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의 반면교사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타계했다. 2014년 5월 쓰러져 의식을 잃고 삼성병원에 입원해 있다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 회장은 영욕이 교차하는 삶을 살았다. 공적도 있고 과오도 있다. 하지만 재벌의 공적에 대한 찬사는 차고 넘치는 반면에 과오에 대한 기록은 잠깐 명멸하다가 사라지고 만다. 매우 편향돼 있고 공정하지 않다. 이건희 삼성의 부끄러운 과오에 대해 짚고 넘어가는 것은, 공과를 종합적이고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서다.

이 회장은 지난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2008년에는 조세 포탈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두 번 모두 사면 받았다. 이 회장은 1995년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250억 원의 비자금을 제공한 혐의를 받았지만 검찰은 국내외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해 그를 불구속 기소하였다. 다음 해인 1996년 이 회장은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를 포기했다. 1년 뒤인 1997년 개천절에 사면·복권됐으며, 1998년 4월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이 터졌다. 삼성 X파일 사건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삼성 구조조정본부 본부장이었던 이학수 부회장이 홍석현 중앙일보사 회장과 만나 나눈 대화가 김영삼 정부 국가안전기획부(현재의 국정원)에 의해 도청·녹음됐고, 이 내용이 MBC에 의해 공개된 사건이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이회창 후보 측에 100억원의 정치 자금을 전달하는 문제와 실명으로 거론된 검사 7명에게 ‘명절 떡값’을 돌리는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었다.

삼성 X파일에 따르면 홍 회장은 이회창의 동생 이회성을 통하여 불법 정치자금을 건넸다. 사건이 불거진 후에 이회성은 검찰 수사 및 법정진술을 통해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주차장에서 총 60억원을 삼성으로부터 대선자금 지원 명목으로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엄청난 사건은 검찰의 삼성 봐주기 수사로 막을 내렸다. 이 사건의 수사를 지휘한 검찰 책임자가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 황교안이었다.

황교안은 이건희, 이학수, 홍석현 등 관련자 전원을 무혐의 처리했다. 그는 “당사자인 홍석현과 이학수가 녹취록 내용을 전면 부인해 혐의를 입증할 수 없었다.”고 뭉갰다. 심지어 이회성이 1998년 수사 때 한 진술을 뒤집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씨가 1998년 수사 때 삼성 쪽에서 60억원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을 30억원으로 번복한 것에 대해 “그때는 피곤한 상태에서 진술했고, 법정에서도 그냥 인정했다고 한다.”며 변호했다. 이는 명백한 이건희 회장 봐주기였다. 이회성이 받은 자금이 60억원으로 인정되면 뇌물 액수가 50억을 넘어 뇌물 제공자인 이 회장의 공소시효도 10년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이를 막으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검찰은 삼성 X파일 녹취록 작성자에 해당하는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 등을 구속 기소했다. 또한 삼성 X파일 폭로와 보도에 앞장선 이상호 기자와 노회찬 의원도 불구속 기소했다. 불법 정치자금을 조성하고 전달한 것은 처벌하지 않고, 불법을 폭로한 국회의원과 기자를 처벌하겠다는 검찰의 입장은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삼성의 ‘떡값’으로 사육돼 재벌의 사냥개로 전락한 검찰의 추악한 몰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05년 12월, 홍석현 회장의 중앙일보는 황교안 2차장을 사회 분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였다. 중앙일보는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이유로 “황 차장은 불법 도청 수사가 진행된 143일 동안 검찰 공안부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답게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시비나 수사기밀의 외부 유출 등 작은 실수 없이 수사를 말끔하게 마무리했다.”고 칭찬했다. 무혐의 처리에 대한 답례이자 이건희 삼성가가 자신의 충직한 사냥개에게 하사하는 감사패인 셈이다.

2007년 10월 삼성그룹의 전직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폭로로 삼성 비자금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삼성의 불법 비자금 조성과 이 비자금을 이용한 정·관계 및 법조계, 언론 로비의 내막이 드러났고,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의 불법행위와 에버랜드 사건 증인 조작이 폭로되었다. 파장은 엄청났고, 삼성 비자금 특별검사가 구성돼 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조준웅 특검팀의 수사 결과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특검은 1199개의 차명 계좌와 324만주의 차명 주식 등 은닉 재산 4조5000억원을 찾아냈다. 그러나 특검은 이 돈을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이라며 삼성에게 돌려주고, 이 회장은 횡령이 아닌 배임과 조세포탈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는 데 그쳤다. 그 결과 이 회장이 삼성 특검의 최대 수혜자로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졌고, 조준웅 특검은 삼성 비자금 ‘특별검사’가 아니라 ‘특별변호사’ 역할을 하는 희대의 코미디가 연출되었다.

이 회장은 2009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았다. 넉 달 뒤 이명박 대통령은 오로지 이건희 단 한 명만을 사면하는 ‘원포인트 1인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단 한 명만을 위한 사면 조치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삼성 비자금 사건에 대해 면죄부를 받았고, 2010년 3월 회장직에 복귀했다.

2010년 1월 조준웅 특검의 아들이 경력사원 모집을 통해 삼성전자에 과장으로 입사했다는 사실이 2012년 8월 언론에 폭로되었다. 조 특검 아들의 삼성전자 입사는 이건희 회장이 비자금 사건에 대해 특별사면을 받은 2009년 12월 31일로부터 보름 만에 이뤄졌다. 삼성전자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과장으로 진급하기까지는 통상 8년이 걸리는데, 조 특검의 아들은 10년여의 사법고시 낙방과 어학연수 1년 외에 기업 근무 경력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과장으로 특채가 된 것이다. 조준웅 특검의 삼성 비자금 수사 ‘특별변호사’ 역할에 대한 답례 외에는 달리 해석의 여지가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 3년차(2005년)에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 시장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했던 말은 빈말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4년차이지만 경제와 민생 분야의 실적이 가장 미흡하다. 촛불항쟁으로 들어선 문 정부가 ‘헬조선’을 ‘나라다운 나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기에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권력 위에 군림하는 경제권력(재벌체제)의 혁파 없이 경제 민주화와 민생 개선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다시금 명확해지고 있다.

한국의 대표 재벌 삼성의 불법·편법 경영권 승계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이건희 회장 본인이 공익법인을 통해 변칙 증여를 받았고,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세 자녀도 대물림을 이어가며 온갖 물의를 일으켰다. 이재용 부회장이 불법 경영권 승계와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뇌물 공여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지난날 삼성의 과오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했다. 무노조 경영을 포기하고, 4세 경영 세습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과연 이건희 삼성의 과오를 반면교사 삼아 어두운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삼성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2020년 10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