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코로나19 확진과 미국의 수모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추석 연휴 기간에 전해진 국제 뉴스 가운데서 단연 화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각)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공개하고 다음날 군병원에 입원했다. 전 세계 주요 언론들이 긴급뉴스로 타전할 만큼 파장이 컸다.

싫든 좋든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이고, 미국 대선을 한 달 앞두고 벌어진 일이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미국 대선은 지난달 18일 사전투표가 이미 시작됐고, 다음달 3일 본선거를 앞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뿐 아니라 공화당 대선 캠프 총책임자인 빌 스테피언 선거대책위원장과 공화당 존 론슨 상원의원, 켈리앤 콘웨이 전 백악관 보좌관,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 등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도 줄줄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30일 로나 맥대니얼 공화당전국위원회 의장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고, 공화당 마이크 리 상원의원도 1일 양성 판정을 받고 격리에 들어갔다.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이들의 행적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지난달 26일 배럿 대법관 후보자 지명식이다. 확진자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 부부를 포함하여 젠킨스 노터데임대 총장, 공화당 톰 틸리스 상원의원과 마이크 리 상원의원, 콘웨이 전 보좌관, 크리스티 전 주지사 등 7명이 이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백악관 출입기자 2명과 스태프 1명 등 언론인 3명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기자 1명은 26일 행사를 현장에서 취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행사는 배럿 대법관 후보자와 가족을 비롯해 정치권과 학계 인사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 가운데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들이 다수였고, 백악관은 물리적 거리두기를 무시하고 좌석을 다닥다닥 가깝게 배치했다. 행사 전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참석자들이 서로 웃으며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하는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생방송 중계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이 방역수칙을 아예 대놓고 무시한 것이 확인된다. 마스크 쓰기와 거리두기를 엄격하게 실천하는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방역수칙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태극기 우파’의 집회를 보는 것 같다.

주지하듯이 미국은 4일 현재 코로나19 확진자 760만 명, 사망자 21만 명으로 세계 1위의 코로나19 재앙을 겪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를 줄곧 대수롭지 않은 감염병 정도로 치부하는 언행을 일삼아 왔다. 그는 “미국에서는 매해 감기로 몇 만 명이 죽는다”라고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깎아내리는가 하면, “코로나19의 99%는 무해하다”라는 등 근거 없는 주장을 남발했다. 또한 그는 ‘표백제가 바이러스를 5분 안에 죽였다’는 연구 결과에 관심을 표시하며 “살균제의 인체 주입을 검토하라”는 황당한 발언으로 거센 논란을 촉발했던 장본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감염은 자업자득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며 방역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특히 마스크 착용을 거부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국 보건당국이 “마스크가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공중 보건 도구”라고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무시했다. 공식 석상에 마스크 없이 나타나는 것은 물론 선거 유세장에 운집한 지지자에게도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첫 대통령 후보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항상 마스크를 쓰는 것을 비웃었고, 방역당국의 경고를 무시한 채 마스크도 쓰지 않고 대규모 대면 행사를 잇따라 진행했다. 확진 발표 몇 시간 전까지 “전염병 대유행이 끝나간다”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이 감염돼 입원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니,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 여론조사 전문기관 모닝컨설트의 지난 2일 긴급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3%는 트럼프 대통령의 감염은 대통령 개인의 잘못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면 감염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응답자가 65%에 이르렀다. 응답자의 55%는 그가 코로나19의 실체를 사실대로 전하지 않았다고 답했고, 57%는 사태 대응이 본질적으로 잘못됐다고 보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확진으로 미국 대선은 예측불허의 불확실성에 휩싸이게 됐고 선거 일정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당장 15일로 예정된 2차 텔레비전 토론회 성사 여부도 불분명해졌다. 정치적 파장도 커지고 있다. 배럿 신임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와 인준투표를 속전속결로 처리하려던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당초 12일로 예정됐던 배럿 연방대법관 지명자의 인사청문회가 19일 이후로 연기될 전망이다. 외교적 파장도 피할 수 없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7~8일 한국 방문 계획이 취소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확진으로 미국 대선은 한층 복잡해졌다. 이미 개표에 일대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 우편투표 비중이 크게 늘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는 사기”라며 공정성 문제를 거론했다. 투표 결과에 불복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첫 텔레비전 토론에서 바이든 후보는 패배 시 승복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몇 달 동안 (결과를)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며 확답을 하지 않았다. 여기에다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감염이 더해지면서 미국 대선은 예측불허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확진 이후 온갖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3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민주당 성향의 네티즌들은 “감염 사실 자체를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종의 쇼일 가능성을 의심한다는 것이다. 꾀병이라는 의심도 적잖다. 일주일 전 뉴욕타임스가 트럼프 대통령이 10년간 개인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고 보도하는 등 대선에 불리한 정황이 짙어지자 대선 연기 또는 대선 패배 명분을 쌓기 위해 꾀병을 부린다는 주장이다.

미국과 중국 관계가 더욱 나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가 중국 때문이라고 비난해 왔는데, 자신이 코로나에 걸렸으니 중국을 겨냥한 공격 수위를 한층 높일 게 틀림없다. 지지율에서 뒤지고 있는 판세를 뒤집기에 이만한 공격 무기도 없다. 트럼프 캠프에서는 중국 때리기를 대선 전략으로 적극 활용할 것이며, 트럼프의 골수팬들은 ‘중국 바이러스’와 관련한 온갖 가짜뉴스와 음모론으로 지지층 결집에 나설 것이다.

분명한 것은 현직 대통령이 코로나19에 감염됨으로써 미국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게 됐다는 사실이다. CNN은 2일 “트럼프 대통령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에 이어 정치적 이유로 코로나19를 경시하다가 감염된 3번째 국가 지도자가 됐다”라고 꼬집었다. 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감염은 가뜩이나 격랑에 빠진 미국 정치 풍토의 불안정성을 키울 것”이라며 “불황을 겪고 있는 미국 경제에도 추가적인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15일에 발간된 밥 우드워드의 새 책 『격노(Rage)』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단독 인터뷰 내용을 담은 책이다. 책에는 코로나19 사태 초기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러스의 위력에 대해 깎아내렸지만, 정작 본인은 얼마나 치명적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고의로 축소했다는 것이다. 만일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선제적으로 봉쇄조치를 하고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을 시행했다면 미국이 세계 1위의 수모를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 자신까지 코로나19에 감염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그 여파로 미국 대선이 불확실성의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의 한심한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020년 10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