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북방한계선에서의 총격 피살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안타까운 비극이 발생했다. 24일 오전 국방부는 해양수산부 공무원 ㄱ씨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북 해역에서 북측에 의해 피살됐다고 발표했다. ㄱ씨는 21일 낮 어업지도선에서 사라져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이어 ㄱ씨는 하루 뒤인 22일 오후 3시30분쯤 북측 해역에서 북측 선박에 의해 포착됐다. 단속정을 타고 온 북측 군에서 총격을 가하고 주검을 불태운 것으로 보인다고 국방부는 발표했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북한군이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저항 의사도 없는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반인륜적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결과를 보고받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며 북한 당국의 책임 있는 답변과 조처를 촉구했다.

25일 북측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 명의의 통지문을 보내 사건의 전말에 대해 알려왔다. 북측은 “있어서는 안 될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면서 “불법침입자를 향해 사격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시신을 태우지는 않았고 ㄱ씨가 탄 부유물을 소각했다고 밝혀, 주검이 불태워졌다는 우리 정부의 발표와 배치됐다.

통지문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가뜩이나 악성 비루스(코로나19) 병마 위협으로 신고하고 있는 남녘 동포들에게 도움은커녕,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사건의 파장이 만만치 않다. 사건의 진상을 놓고도 한동안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7일 북측에 공동조사를 요청했다. 청와대는 이날 문 대통령이 주재한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 뒤 “남과 북이 각각 파악한 사건 경위와 사실관계에 차이점이 있으므로 조속한 진상 규명을 위한 공동조사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총격 사건이 미친 파장이 큰데, 사건의 진상에 대한 의혹도 여전하고 남북 당국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으며 주검 수습도 안 돼 공동조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북측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보도문을 발표했다. “남측에서는 9월 25일부터 숱한 함정, 기타 선박들을 수색 작전으로 추정되는 행동에 동원시키며 우리 측 수역을 침범시키고 있다”며 “우리 측 영해 침범은 절대로 간과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남북이 각각 대대적인 수색 작전을 벌이고 있어 자칫 충돌의 우려도 나온다.

이번 사건의 원인과 책임을 둘러싸고 정쟁이 벌어지고 있다. 민간인 피살의 비극조차 정쟁 부추기기에 악용하는 보수파들은 그저 청와대와 정부를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다. 국민의힘은 27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 해명과 사과를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마치 호재를 만난 듯이 4·15 총선 완패 이후 처음으로 장외투쟁에 나선 것이다.

그들이 노리는 목적은 불을 보듯 뻔하다. 대북 이슈를 정쟁으로 비화시켜 정부를 공격함으로써 정치적 반사이익을 얻고자 하는 그들의 불순한 속셈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반북 보수파들이야 본래 그런 세력이니, 그러려니 치부하자. 문제는, 진보를 자처하는 쪽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김종대 정의당 한반도평화본부장은 25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만약 군이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우리 군의 방치, 정부의 무능은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비난했다. 김 본부장은 24일 TBS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합동참모본부가 상황을 기민하게 파악했다면 군 대응 원칙에 따라 우리 주민을 사살하고 불에 태운 그 함정을 격파했어야 했다”고 강경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사실상 선전포고에 가까운 위험한 발언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7일 긴급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남북 공동조사위를 구성해 사건 전반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발포 책임자가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며 “우리 국민이 북한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될 때까지 무능한 감시, 불철저하고 불성실한 대응으로 일관한 우리 군 당국과 정부의 책임도 철저히 규명되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 대표는 나아가 “유엔 안보리와 국제형사재판소 제소 등의 국제적 조치 등 후속조치들”까지도 언급했다. 정의당 의원단은 국회 차원의 대북 규탄 결의안을 채택하자고 각 당에 제안하였다.

이번 ㄱ씨 피살 사건에 대해 남북 공동조사위 구성과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의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 여야가 국회에서 대북 규탄 결의안을 채택한다면 남북관계에서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단지 당리당략적 정치 공세와 정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이런 제안들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역사적 배경과 제도적 원인을 무시한 채 감정적 대응에 치우친 탓이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는 1999년에 제1 연평해전, 2002년에 제2 연평해전이 벌어졌던 바로 그 수역이다.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는 1953년에 체결된 정전협정문에도 군사분계선에 대한 합의가 없어 남북 간 충돌의 위험이 상존하는 곳이다.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에서 지금까지 여러 차례 남북 간 군사적 충돌과 사건사고가 반복됐었고, 이번에 또다시 피격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앞으로도 이 일대에서는 의도적이건 우발적이건 충돌과 사건이 벌어질 위험이 언제나 존재한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Northern Limit Line)은, 그 이름에서 보듯이, 남측 해군의 행동범위의 북쪽 한계선을 뜻한다. 만약 북측 해군의 남방 행동권의 한계선이라면 ‘북방’한계선이 아니라 ‘남방’한계선이라고 이름 지었어야 할 것이다. 서해 북방한계선은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자인 유엔군사령관이 한국군의 서해상에서의 북방 행동한계를 규정한 내규이다. 애초에 유엔사가 서해에서 북방한계선을 설정한 이유는 북측 해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측 군부의 북측 공격‧군사도발행위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당시는 이승만 정권이 ‘북진통일’을 외칠 때였다.

남북 사이의 서해 수역은 정전협정상 공백으로 남겨져 있다. 정전협정 제5조 부칙 61에 따르면, 정전협정에 대한 수정이나 증보는 반드시 조인 쌍방 사령관들의 상호합의를 거쳐야 한다. 남북 사이에 군사적 행위를 규제하는 효력이 있는 ‘선’이 되기 위해서는 유엔사가 북측 당국에 정식통고를 하고 북측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북측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그러므로 서해 북방한계선은 유엔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선이며 유엔사의 내규에 불과할 뿐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미국의 공식 외교문서로도 확인된다.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 시절인 1975년 2월 28일 작성한 외교 전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시돼 있다. “미국이 전부터 말해왔듯이, 북방정찰한계선(Northern Patrol Limit Line)은 국제법적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 북방정찰한계선은 일방적으로 선포된 것으로 북한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구나 그 선은 일방적으로 국제수역을 분리한 것이기 때문에, 명백히 국제법과 미국 정부의 해양법에 반하는 것이다.”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 수역은 남과 북 어느 쪽도 합법적으로 관할권의 배타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분쟁지역인 것이다.

남북은 2년 전 채택한 9·19 군사 분야 합의서에서 “남과 북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군사적 대책을 취해 나가기로” 했었다. 13년 전 10·4 선언에서도 “남과 북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협의”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평화수역 조성과 관련한 구체적인 기준에 대해 남과 북은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다.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에서 군사적 충돌과 사건사고가 반복되는 비극을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면해서는 남(유엔사)과 북이 합의하여 분쟁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바꾸고 공동관리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제도적 장치가 갖춰져야만 비로소 군사적 충돌과 불행한 사고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2020년 9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