성이다. 진보세력은 민중의 절박한 요구와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런데 진보세력이 최근 집값 폭등에 따른 민중의 분노에 얼마나 공감하고 적절히 대응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예컨대 한미워킹그룹 해체, 8‧15 민족자주대회 비상시국선언 등은 진보세력이 전개해야 할 대중운동이고 꼭 필요한 운동임에 틀림없다. 동시에 민중의 절박한 현실에 밀착한 운동이 소홀히 되어선 안 될 것이다. 부동산 민심처럼 예민하고 폭발적인 민생 현안에 대하여 진보세력이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 현안에 대해 민감한 반면에 민생 현안에 대해 민감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20년 7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