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검찰과 사법 개혁, 민주당은 왜?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지난 23일 자녀 입시비리 및 사모펀드 의혹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법원은 다음날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제기한 징계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윤 총장은 25일 정오께 휴일인데도 보란 듯이 대검 청사에 출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오후 2시 20분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판결을 수용했고,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국민께 사과 말씀을 드린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23일, 24일 판결을 계기로 정치검찰과 사법 개혁에 대한 논의가 다시 점화되고 있다. 나는 그동안 정치검찰의 척결과 사법 개혁에 대해서 누누이 강조해 왔다. 칼럼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반복하여 발언했다. 새삼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많이 다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전환기의 진보운동』 ‘사법농단과 적폐청산’ 란에 8편의 칼럼, 『진보의 창』 ‘정치검찰과 사법 개혁’ 란에 5편의 칼럼이 각각 게재돼 있다. 물론 올해 들어서도 주요 의제에서 빠뜨리지 않았다.)

※ 법원의 윤 총장 복귀 판결이 나온 바로 다음날 한겨레 기사 가운데 ‘사법쿠데타에 의한 브라질 민주주의의 전복’이라는 칼럼이 눈에 띈다. (▶️기사 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75792.html#csidx0441287f5e2612fb1d8f95a487eb307) 브라질에서 벌어진 ‘세차작전’(Operation Car Wash)에 대하여 나는 지난해 9월 30일자 칼럼(정치검찰을 물리쳐야 한다, 『진보의 창』 249~254쪽)에서 소개한 바 있다.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법원의 판결에 대해 민주당과 지지층은 충격과 격앙의 반응이다. 정 교수에 대한 1심 판결에 이어 바로 다음날 윤 총장 징계처분에 대한 법원 판단이 연이어졌으니 한층 분노가 커졌을 터다. 더구나 법원이 성탄절 사흘 연휴를 앞두고 선고 날짜를 택일을 했으니, ‘사법의 정치화’라는 의심이 더해져 감정적 격앙이 높아졌을 법하다.

민주당 의원들은 “윤 총장 탄핵”, “공수처 수사”,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 등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민주당의 공식 입장은 ‘검찰개혁 시즌2’에 돌입한다는 것이다. 25일 이낙연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비공개회의를 열어 제도적 검찰 개혁에 방점을 찍는 것으로 정리하고, 이를 위해 당의 권력기관 태스크포스(TF)를 검찰개혁 TF로 발전시키기로 했다.

정치검찰 청산과 검찰 개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검찰 수사권 폐지도, 공수처 출범도 당연하다. 여당 단독 입법이 가능하니까 민주당이 차질 없이 추진하면 될 일이다. 기왕에 ‘제도적 검찰 개혁’ 말이 나왔으니, 한 가지만 지적하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민주당에게 묻고 싶다. 검찰 제도 개혁을 말하면서 왜 ‘검찰총장 직선제’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이 없느냐는 것이다.

최고의 권력자인 대통령조차도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검찰 권력에 대한 견제와 통제가 필수불가결하다. 정치권력에 의해 임명되는 검찰 권력은 정치적 중립성을 끊임없이 의심받고 개혁의 도마 위에 오른다. 권력기관에 대한 시민의 통제를 실현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의 하나가 직선제다. 장기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제도적 장치가 대통령 직선제였고, 지방 자치와 분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직선제이다. 교육감 직선제도 마찬가지다.

지검장의 권한이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 교육감의 권한보다 약한가? 훨씬 더 크고 세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좀 과장해 말하면 지방 검찰 권력은 지방자치행정 권력의 생사여탈권을 좌우할 만큼 강하다. 그런데 왜 검찰 권력은 자치와 분권의 사각지대에 예외로 존재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왜 검찰 제도 개혁을 말하면서 검찰총장 직선제에 대해 말이 없을까?

여야 가릴 것 없이 우리 정치권에서는 입만 열면 미국의 제도를 선진 제도라고 인용하면서 서로 앞 다퉈 찬양하기 바쁘다. 그러니 마땅히 제도 개혁이라고 하면 미국의 제도를 따라 배우고 도입하자고 하는 데서 여야가 따로 없다. 그런데 미국의 검찰 제도에 대해선 여야 어느 쪽에서도 아무 말이 없다.

미국의 검찰 제도는 우리와 매우 다르다. 미국은 연방국가로서 연방법과 주법이 병존하고 있고 주마다 법률 제도도 다르다. 미국에는 한국처럼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의 직권을 겸해서 행사한다. 미국 검찰은 연방검찰, 주검찰, 지역검찰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이 세 기관은 상하관계가 아니라 다른 범죄관할권에 따라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형사 사건의 95%를 담당하는 주 검찰청 및 카운티(County) 검찰청의 검사장은 대부분 지역주민의 직접선출로 구성된다. 몇몇 주에서는 주지사가 임명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검찰 제도에 대해 소개하는 것은 그게 선진적이니 우리도 도입하자는 취지가 결코 아니다. 심지어 미국 같은 나라도 지방 검찰총장을 지역주민들이 선거로 선출하는데, 우리는 제도 개혁을 말하면서 왜 그런 언급조차 없느냐는 것이다. 웬일로 여야 정치권이 한통속으로 그러는지 그 속내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면의 제약으로 자세한 건 다음에 기회 있을 때 다루겠다.)

사법 개혁도 마찬가지다. 사법부가 얼마나 썩을 대로 썩었는가는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사법농단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 사법 개혁의 기대를 안고 출범한 김명수 사법부는 2019년 5월 이후 사법농단 판사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스스럼없이 무죄 판결을 남발했다. 사법농단의 주역들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속속 법관으로 복귀해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사법농단 사건의 피고인석에 선 자들이 태연히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해 잘 나가고 있다. 서초동에선 퇴직한 사법농단 판사들이 전관예우 효과로 사건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풍문까지 돌고 있다. 기가 막힐 따름이다.

오죽하면 지난달 19일 현직 부장판사가 사법농단의 주역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을까? (▶️기사 보기: “양승태 대법원이 인사 불이익” 현직 판사가 3억 손배소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9518.html) 현직 판사가 전‧현직 판사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건 사상초유의 전례 없는 사건이다. 판사들 내부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과 따가운 눈총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렇게 소송까지 냈겠는가?

소장이 접수된 11월 19일은 2년 전 각급 법원 대표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사법농단 관여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국회에 촉구한 날이다. 법관회의 의결이 나온 다음날 홍영표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법관 탄핵소추 논의를 즉각 시작하겠다. 이제 국회가 답을 해야 할 차례”라고 밝혔다. 그리고 민주당은 지난 4‧15 총선에서 사법 개혁을 내세우며 이탄희·이수진·최기상 등 판사 출신 후보들을 영입했고, 180석에 달하는 대승을 거뒀다.

국회는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발의하고 재적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법관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민주당이 의지만 있다면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 법관 탄핵 논의는 감감무소식이다.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가고 헌재가 최종적으로 이들의 파면을 결정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어서? 하지만 그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국회는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는 기관이고, 헌재는 인용 여부를 판단하는 기관이다. 민주당이 제 할 일을 방치한 채 헌재 핑계를 대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사법부는 자정능력이 없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지난 국감 때 여야 모두 ‘김명수 사법개혁 F학점’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국회가 법관을 탄핵하는 것 말고 주권자가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방법이 있는가? 민주당이 사법농단 법관의 탄핵소추도 안 하면서 사법 개혁을 말하는 것은 앞뒤가 서로 맞지 않고 모순 아닌가? (2020년 12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