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화재’ 참변과 공정의 레토릭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지난 14일 오전 인천에 사는 열 살, 여덟 살 초등학생 형제가 코로나19로 등교하지 않고 비대면 수업을 하는 중에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가 불이나 화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이들 형제는 온몸에 심한 중화상을 입었고 서울의 화상 전문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고는 한 부모로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 ㄱ씨의 방임과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비대면 시대 돌봄 공백이 겹쳐 빚어진 참변이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이혼한 뒤 우울증을 앓아온 ㄱ씨는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채 방치했다고 한다. 불이 난 당시에도 전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이웃주민들은 ㄱ씨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고 2018년부터 지난 5월까지 3차례나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가정법원에 아이들을 ㄱ씨로부터 격리해 보호시설에 위탁하도록 조처를 내려달라는 분리·보호 명령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격리 대신 상담·위탁 처분을 내렸다. ㄱ씨는 지역아동센터에 아이들을 보내라는 상담기관의 권고도 거절했고, 비대면 수업 기간에 운영된 초등 돌봄교실에도 아이들을 보내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돌봄 공백의 사각지대에 방치됐던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아동 10명 중 4명꼴로 아동끼리만 시간을 보내는 돌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번에 사고를 당한 형제들도 지속적인 방임 상태에서 코로나19 사태로 학교에 가지 못하면서 끼니를 챙기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을 게 틀림없다. 재난의 위기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보다 심각한 위험으로 다가온다. 사회경제적으로 안정된 계층은 감염병 사태에도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다. 건강 상태를 유지하기 용이한 여건이고, 행여 병에 걸리더라도 부담 없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하위계층은 더 취약한 형편이고, 아이들이 돌봄 사각지대에 노출될 위험이 더 크다.

18일 정부가 취약계층 아동보호 강화 대책을 내놨다. 보건복지부는 앞으로 한 달간 돌봄 공백과 학대 발생 여부를 집중 점검하고 가구 방문도 확대해 급식지원 등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연계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취약계층 아동들의 돌봄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취약계층 가정의 긴급 돌봄 서비스 수요를 조사해, 필요한 아동에게 적극적으로 보호조치를 추진할 방침이다. 전문가를 중심으로 아동학대 처벌강화 전담팀을 구성해, 방임 등 아동학대 발생 시 적절한 대응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원과 협의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 발표는 사후약방문 식의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대책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등교를 하지 않고 비대면 원격수업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집에만 있으라고 하는 것 외에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번에 벌어진 인천 라면화재 참변에서 보듯이, 집에만 있으라고 할 경우에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아이들도 있다. 돌봄 공백 상태에서 아이들끼리만 집에서 시간을 보내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방치에 가깝지 적절한 대책이라고 할 수 없다.

18일 대책 발표에서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긴급 돌봄을 시행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아동센터 등에 관련 돌봄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겠다고 했다. 돌봄 공백의 사각지대 해소는 정부와 지자체가 먼저 책임 있게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정부가 할 일을 민간이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에 협조를 요청하는 식으로 떠넘길 게 아니다.

예컨대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또는 위탁 운영하는 청소년수련관 등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서둘러 운영을 중단했고 시설은 대부분 휴관 상태다. 그런데 청소년시설에는 돌봄과 보호를 담당할 수 있는 전문지도사들이 있고, 시설과 공간들도 갖춰져 있다. 정부나 자치단체가 이런 시설을 적절히 활용해 운영한다면, 가정에서 원격수업 참여가 어렵거나 돌봄이 여의치 않은 아이들에게 긴급 돌봄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을 제쳐둔 채 아이들에게 무조건 집에만 있으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게다가 실효적인 조치는 외면한 채 엉뚱한 것을 대책이라고 발표하는 것을 보면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정부의 18일 대책을 보면, 22일부터 다음 달 21일까지 한 달 동안 대상 가구 아동과 가족에게 화재 예방을 위한 ‘재난대비 안전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한심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21세기 자본』과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는 “지난 40년 동안 서구의 불평등 격차는 이전 어느 때보다 벌어졌다. 코로나19 위기가 이처럼 극심한 격차의 민낯을 드러냈다”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 격차는 ‘수저계급’이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는 데서도 여실히 확인된다. 인천 라면화재 참변은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 사회의 민낯이다. 한국 사회의 극심한 불평등 격차가 이번 참변에서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회 청년의날 기념식에서 “정부는 공정에 대한 청년들의 높은 요구를 절감하고 있으며, 반드시 이에 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공정은 촛불혁명의 정신이며, 다 이루지 못할 수는 있을지언정 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목표”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공정이란 단어를 37번이나 언급했고 불공정을 10번 거론했다. 하지만 공허하게 느껴지고, 단지 청년세대의 마음을 잡으려는 정치적 수사(레토릭)로 들린다. 대통령이 공정을 말하려면 먼저 라면화재 참변에 대해 슬픔과 유감이라도 표명한 다음에 꺼냈어야 하지 않을까. (2020년 9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