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감시 자본주의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이동통신사들이 가입자 휴대전화 위치확인 정보(기지국 접속기록)를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에스케이텔레콤(SKT)·케이티(KT)·엘지유플러스(LGU+) 등 이동통신 3사는 가입자별로 휴대전화 기지국 접속기록을 3개월 동안 쌓아둔다고 한다. 이동통신사가 자사 휴대전화 가입자의 개인적 행적에 대해, 언제 어디에 있었고 어디를 다녔는지 다 알 수 있다는 뜻이다.

휴대전화 위치확인 정보는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다. 휴대전화 위치확인 정보가 공익 목적으로 알맞게 쓰이거나 좋은 일에 쓰일 경우에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코로나19 확진자의 감염 경로를 파악한다거나 또는 방역을 방해하는 자를 색출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정부는 5월 초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 때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는 1만여 명을 특정했고, 8월 15일 광화문 집회 참석자 명단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동통신사들이 고객들의 기지국 접속기록을 보관·축적하는 것은 빅데이터 사업 목적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지난 2일 에스케이텔레콤은 신한카드·한국문화관광연구원과 ‘문화관광 빅데이터 산업에서의 지속적인 상호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에스케이텔레콤이 축적한 가입자 휴대전화 위치확인 정보와 신한카드 회원들의 결제정보를 결합해, 부산 관광객들이 어떤 관광지를 어떤 순서로 방문하는지, 성·연령대별 선호 관광지, 관광지 인근 상권 등을 분석하기로 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이 분석 결과를 활용하여 부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차별화된 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올해 1월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가명 개인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기업이 제3자에 판매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데이터 3법은 연구와 통계 등의 목적으로 가명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했고, 금융기관이나 병원 등은 상업적 목적으로 가명 처리된 신용정보 등을 당사자 동의 없이 이용할 수 있게 됐다. 8월 5일부터 데이터 3법이 시행됨으로써 국내에서도 가명 데이터 결합 기반 빅데이터 사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개인정보의 인권 침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이동통신사들은 기지국 접속기록이 로우 데이터(raw data) 형태라서 가입자의 신원이 확인이 안 돼 안전하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그건 금방 거짓말임이 탄로 난다.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당시 서울시는 이통통신 3사에 요청해 해당 기간 이태원에 30분 이상 머물렀던 사람들의 명단을 제출받았다. 이동통신사들이 가입자의 기지국 접속기록을 바탕으로 이름·전화번호·주소를 알아내 제공한 것이었다.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하여 지난 3월 개인의 위치 정보와 신용카드 내역 등 28개 기관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코로나19 역학조사 지원시스템’ 운영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코로나 확진자의 동선을 10분 만에 파악할 수 있게 됐다. QR코드를 활용한 전자출입명부도 유흥시설 뿐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 중인 서울에선 커피점 매장 이용 시는 말할 것도 없고 테이크아웃의 경우에도 개인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정보의 오남용과 사생활 침해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불안과 우려는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조속한 경기 회복이라는 당위에 압도돼 뒷전으로 밀려나는 실정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감시 자본주의가 호기를 맞고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하버드대 경영학과 명예교수인 쇼사나 주보프는 지난해 출간한 책 <감시 자본주의의 시대>에서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 정보기업들이 사람들의 행동에 관한 빅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분석해서 얻은 정보를 이용하여 어떻게 이익을 극대화하는지 다룬다.

감시 자본주의는 기존의 상품과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이용해 소비자의 패턴을 예측하고 상품을 만들어내 이윤을 얻는 자본주의를 의미한다. 데이터 수집을 위한 핵심적인 활동은 감시다. 이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수요를 예측해 이윤을 얻는 시스템이므로 결국은 소비자 감시가 불가피하다. 오늘날의 주요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은 대량 감시를 기반으로 한다. 감시 자본주의는 대량 감시를 통해 획득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주의다.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정보기술 기업들은 개인 맞춤형 상품과 광고를 판매해 수익을 얻는다. 구글은 전 세계 온라인 검색의 약 87%를 차지한다. 구글에서 어떤 제품을 검색하면, 페이스북이나 쿠팡 같은 소셜미디어와 소셜커머스에서 관련 상품 광고가 뜬다. 유튜브에서 어떤 영상을 보면, 계속 관련 영상이 추천된다.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은 지난 20년 동안 사용자들의 개인정보 디지털 데이터를 토대로 약 7백억 달러(약 80조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페이스북은 매월 22억 명이 넘는 활성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는데, 사용자들의 개인정보 빅데이터의 가치가 무려 475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시 자본주의의 폐해를 생생히 보여준 사례가 ‘페이스북 데이터 스캔들’이다. 영국의 정치컨설팅업체 캠브리지 애널리티카(Cambridge Analytica, 이하 CA)는 ‘This is Your Digital Life’라는 성격퀴즈 앱을 통해 27만 명의 정보를 얻은 다음, 페이스북을 통해 연결된 친구들까지 포함해 총 8700만 명의 디지털 개인정보를 무단 수집했다. CA는 이 데이터를 이용하여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했는데, 트럼프나 힐러리에 대한 지지를 유보한 중도층을 대상으로 트럼프에게 유리하고 힐러리에게 불리한 메시지를 보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거대한 해킹>이 이 스캔들을 다룬 작품이다.)

지난해 7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는 이용자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 페이스북에게 50억 달러(약 6조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CA가 페이스북 이용자 8700만여 명의 개인정보를 몰래 수집해 이용한 데 대한 페이스북의 관리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 사건으로 CA는 문을 닫았다. 그런데 얼마 전 CA의 전 직원들이 또 다른 데이터 분석업체를 차려 올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 측과 협업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자본과 권력은 우리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지만, 우리는 자신에 대한 데이터 수집·활용이 어떻게 이뤄지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게 감시 자본주의다. 개인정보의 대량 수집·축적을 기반으로 하는 빅데이터 활용의 경제적 효과를 부인할 순 없지만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인권 차원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 감시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며, 나아가 전체주의 사회의 출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코로나19의 비상 상황을 이유로 무분별한 개인정보 수집과 감시 자본주의가 허용돼선 안 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전 국민 개인식별번호인 주민등록번호 제도가 존재한다. 가명 개인정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결합·활용하는 과정에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뜻이다. 정보인권에 대한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 개인정보가 어떻게 수집·이용되는지 알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하며, 개인정보 이용에 대한 민주적 감시와 통제 장치가 필수 불가결하다. (2020년 9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