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4대 위기와 한미동맹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미국 대선이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의 당선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대다수 미국 언론들과 세계의 여론은 트럼프의 낙선을 기정사실화하고 안도하는 반응을 보이는 듯하다. 물론 트럼프의 패배는 다행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바이든의 당선으로 미국이 직면한 첩첩산중의 위기가 곧 해결될 것 같진 않다.

11월 7일(현지시간) 승리 연설에서 바이든은 대선 결과는 미국의 영혼을 복구하고 다시 단합하여 코로나19·경제·인종·기후변화의 위기를 해결하라는 분명한 위임이며, 단합된 미국에 불가능은 없다고 밝혔다. 바이든이 언급한 대로 미국의 4대 위기는 대단히 심각하고 급박하다. 하나씩 차례로 살펴보자.

무엇보다 가장 심각하고 급박한 위기는 코로나19 사태다. 갈수록 태산이다. 최근 2주 새 200만명이 걸렸고, 누적 확진자 수가 1,200만명을 넘는다. 사망자도 26만명을 넘어섰다. 엔비씨(NBC) 방송은 자체 집계결과 20일 하루에만 19만6천명이 확진을 받아, 하루 신규 감염자 수 최대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그 전날인 19일에도 19만3천명이 감염됐다. 씨엔엔(CNN)은 “11월이 미국에는 충격적인 코로나19 신기록으로 가득한 달이었다.”고 전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겨울이 닥쳐온다. 내년 3월까지 코로나19로 50만명 가까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워싱턴대 보건통계평가연구소(IHME)는 내년 3월 1일까지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47만1천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이 연구소는 미국 전역 50개 주 가운데 40개 주는 거리두기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면서 “그러지 않을 경우 사망자는 예측치보다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미국 일간 <USA투데이>가 전했다.

21일 로이터통신은 미국에서 코로나19 감염이 급증하면서 화장지와 청소용품 등이 다시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는 지난 3월 코로나19 1차 대유행 때 슈퍼마켓에서 ‘화장지 대란’이 일어난 바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 22개 주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부분 봉쇄조치를 도입하면서 화장지와 청소용품, 물티슈, 소독제가 빠른 속도로 팔려나가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19일 야간 통행금지와 모임 제한 등 부분봉쇄 조치를 발표했는데, 로스앤젤레스 코스트코 매장에서 곧바로 화장지가 품절됐다. 워싱턴주 밴쿠버 코스트코 매장에선 최근 화장지, 종이타월, 청소용 물티슈, 장갑, 통조림 등 일부 품목에 대해 구매량을 제한했다.

다음으로 경제 위기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터진 코로나19 사태는 경제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부채 쓰나미가 세계 경제를 덮칠 수 있다는 잿빛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위축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전 세계 정부와 중앙은행이 공격적 통화 팽창에 나선 여파다. 코로나19로 인한 부채 증가는 예견됐으나 상승세가 예상보다 가파르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지난 18일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가 지난해 말 320%였으나 올해 말에 365%로 늘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에만 약 15%가 껑충 뛰어 가파른 상승세다.

국제금융협회는 보고서에서 “전 세계 부채 증가 비율은 전례 없이 빠르다.”며 “향후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심각한 수준이며 경제 활동에 미칠 영향 역시 부정적이다.”라고 경고했다. 국제금융협회는 선진국의 올해 1~9월 국내총생산 대비 부채 비율은 50%포인트 이상 늘어난 432%라고 분석했다. 가장 위험한 국가는 미국이다. 선진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부채 비율 중 약 절반이 미국 몫이다. 국제금융협회는 미국의 총 부채액이 지난해 말 71조달러에서 올해 말에 80조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으로 미국 사회의 위기는 잔인한 인종차별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미국에서 흑인의 코로나19 사망률은 백인보다 네 배 넘게 높게 나타났다. 경찰과 극우주의자의 인종차별 폭력은 충격적이다.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질식사한 조지 플로이드, 자기 차에 타려다 경찰의 총에 등을 일곱 발 맞은 제이컵 블레이크, 집에서 자다가 경찰의 총을 여섯 발 맞은 브리오나 테일러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분출해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세계 80여 개 국으로 번졌다. 항의 시위가 격화하자 정부는 통금령을 내렸지만 시위는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미국의 도시·마을 열 곳 중 네 곳에서 시위가 벌어졌으며, 수천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뉴욕 타임스>는 2020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운동이라고 썼다. 이 운동은 트럼프 정부 하에서 가장 큰 대중운동이었던 2017년 ‘여성 행진’(약 500만 명 추산)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크고 격렬한 양상이다.

다음으로 기후 재앙도 미국이 직면한 위기다. 대서양 발 허리케인은 미리 정해 둔 이름이 다 떨어져 그리스 알파벳으로 불러야 했다. 관측 사상 두 번째 일이다. 미국 서부에 초대형 산불이 번져 서울시의 30배에 달하는 면적이 불에 탔다. 산불로 하늘은 오렌지색이 됐으며, 재가 비처럼 내리는 마치 지구 종말에 가까운 묵시록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산불 화재 현장을 방문해 “캘리포니아가 현재 직면한 문제는 미국 전역이 앞으로 직면할 문제”라면서 “미국 국민들이 모두 힘을 합쳐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전문가들은 서부의 대형 산불의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적한다. 평균 기온이 섭씨 1도 이상 올라가고 강수량이 30% 이상 줄어들면서 지난 40년 동안 가을에 화재가 발생하는 것도 두 배 이상 늘었다는 지적이다.

바이든은 “단합된 미국에 불가능은 없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하나의 미국’은 없다. 바이든 지지자의 59%가 흑인에 비해 백인이 특권을 누린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거기에 동의하는 트럼프 지지자는 5%에 불과하다. 바이든 지지자의 82%가 코로나19의 극복을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보지만 트럼프 지지자는 24%만 그렇게 생각한다. 바이든 지지자의 18%, 트럼프 지지자의 22%만이 상대방 지지자들과 미국의 본질적 가치를 공유한다고 생각한다. 명확히 ‘두 개의 미국’으로 갈려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미국에서 벌어진 두 개의 사태, 곧 코로나19의 참사와 대선에서 벌어진 난맥상을 똑똑히 지켜보고서도 우리나라 지도층은 여전히 한미동맹을 금과옥조처럼 섬기고 앉아 있으니 하는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한반도 태스크포스(TF) 소속 의원들이 5박 6일간의 방미 일정을 마치고 21일 귀국했다. 태스크포스 단장이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의원은 “이번 방문의 의미는 한미동맹 강화를 재확인한 데 있다.”면서 “방위비 분담금의 합리적 해결, 주한미군 존재와 한미동맹의 중요성에 대해 이견이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공감했다.”고 말했다.

한미동맹이란 미국에게 우리의 군사주권을 이양해 우리의 안보를 위탁하는 체제이다. 그런데 미국은 지금 자기 코가 석자고 제 앞가림도 힘겨워 헤매고 있는 처지다. 미국은 다른 나라의 형편을 봐주고 동맹국의 안보에 신경 쓰고 그럴 겨를이 없다. 지금 한미동맹을 붙들고 매달려 있을 때인가. (2020년 1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