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과 노동 개악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나는 지난 11월 2일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이전투구>라는 칼럼을 썼다. 칼럼의 요지는, 지금 민생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데 권력투쟁으로 날을 새는 것인지, 장관과 총장이 싸우려거든 공직을 그만두고 싸우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이며,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결자해지해야 마땅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칼럼에 대해 어떤 독자는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정치검찰을 청산하기 위한 검찰개혁을 이전투구라고 규정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일관되게 정치검찰을 척결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고, 칼럼들을 통해 그런 견해를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그러므로 정치검찰 청산 얘길 새삼스레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지난 24일 저녁 추미애 법무장관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징계에 넘긴다고 전격 발표했다. 현직 검찰총장의 직무배제와 징계회부는 초유의 사태다. 스스로 물러나라고 압박해도 안 먹히자 강제로 쫓아내겠다는 심산이다. 30일 서울행정법원이 직무배제 집행정지 심문을 진행하고, 다음달 1일 법무부 감찰위원회 긴급회의가 열린다. 2일 법무부는 검사징계위원회를 소집해 윤 총장의 징계 여부와 수위를 결정한다. 검사징계위가 해임·면직 등 윤 총장 중징계를 의결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실행된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검찰권력 개혁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왜 민중들의 눈에는 이전투구의 권력투쟁으로 비치느냐는 것이다. 검찰 개혁에 대해 전적으로 찬성하지만, 작금에 문재인 정부(법무장관은 정부의 일원)가 추진하고 있는 검찰 개혁이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에 대하여 의구심이 들기 때문일 터다. 개혁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중들은 왜 그런 의구심을 갖게 됐을까.

단적인 예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문제가 있다. 지난 10월에만 6명, 올해 과로사한 택배 노동자가 14명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산재사망자 수는 2,020명(사고 855명, 질병 1,165명)이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중 산재사망률 1위다. 지난 23년 동안 21번이나 1위여서 대한민국에는 ‘산재왕국’이라는 오명이 따라다닌다. 우리나라에선 산재가 코로나19보다 더 사망 위험이 높은 재앙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올해 반드시 처리할 ‘전태일 3법’ 중 하나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지정하고 대대적인 입법운동을 벌이고 있다.

영국에서 2007년에 제정된 법은 이름부터 살벌하다. 기업살인법(Corp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이다. 2008년 영국에서 한 건설노동자가 웅덩이 현장에 들어갔다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안전수칙 위반으로 해당 기업에 6억9천만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같은 해 이천 냉동창고 화재로 40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벌금 2천만원을 부과한 한국의 솜방망이 처벌 사례와 극명하게 비교된다. 영국에서는 기업살인법 제정 이후 산재사망 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산재사망자 수)이 2007년 0.70에서 2008년 0.60으로, 2009년 0.40으로 감소했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지난 9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산업 안전은 어제오늘의 과제가 아니다. 해마다 2,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산업현장에서 희생된다.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며 “이런 불행을 막기 위한 시작은 ‘생명안전기본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라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해놓고서, 민주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아니라 과징금을 상향하는 내용으로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자고 돌아섰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해놓고 정작 실행은 안 하는 상습적 기만 행태다.

민주당에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어려운 일인가. 전혀 아니다. 여당인 민주당 단독으로도 입법이 가능하다. 더구나 심지어 국민의힘조차도 명분상 이 법 제정에 찬성한다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 법 제정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일하다 죽을 위험을 방지하고 산재왕국의 오명에서 벗어나자는 취지의 이런 법률 제정조차 회피하면서 개혁을 운운한다면, 그 개혁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개혁을 추진하더라도 진정성이 있어야 신뢰가 간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도 안 하겠다는 정부‧여당이 검찰 개혁의 칼을 뽑아들고 칼춤을 춘다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검찰 개혁을 한다는 말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추 장관이 밀어붙이는 검찰 개혁은 진정한 개혁이 아니라 집권 여당의 권력 강화를 위해 검찰을 손보는 권력투쟁으로 비쳐진다. 그러니 이전투구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검찰 개혁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장도 있다. “검찰 개혁에 대한 열의를 공감하고, 누구보다 앞장서 함께하면서 사회경제적 개혁을 위한 요구와 투쟁으로 연결시킬 줄 아는 기예가 필요”하다면서, “진보좌파가 이것에 실패한다면 또다시 열린민주당이나 이재명 같은 세력이 등장해서 그 공백을 채워갈 가능성이 크다. 최악의 경우는 기득권 우파가 다시 부활할 여지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봐야 할까.

물론 정부의 검찰 개혁을 덮어놓고 폄하하고 매도할 건 아니다. 정치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을 개혁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경제적 개혁은 뒷전인 채 검찰 개혁에만 ‘올인’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게 되면 이전투구의 권력투쟁으로 전락하고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그러다간 검찰 개혁이 좌초될 수도 있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그것을 비판하고 바로잡아야지, 앞장서 함께하는 것은 잘못된 길에 동참하는 것으로 된다. 정부의 검찰 개혁에 함께하면서 사회경제적 개혁을 위한 요구와 투쟁으로 연결시키는 ‘기예’는 없다. 정부‧여당의 검찰 개혁에 함께하면서 사회경제적 개혁을 견인해보겠다는 생각은 순진하거나 무지한 착각이다.

정부‧여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커녕 노동법을 개악하겠다고 하는 판국이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악, 단체협약 유효기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쟁의행위 시 주요 업무 시설 전부 또는 일부 점거 금지, 사업장 소속이 아닌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 제한 등을 담은 노조법 개악이 추진되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회기 내 법 개정을 마무리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노동법 개악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경우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까지 일사천리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은 개혁하겠다지만 노동은 개악하겠다는 입장이다. 노동법 개악은 사회경제적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25일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노동법 개악을 반대하는 파업을 강행했다. 민심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개혁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2020년 1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