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등급과 인권의 차별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지난 금요일(1월 8일)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 취지가 무색하다. 법 취지를 훼손한 정부안을 바로잡으라는 산업재해 유가족과 노동계의 요구에 대해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정부안보다 되레 크게 후퇴한 내용으로 대답했다. 국민의힘이야 언급할 가치도 없지만, ‘노동 존중’을 외우던 정부와 여당의 낯짝이 얼마나 두꺼운지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이름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개명이 됐으니 법안의 내용이야 오죽 엉망진창으로 누더기가 됐을 텐가. 산재 유가족을 비롯하여 노동계에서 조목조목 지적하여 비판하고 성토했으므로 내가 굳이 더 보태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만 한 가지를 꼭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적용 제외’,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에 대해서다.

전국 사업체 중 5인 미만이 79.8%, 50인 미만이 98.8%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9년 산업재해 발생 현황’에 의하면, 산재를 입은 근로자 10만9242명 가운데 8만3678명(76.5%)이 50명 미만 사업장 소속이었다. 산재 노동자 10명 중 8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인데, 고작 나머지 20%에 적용되는 법은 있으나마나다. 산재 사망자의 60%가 발생하는 5~49명 사업장에 대해 법 적용을 3년 유예하고 20%가 발생하는 5명 미만 사업장은 대상에서 제외하는 이따위 실효성이 없는 법이 무슨 법이란 말인가. 부동의 산재왕국 1위라는 오명이 부끄럽다.

중대재해처벌법을 5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 제외 또는 적용 유예하는 것은 법 적용에서의 차별이다. 사업장의 규모에 따라 노동자의 생명과 인권에 대한 차별을 합법화하는 것이며, 노동자의 죽음에도 등급을 매기는 끔찍한 반인권의 야만이다. 한국의 노동자는 법 앞에 평등하지 않으며, 만인이 평등하다는 건 진리가 아니라 거짓임을 선언하는 셈이다.

한 사회의 면모는 잘나가는 강자의 권세가 아니라 가장 약한 사람의 인권을 통해서 드러난다. 영세·중소 사업장 노동자의 처우는 대기업 노동자의 형편에 비할 바 없이 열악하다.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라서 노동자로서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한다. 사업주는 언제든 해고할 수 있으며, 해고되더라도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할 수 없다. 주 52시간 근무제 대상도 아니며, 휴업·연장근로·야간·휴일수당을 받지 못한다. 아무리 오래 일해도 연차휴가를 쓸 수 없고,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도 보호받지 못한다. 이런 차별만으로도 서럽고 억울한데, 이제 죽음마저도 등급이 매겨져야 한단 말인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서 제외된 일터괴롭힘, 법 적용이 유예된 50인 미만 사업장 등에서 자식을 잃은 산재 유가족들은 울분을 토로했다. 한 달 가까이 국회에서 단식농성을 계속한 유가족들은 “어떻게 사람의 죽음을 차별하느냐?”, “5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란 말인지 묻고 싶다.”며 국회를 강하게 성토했다.

가관인 것은 정부·여당 관계자들의 발언이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이번에 통과된 법이 “노동 존중 사회의 초석이 될 것”이라며 “어려운 법안을 여야 합의로 마련했다는 데 일단 의미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조국 전 장관은 9일 SNS에 “이 법(중대재해처벌법)의 원형은 고 노회찬 의원이 2017년 대표발의한 법”이라며 “하늘에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썼다. 견강부회와 후안무치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사람이 먼저다!’를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인권 차별은 이 정도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동부구치소 코로나19 확진자가 1100명을 넘어섰다. 전체 수용자의 절반 가까이 감염된 것이다. 사망자도 2명 나왔다. 코로나 확진자 발생 이후 법무부는 수감자들에게 마스크도 배분하지 않았고, 자비 구입도 불허했다. 심지어 외부 병원에서 의사가 넣어주려 한 마스크를 회수해 가기도 했다. 수감자들에게 인권은 없었다.

법무부와 구치소 측은 첫 확진자 발생 이후 3주 가까이 지나서야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집단감염이 시작된 뒤에도 구치소 안에서 손 소독과 발열체크 등 기본적인 방역수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게다가 법무부와 구치소 당국은 이런 실태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수감자들의 외부 서신 발송도 가로막았다. 수감자들이 철창 사이로 “살려 달라”고 애원하며 내부 상황을 폭로하고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나서야 구치소 측은 서신을 소독해서 발송하겠다고 했다.

서울동부구치소는 코로나 방역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었으며 수감자들의 인권은 정부 당국의 관심 밖이었다. 물론 죄를 저질렀으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구치소 수감자라고 하여 아예 인권을 무시하고 천대해서는 안 된다. 수감자라고 하여 사람 취급을 안 하고 인권을 짓밟는 것은 잘못이다. 비록 범죄에 연루됐을지라도 그들 역시 어느 누군가의 자식이고 부모다. 단지 범죄 혐의자로 수감됐다는 것만으로 감염병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은 부당한 인권 침해다.

하긴 서울동부구치소에 수용된 수감자의 인권이 전부 다 무시됐던 건 아니다. 징역 17년의 중형을 언도받고 이곳에 수감돼 있던 이명박 재소자의 경우는 매우 특별했다. 법무부는 구치소에 코로나 확진자가 퍼지자 그걸 핑계로 이명박을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줬다. 코로나19가 일반 수감자에게는 공포의 재앙이었지만 이명박에게는 오히려 감옥에서 빠져나갈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다. 병원 생활의 특별대우로도 모자라 정치권에서 사면 얘기까지 슬슬 흘러나오고 있다. 인권의 사각지대 감옥, 그곳에서도 수감자의 인권에서 현격한 차별이 엄연히 존재한다. (2021년 1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