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탕 국정감사와 광장의 차벽 봉쇄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21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7일부터 26일까지 20일간 진행된다. 국감은 국회가 특정 기간을 정해 정부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을 대상으로 정책과 예산 집행의 타당성을 감사하는 제도다.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를 위한 장치인데, 이번 국감은 코로나19 여파로 기간이 예년보다 단축됐다.

21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는 이전과 달리 맹탕 분위기다. 국정감사는 야당이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21대 국회에서는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8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민주당을 향해 “국감을 방해하는 폭거이자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반면 민주당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21대 국회 들어 왜 이렇게 국감의 분위기가 달라졌을까.

그건 이미 예고된 것이다. 의석수 190:110의 결과가 말해주듯이, 제21대 총선 결과는 민주당과 개혁파의 압승으로 끝났다. 정부 여당에 대한 중간평가가 아니라 수구 정당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대한 심판이 이뤄졌다. 민주당은 국회에서 단독 입법권을 갖게 됐고, 이로써 문재인 정부는 정권이 차지할 수 있는 최대의 권력을 갖게 되었다. 민주당은 국회 18개 상임위원장을 전부 독차지하였고, 모든 상임위에서 민주당 의원들 수가 국민의힘보다 훨씬 많다.

상임위 위원장이 민주당인데다가 국감 증인 채택이 상임위 의결 사항이어서 민주당이 거부하면 야당은 원하는 증인을 국감장에 불러낼 방법이 없다. 민주당은 이번 국감 과정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휴가 특혜 의혹 사건, 해양수산부 공무원 총격 사망 사건과 관련해 국민의힘이 신청한 증인 출석을 모두 무산시켰다. 야당으로선 속수무책이다. 이 때문에 주요 현안 관련 핵심 증인 채택이 불발된 상태에서 열리는 국감에서는 무딘 질문과 기계적 답변이 계속되는 맥 빠진 양상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맹탕 국정감사는 국회 원 구성에서 완전히 여당으로 기울어진 역관계의 문제가 일차적 원인이지만, 제 역할을 못하고 여당 탓만 하고 있는 야당 또한 그 원인 제공자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 여당의 국정 책임을 묻고 따지는 국감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열쇠는 야당의 역할과 역량이다. 하지만 제1야당 국민의힘은 애당초 그럴 만한 깜냥이 안 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고 질책할 자격이 안 될뿐더러, 기껏 한다는 짓이 고성과 막말을 남발하고 윽박지르는 구태를 되풀이하는 것밖에 없으니….

상임위를 독차지한 여당은 정부 감싸기에 급급해 행정부 견제라는 국감의 존재이유를 부정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야당은 국정에 대한 송곳 정책 감사가 아니라 근거 없는 의혹 부풀리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당의 철통방어 속에서 야당은 좀체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채 맹탕 국감이 진행되고 있어 뉴스거리를 찾기가 어렵다. 더욱 안타까운 현실은, 벼랑으로 내몰린 절박한 민생 현안은 실종된 채 이전투구의 정쟁만 난무하고 있는 국감 현장이다. 정녕 21대 국회 4년 동안 이런 모습을 계속 지켜봐야 한단 말인가.

국감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이 사사건건 대립만 하는 것은 아니다. 찰떡궁합의 공조를 과시하기도 한다. 대기업 총수들이 국감장에서 모습을 감춘 것이 21대 국회의 달라진 풍경이다. 과거 야당 시절에 이들을 주로 국감장에 불러냈던 민주당이 입장을 바꾸면서 생긴 현상이다. 지난 7일 산업통산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 주은기 삼성전자 부사장,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등 증인 11명과 김경호 테슬라코리아 대표 등 참고인 1명에 대한 출석요구를 철회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비난하기는커녕 바람직하다고 고무했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당의 의석을 더하면 전체 의석의 94%다. 역대 최고치다. 진보정당의 정치적 존재감은 2004년 원내 진출 이후 가장 약해졌다. 20대 국회에서만 해도 진보정당과 소수 야당들이 4+1체제에서 나름대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일부 성과를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는 민주당이 독자적으로 패스트트랙이 가능한 절대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굳이 진보정당과 공조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야당이 제 역할을 해야 여당이 오만과 독선에 빠지지 않고 긴장하고 분발하는 법이다. 21대 국회에서 소수 정당들은 원내 영향력이 무시해도 될 만큼 미미한 수준이며, 국민의힘이 야당의 지위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다 알다시피 국민의힘은 낡은 과거 정당으로서 수구적이며 반동적이다. 미래로 전진하기 위한 대안 제시를 통해서 지지를 얻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집권 여당의 실책에 기대어 반사이익을 노리는 복고주의 세력이다. 김종인 비대위체제에서 개혁 코스프레를 연출하고 있으나 그것이 기만술임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수구적이고 반동적인 복고주의 세력은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세력을 긴장시키고 분발하게 만드는 순기능이 아니라, 되레 개혁의 후퇴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역기능의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8·15광화문집회다. 부동산 폭등으로 민심이 들끓어 문재인 정부가 궁지에 몰려있던 차에 수구반동 세력들이 8·15광화문집회를 강행하여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자 정부는 잽싸게 ‘K-방역’으로 프레임을 전환하여 정치적 위기에서 빠져나왔다. 민주당에게 수구반동 세력은 위기 탈출의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민주당이 야당 복을 타고 났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8·15광화문집회를 기화로 아예 광화문 광장을 경찰차벽으로 봉쇄해 버렸다. 촛불항쟁의 광장에 차벽이 등장하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 스스로 ‘2017 세계 시민상’ 수상 소감에서, “이 상을 지난 겨울 내내 추운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대한민국 국민들께 바치고 싶다”며 “촛불정신을 계승하라는 국민의 열망을 담고 대통령이 되었다”(2017.9.19.)라고 자임하지 않았던가.

광화문 광장은 민주주의와 촛불항쟁의 해방 공간이다. ‘명박산성’으로 기억되는 ‘경찰차벽’은 불통과 압제의 구시대 유물이다. 광화문 광장을 경찰차벽으로 봉쇄한 명분은 코로나19 방역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2011년 6월 서울광장 차벽 봉쇄에 대해 “일반적인 행동자유권을 침해했다”며 위헌판결을 내렸다. 대한민국 헌법 제69조의 대통령 취임 선서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한다. 당연히 이런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K-방역을 위해서라면, 헌법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는가?

경찰차벽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3년이다. 전경버스 대신 컨테이너 장벽이 등장한 것은 2005년이다. 그해 11월 아펙(APEC) 부산회의 때 쌀 개방 반대 시위를 막기 위해 2층으로 컨테이너 박스를 쌓았다. 노무현 정부 때였다. 2008년 광화문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를 막기 위해 쌓은 ‘명박산성’이 하도 유명해서 그렇지, 경찰차벽의 원조는 노무현 정부다.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차벽이 등장했다. 더구나 헌재의 위헌 판결에도 불구하고.

한국갤럽의 9월 넷째 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의 비호감도는 60%를 기록했다. 뭘 해도 싫다는 비호감이 60%에 달하는 집단이 광화문 차벽을 ‘재인산성’이라고 비판하니, 오히려 차벽 봉쇄가 정당화되는 역효과가 나타난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그 비호감 집단은 8·15광화문집회에서 코로나19 재확산의 위험을 실제로 보여준 바 있는 세력이다. 그러니 방역을 위해선 광장을 차벽 봉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역설이 성립한다.

광화문 광장을 어떻게 되찾아야 할까. 진보 세력이 풀어야 할 숙제다. (2020년 10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