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내 전작권 전환 무산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나는 두 달 전에 칼럼에서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전시작전지휘권(전작권) 환수가 물 건너가고 있다고 쓴 바 있다. 그런데, 그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 14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제52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가 열렸다. 한미 안보협의회의는 한미 간 안보와 관련된 주요 사안이 결정되는 가장 중요한 국방장관 회담이다. 그런데 제52차 회의에서는 한미 양국 장관이 모두 발언에서 전작권의 반환 시기를 놓고 공개적으로 이견을 드러냈고, 회의 이후 예정됐던 공동기자회견이 갑자기 취소됐다.

서욱 국방장관은 모두 발언에서 전작권 전환에 대해 “전환의 조건을 조기에 구비해 한국군 주도의 연합방위체제를 빈틈없이 준비하는 데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전작권 환수에 속도를 내겠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전환을 위한 모든 조건을 완전히 충족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조건 충족을 강조한 것이었다.

전작권 환수를 놓고 한미 간에 쟁점으로 되고 있는 ‘전환의 조건’과 그 조건 구비에 대한 검증, 그것을 핑계로 한 미국의 고의적인 전작권 반환 회피에 대해서는 이전 칼럼에서 상세히 썼으므로 오늘 다시 반복하진 않는다. <미완의 해방과 진정한 광복>(8월 17일 칼럼)을 뒤에 첨부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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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 간에 이견이 표출되었으나, ‘제52차 한미 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양 장관은 전시작전권이 미래연합사로 전환되기 전에 상호 합의된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계획에 명시된 조건들이 충분히 충족되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하였다. 양측은 「2015년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기본 계획」 및 「2018년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계획 수정 1호」를 완전히 준수할 의지를 재확인하였다.” 조건 충족을 강조한 미국의 입장이 반영된 결과다.

이로써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안에 전작권을 환수하려던 계획은 실현 가망이 없어졌다. 공동성명이 발표된 다음날 중앙일보의 코멘터리 ‘전작권 환수..문재인 임기내 안된다’라는 제목의 기사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안전을 위해 미군은 아직 필요하다. 우리가 전시작전권을 행사할 정도로 준비가 되었는지는 아직 검증조차 되지 않았다. … 이런 와중에 불과 1년여 남은 문재인 임기 내에 전작권을 전환하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나라의 안전을 보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면 군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군대의 지휘권을 남의 나라에 맡기는 것이 정상인가. 전작권을 타국에 70년이나 양도하고 있는 나라가 지구상에 우리 말고 또 있는가. 더구나 명색이 세계 10위의 경제력과 6위의 군사력을 갖춘 나라가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려야 한다니…. 구제불능 족속들의 한심한 의식이 문제다. 전작권 전환 이전에 의식의 전환이 먼저다.

2006년 9월 14일에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노무현-부시 간에 전작권 전환을 합의하였다. 노 대통령은 그해 12월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에 참석해 전작권 환수 연기를 주장하는 세력들을 작심 비판했다. 그는 “자기 나라 자기 군대 작전통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놓고 전작권 회수하면 안 된다고 모여서 성명을 내는 군 수뇌부는 직무유기 아니냐?”라고 따졌다. “근 20년간 북한보다 열 배가 넘는 국방비를 쓰고 있다”며 “그런데도 한국의 국방력이 북한보다 약하다며 옛날 국방장관들이 나와서 떠드는데 그 많은 돈을 떡 사먹었냐?”라고 직격했다. 이어 “부끄러운 걸 알아야지.”라고 호통을 쳤다.

제52차 한미 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에서 눈에 띄는 구절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폐기를 통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달성하기 위해 긴밀한 공조와 협력이 필요하다.”라고 한 대목이다.

우선, 공동성명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고 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반복하여 지적했듯이, 남북 정상회담과 조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것은 “한반도의 비핵화”지 “북한 비핵화”가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는 1990년대부터 이뤄진 양자 또는 다자간 ‘북핵’ 관련 모든 합의의 대원칙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부정하고 있다. 판을 완전히 뒤엎자는 것인가.

또한 공동성명은 북한의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달성한다고 했다. 이것도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앞뒤가 뒤바뀌었다. 한반도는 1953년 이래 67년째 ‘정전’ 상태에 놓여있다. 북측이 핵무장의 완성을 선언하고 나서 한반도의 평화가 깨진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부터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지속돼 왔던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평화가 ‘입구’이고 비핵화가 ‘출구’이다.

전작권 전환을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안보를 미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의식 자체의 근본적인 전환이 시급하다. 18일 10시(한국시간) 현재 코로나19 누적 사망자수가 가장 많은 국가는 미국으로 22만4천300명이 사망했다. 미국 CNN방송은 코로나19 미국인 누적 사망자 수가 미국이 최근에 치른 ‘5대 전쟁’에서 발생한 전사자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고 보도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참전 중 사망한 미국인은 베트남전 4만7천434명, 한국전 3만3천739명, 이라크전 3만519명, 아프가니스탄전 1천909명, 걸프전 148명이다.

작금에 미국은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이런 미국에게 전작권을 양도한 채 70년째 안보를 의존하고 있는 것 자체가 희대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전작권 환수에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군사력이 세계 6위라고 한들 정작 전작권이 없다면,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하루빨리 전작권을 환수해야 비로소 헌법 제74조 대통령의 국군통수권 행사가 온전히 보장되는 정상적인 나라로 될 수 있다. (2020년 10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