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리아의 경고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장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2021년 신년사를 발표했다. 코스피 3000시대를 열었다고 자찬했다. G20 국가 중 가장 높은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고, 위기 속에서도 한국 경제의 미래전망이 밝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낙관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시대가 끝나고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코스피 3000이 장밋빛 전망의 지표인가? 국내 증시는 지난해 사상 유례없는 기록적인 호황을 보여줬다. 전체 상장기업 시가총액은 2366조원으로, 연초 대비 45.6% 증가했다. G20 중에서 중국(45.9%)과 함께 압도적으로 높은 증가율이다. 미국은 23.7%이었고, 다음은 독일(10.5%), 프랑스(9.3%), 일본(8.5%) 등의 차례였다.

뜨거운 증시와는 반대로 서민의 살림살이는 차가운 냉골이다. 일자리는 외환위기 이후 최대 폭으로 줄었다. 임시직은 1989년 통계 작성 뒤 가장 많은 31만 명이 줄었고 일용직이 10만 명, 직원을 둔 자영업자도 1998년 외환위기 뒤 최대인 16만 명이 줄었다. 실업자도 111만 명에 육박해 2000년 이후 가장 많았고 실업률은 2001년 이후 최고였다.

증시가 뜨거우면 자산 양극화가 심해진다. 주식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자산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지는 것이다. 12일 통계청 국가통계시스템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금액) 보유 상위 20%의 평균 순자산은 11억2481만원으로 하위 20%(675만원)보다 11억1000만원 이상 많았다. 이에 따라 ‘순자산 5분위 배율’은 166.64배로, 통계청이 조사 방식을 바꾼 2017년 이래 최고치였다. (순자산 5분위 배율은 상위 20% 5분위 가구의 평균 순자산을 하위 20% 1분위의 순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수치가 클수록 계층 간 자산 불평등이 심하다는 의미다.)

지난해 3월 기준 통계로 계산할 때 순자산 5분위 배율이 2017년 이래 최고치였다. 상위 20%의 평균 순자산은 2017년 9억4670만원에서 계속 올라 3년 새 18.8% 늘어난 반면, 하위 20%는 같은 기간 950만원에서 줄었다. 그런데 지난해 3월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주가가 대폭락해 코스피 지수가 2000 밑으로 떨어졌을 때다. 이제 코스피 3000을 돌파했으니 순자산 격차가 최고치를 갈아치웠을 거란 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14일 기자회견에서 서울 아파트 6만3000세대 시세변동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경실련 분석에 따르면,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 당시 6억6000만원이었던 서울의 82.6㎡(25평형) 아파트값은 지난해 12월 11억9000만원으로 뛰어 5억3000만원이 올랐다. 문재인 정부 4년간 82% 상승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4년간 아파트값이 5억3000만원(82%) 오르는 동안 임금은 300만원(9%) 올랐다. 지난해 노동자의 평균 임금(3400만원)을 30% 저축한다고 가정하면, 서울에서 25평 아파트 1채를 사는 데 118년이 걸리는 셈이다. 청년들이 말하는 ‘이생집망’(이번 생에 집 사기는 망했다)이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집값이 급등하면 자산 양극화 현상이 극심해진다. 한국은 가계 자산의 76%가 부동산 관련 자산이고 주택자산이 50%를 넘는다. 집값 폭등은 자산 불평등의 격차를 심화시키고 집 없는 서민들의 박탈감을 키우는 최대의 화근이다. 집값이 뛰면 자산 격차가 벌어지고 민심이 나빠지는 건 당연지사다. 급기야 ‘벼락거지’란 신조어까지 생겼다. 벼락부자의 반대 개념으로, 자산 격차가 벌어져 한순간에 거지 신세가 된 서민들의 자조 섞인 말이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는 매우 송구한 마음이다. 주거 안정을 위해 필요한 대책 마련을 주저하지 않겠다. 특별히 공급확대에 역점을 두고,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다양한 주택공급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답답하다. 주택공급을 늘린들 돈 없는 서민들에게는 하늘의 별 따기인데, 이게 무슨 대책이란 말인가.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은 지난달 칼럼-‘국토부 장관 경질, 갈수록 태산’-에서 이미 다뤘으므로 더 언급하지 않겠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우리 경제는 지난해 OECD 국가 중 최고의 성장률로 GDP 규모 세계 10위권 안으로 진입할 전망이며 1인당 국민소득 또한 사상 처음으로 G7 국가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게 내다봤다. 서민의 살림살이가 나날이 나빠지고 자산 불평등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데, 이런 낙관적 전망을 늘어놓고 있다니…. 나락에 떨어져 신음하는 노동자·농민·자영업자의 삶과 너무나 동떨어진 현실 인식이 아닐 수 없다.

‘빚투’(빚내어 투자)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매입) 같은 무리한 투자가 몰려서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이 과열되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정부도 이것을 모를 리 없을 터다. 지난해 주택거래대금 규모는 360조원을 넘는다. 전년 대비 110조원 이상 증가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주택거래대금 비율은 작년 3분기 말 기준 18.4%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연초에 코스피, 코스닥의 일평균 거래대금 규모가 64조원까지 치솟았다. 주식시장의 개인 신용공여 평균잔액이 36조원, 대기성자금인 고객예탁금도 70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가계부채가 1941조원에 이르렀다.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은 101.1%까지 올랐다. 100%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년 전보다 16.5%포인트 뛰었다. 나라 전체가 1년간 번 돈을 다 합쳐도 가계가 빌린 돈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국제금융협회의 지난달 통계를 보면, 지난해 3분기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대출 비율은 100.6%로, 세계 평균(65.3%)과 선진국 평균(78%)을 크게 웃돈다. 소비가 저축보다 많은 과잉소비로 유명한 미국(81.2%)보다도 높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7%나 증가했다. 사실상 한국이 세계 최고인 셈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최근의 주가 상승 속도가 과거에 비해 대단히 빠르다”며 “과도한 레버리지에 기반한 투자 확대는 예상치 못한 쇼크로 인해 가격 조정이 있을 경우 투자자가 감내하기 어려운 충격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택가격도 실물경기와 소득여건에 비춰 과도해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5일 금융-실물 간 괴리 확대를 지적한 데 이어 열흘 만에 나온 두 번째 경고다. 하지만 말로만 그칠 뿐 실질적 조처는 취하지 않는다. 거품이 꺼지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진작에 경고하지 않았었느냐?”고 알리바이를 대기 위한 발언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탄광의 카나리아’는 다가온 위험을 먼저 알려주는 감시 역할을 했다. 과거 광부들이 탄광 갱도에 들어갈 때 일산화탄소 중독에 대비하기 위해 유독가스에 민감한 카나리아를 데리고 들어간 데서 유래했다. 실물경제는 하락하는데 자산가격이 상승하는 현상은 정상이 아니라는 것, 과다한 빚으로 부풀고 있는 자산시장의 거품이 결국엔 터지고 만다는 것은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예측한다. 가계부채 시한폭탄의 시계가 째깍째깍 제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2021년 1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