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 박근혜 사면 논란의 가려진 뒷면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2021년 정초부터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논란으로 시끄럽다. 시민들은 코로나19 때문에 새해 해맞이조차 하지 못하면서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중하고 있다. 그런데 집권여당의 대표가 새해 첫 메시지로 시민들에 대한 감사와 위로가 아니라 이·박 사면을 들고 나와 염장을 지르고 분노를 지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2021년 새해 벽두에 이·박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론을 꺼냈다. 이 대표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며 “올해는 문 대통령이 일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해로, 이 문제를 적절한 때에 풀어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지층의 찬반을 떠나서 건의하려고 한다.”며 “앞으로 당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당 안팎에서 논란이 거세게 일자 민주당 지도부는 3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국민의 공감대와 당사자의 반성·사과가 중요하다. 국민과 당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진화에 나섰다. 이 대표는 사면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와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그런 일 없다."고 선을 그어 청와대로 비화되는 것을 차단했다. 하지만 “일단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려보겠다."고 덧붙여 여지를 남겨뒀다.

이·박 사면론에 대해 많은 비판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나치고 넘어가면 안 될 것만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당사자의 반성·사과에 대해서다. 두 사람은 지금껏 한 번도 잘못을 시인하거나 뉘우친 적이 없다. 반성과 사과는커녕 되레 적반하장이었다. 지난 10월 대법원에서 뇌물과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이명박은 “법치가 무너졌다.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씩씩대며 분개했다. 이달 14일 대법원 판결이 예정돼 있는 박근혜는 작년 4·15 총선을 앞두고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주실 것을 호소한다.”며 옥중 정치를 했다. 이러니, 사면이고 자시고 할 건더기가 추호도 없다.

사면(赦免)은 죄를 용서하여 형벌을 면제해주는 것이다. 범죄의 당사자가 반성·사과하면 사면을 해줘도 되는가? 2007년에 상영된 영화 <밀양>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창동 감독, 전도연과 송강호 주연의 영화다. 영화의 여주인공 신애는 밀양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데, 아들 민이가 납치되고 끝내 살해되고 만다. 그녀는 교회에 나가 하나님의 위로로 치유를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살인범을 면회한 그녀는 망연자실하고 만다. 살인범은 “하나님을 믿고 이렇게 죄 많은 저를 주님이 용서해주셨다. 새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신애는 울부짖는다. “어떻게 용서를 해요? 하나님이 벌써 용서하셨다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내가 용서를 해야지,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를 해요?”

이낙연 대표뿐인가? 민주당의 차기 대권주자 가운데 한 명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입장도 흥미롭다. 이 지사는 3일 이·박 사면론에 대해 “나까지 입장을 밝히는 것은 사면권을 지닌 대통령께 부담을 드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면론에 대한 입장을) 말씀드리지 않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3년 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 지사가 호기롭게 밝혔던 입장과 대비된다. 이 지사는 2017년 3월 13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촛불혁명 완수를 위한 6대 과제’를 제안했는데,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사면 불가 방침’을 첫손에 꼽았다. (※참고로, ‘사드(THAAD) 배치 반대’가 6대 과제의 두 번째였다.) 문재인, 안희정 두 경선 후보에게 “사면불가 방침을 공동 천명하자”고 제안하던 이 지사의 그 당당한 호기는 어디 가고, 이제 와선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고 회피한단 말인가.

정작 지나쳐선 안 될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흐지부지 넘어가고 있다. 진짜 주목해야 할 중대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박 사면 논란에 묻혀 유야무야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문재인 정부의 의사 국가고시 재시험 허용이다.

지난해 9월 의대생들은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확대 등 정부 정책에 반발해 의사 국시 실기시험 응시를 집단 거부했었다. 정부여당과 의료계가 합의에 이르렀지만, 학생들은 두 차례의 재접수 기회에도 시험을 끝내 거부했다. 결국 3172명 가운데 최종 423명만 시험을 치렀고, 2700여명이 의사면허를 딸 수 없게 됐다.

그런데 정부가 국시를 거부했던 의대생들에게 재시험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보건복지부는 2021년 의사 국시 실기시험을 상·하반기로 나눠 2회 실시하고, 상반기 시험은 1월 말 시행할 방침이라고 지난해 12월 31일 발표했다. 그간 하반기에만 치르던 국시 실기시험의 기회를 상반기 한 차례 더 늘려서 국시를 거부했던 의대생들에게 재시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그들은 이달 말 의사면허를 얻을 수 있는 특혜를 누리게 됐다.

정부는 그동안 재시험 기회는 없다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한 의료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면서 입장을 번복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달 20일 “코로나 상황을 감안해 조만간 정부가 결정하겠다. 국민 여론도 바뀌는 것 같다.”고 군불을 뗐다. 정 총리는 새해 1일 “지금 코로나19 상황도 그렇고, 공공의료가 충분하지 않다. 국민의 걱정을 잘 알지만 국민의 이익을 위해 결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냐?”는 질문에 대해, 정 총리는 “그렇다. 정부 내 이견은 없다.”고 답했다. 지난해 8월 말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국시 취소 의대생에 대한 재접수 반대’ 국민청원에 대해 57만여명이 찬성했다. 당시 청와대는 “국민의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는 점을 말씀드린다.”며 재시험 계획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입장을 뒤집고서도 청와대는 침묵하고 있다.

정부가 손바닥 뒤집듯이 원칙을 어기고 국시 거부 의대생들에게 특혜를 준 데 대해 어느 누가 찬성할까. 정부는 1월 말 의사 국시 실시를 위해 “시험 실시 90일 전까지 공고해야 한다.”는 의료법 시행령도 개정할 방침이다. 제멋대로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을 구제하겠다고 시행령까지 개정해가면서 특혜를 베푸는 것은 편법이고 반칙이다. 이것이 과연 문재인 정부가 그토록 강조한 ‘평등’과 ‘공정’과 ‘정의’의 정신에 맞는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특권과 반칙을 조장하면 국민의 공분을 사게 마련이다. 정부가 국시 거부 의대생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특혜를 베풀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으나, 민주당은 조용하다. 이·박 사면에 대해서는 말이나마 “국민의 공감대” “당사자의 반성·사과” 운운하더니, 국시 거부 의대생들에 대한 조건 없는 ‘면죄부’와 관련해선 일체 말이 없다. 정부의 의사 국시 허용 결정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히는 의원 하나 없다. 오히려 “정부가 발표해서 당이 책임론에서 벗어났다.”거나 “어차피 누군가는 풀어야 할 문제인데 정 총리가 총대를 멨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9월 의대생 국시 재시험 주장이 나오자, “이익을 지키는 투쟁수단으로 포기해 버린 권리와 기회를 또다시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특혜요구다.”면서, “힘만 있으면 법도 상식도 위반하며 얼마든지 특혜와 특례를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고 사실상 헌법이 금지한 특권층을 허용하는 결과가 된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던 민주당 인사가 있다. 그는 “불법의 합법화, 불합리한 예외 인정, 특례 특혜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모두가 원하는 공정한 나라, 함께 사는 세상은 ‘법 앞의 평등’ 실현에서 시작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다. 하지만 이 지사는 정부의 의사 국시 허용에 대해 아무 말이 없다.

이명박‧박근혜에 대한 사면과 의사 국시 허용의 면죄부,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사면과 면죄부는 기득권층의 특권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기득권층의 특권 수호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도 예외가 아니다. 게다가 이‧박 사면은 단행이 아니라 ‘건의’인데도 크게 논란이 일면서도, 의대생 면죄부는 ‘시행’이 결정됐는데도 흐지부지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사면 논란의 가려진 뒷면이다. (2021년 1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