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비 탄핵,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국회가 4일 사법농단 연루자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원 179명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법관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만시지탄이다. 임 부장판사는 ‘세월호 7시간’ 재판 등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2018년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임 부장판사의 탄핵 필요성을 제기했었다.

‘세월호 7시간’ 재판 개입 사건이란 무엇인가? 2014년 8월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기사를 작성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검찰에 의해 명예훼손죄로 기소된다. 양승태 사법부의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은 임성근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위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 재판장 이동근 판사에게 ‘보도가 허위라는 중간 판단을 내려라’, ‘판결 내용을 사전에 보고해라’, ‘법정에서 대통령 명예훼손을 훈계해라’ 등의 재판개입을 했다.

재판 막바지에 임성근은 이동근에게 판결이 선고되기 전에 판결문 초안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동근은 그 지시에 따르고 임성근은 2015년 11월 17일 자신이 판결문 초안을 수정한 뒤 이동근에게 이메일로 송부한다. 선고 때 재판부가 낭독할 판결 요약본을 직접 수정한 것이었다. 가령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고 기재되어 있던 판결문 초안은 ‘명예훼손이 된다. 목적이 없어 무죄일 뿐’으로 바뀌었다. 이동근은 법정에서 그걸 그대로 읽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명문화돼 있다. 임성근은 직접 사건을 검토한 판사가 재판 절차를 거쳐 선고한 판결문을 수정하도록 종용했으며, 법정에서 재판장이 구술할 내용을 사전에 미리 보고받아 문구를 하나하나 수정했다. 담당 사건 재판부의 재판장도, 주심도, 심지어 배석판사도 아닌 임성근이 직접 개입해 판결을 바꾼 것이다. 헌법이 살아있는 법치국가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버젓이 자행된 것이다. 재판개입은 명백한 헌법 위반 행위이다.

임성근의 재판개입은 ‘세월호 7시간’ 재판에만 그치지 않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들의 불법 집회와 관련한 사건 판결에서는 해당 사건 재판장에게 요구해 양형 이유 중 민감한 표현을 수정하게 했다. 원정도박 사건에 연루된 프로야구 선수 임창용·오승환 씨를 정식재판에 넘기려는 재판부의 판단을 뒤집고 약식명령으로 사건을 종결하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위헌적인 재판개입을 상습적으로 자행한 것이다.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던 임성근에 대해 지난해 2월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임성근의 행위들은 대부분 사실로 인정된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런 행위는 구체적인 특정 사건의 재판 내용이나 결과를 유도하고, 절차 진행에 간섭한 것”이라며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1심 판결에는 ‘(임성근 등의 행동은) 위헌’이라는 표현만 6차례 등장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헌법은 위반했지만 직권남용으로 볼 수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법비(法匪, 법복 입은 도적)의 도를 넘은 제 식구 감싸기였다.

사법부가 사법적폐를 청산할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은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 지난 3년간 사법농단 사건의 처리를 보면 ‘절망’이라는 한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기소된 법관들은 ‘100% 무죄 판결’을 받았다. 심지어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던 4일에도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 선고를 받았다. 법원은 사법적폐 판사들에게 잇따라 면죄부를 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사법농단 세력들이 오히려 피해자 행세를 자처하기도 한다.

김명수 사법부의 자체 징계는 시늉으로 그쳤을 뿐이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사법농단 연루 의혹 판사는 총 93명이다. 대법관 10명을 포함해 차관급 이상 판사가 34명이나 된다. 하지만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고작 법관 8명만 솜방망이 처벌하는 것으로 끝냈다. 법관 징계 최고 수위인 정직 1년을 받은 이는 단 한명도 없었고, 이번에 탄핵소추된 임성근은 기껏 견책에 그쳤다. 검찰 기소로 재판업무에서 배제됐던 7명의 판사도 재판부에 복귀했다.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자가 법복을 입고 단상에 앉게 된 것이다. 아예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은 채 퇴직한 이들도 여럿이다.

사법부가 적폐 청산과 개혁 의지가 없고 자정 능력을 상실했으니 외부에서 수술을 통해 사법 개혁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탄핵이 유일한 수단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탄핵소추 법관은 임성근이 최초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두 번이나 있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그간 사법부는 신성불가침의 성역이었던 셈이다. 법관에 대한 탄핵을 명시한 헌법 제65조는 사문화돼 있었다. 국회의 직무유기가 그것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번에 임성근의 탄핵소추 과정에서 사법부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임성근이 미리 사표를 내 탄핵을 피하려 한 사실이 드러났고, 사표 반려 과정을 둘러싸고 임성근과 김명수 대법원장의 말이 엇갈리면서 사법부의 추악한 민낯이 까발려졌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차관급의 최고위직 법관이다. 임성근은 사법부 수장과 대화하며 그걸 몰래 녹음한 것도 모자라 탄핵의 위기에 몰리자 자신의 구명을 위해 녹취록을 폭로했다. 몰래 녹음해 공개한 자도 대단하고, 해명이랍시고 거짓말을 둘러댄 대법원장도 대단하다. 생양아치들의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이런 자들이 법복을 걸치고 근엄한 척 권세를 과시하며 사법부 독립을 운운했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했다. 위헌·위법 행위를 상습적으로 저지른 임성근 같은 자가 고법 부장판사라는 고위직을 차지한 것을 보면 사법부가 얼마나 썩어빠졌는지 익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법관은 ‘양심에 따라’ 심판한다는 대목이다. 임성근 같은 법비에게 양심이란 게 있을까? 이런 자가 법복을 걸치고 30년이나 법관 행세를 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물론 법관들이 죄다 임성근처럼 부패타락하진 않을 테고, 정말 양심적인 법관도 있을 것이다. 법관들을 전부 싸잡아서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5일 임성근의 사법연수원 동기 명의로 나온 성명은 기가 차다. 이들은 “소속 법관이 부당한 정치적 탄핵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도록 내팽개쳤다”며 “탄핵돼야 할 사람은 김 대법원장”이라고 강변했다. 성명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다. 성명을 배포한 김현 전 대한변협 회장은 “단톡방에 있는 17기 동기 200여명 중 140명이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기수’라는 전근대적 용어가 등장한 것부터가 의미심장하다. 군사독재 시절에 육사 출신들이 과시했던 게 ‘기수’ 문화였다. 법조인들이 얼마나 전근대적 특권의식에 젖어있는가를 보여준다. 무슨 조폭집단도 아니고…. 그러니 욕을 먹는 것이다.

나는 진작부터 사법적폐 청산을 위해 국회가 법관 탄핵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국회가(정확히 찍어서 말하면 민주당이) 뒤늦게나마 임성근의 탄핵소추를 의결한 것은 다행이라고 본다. 하지만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여태 뭐하고 앉았다가 이제야 탄핵을 한답시고 요란하게 생색을 내는 걸까? 4·7 보궐선거를 앞두고 개혁 코스프레를 연출하기 위해 벌이는 쇼가 아닐까? 그런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비 탄핵, 만시지탄이고 이제 시작일 뿐이다. 법복 입은 도적들이 아직도 우글우글하다. 더 많은 탄핵이 필요하다. 도적들이 탄핵을 피해 도망치기 전에 국회는 꾸물거리지 말고 신속하게 도적 무리를 탄핵해야 한다. 민주당은 과연 그럴 의지가 있을까?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유감이고 비판이 억울하다고 생각한다면, 민주당이 다음 법비 탄핵 절차에 얼른 착수하면 될 일이다. 민주당 단독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면서 유감 운운한다면, 의지와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2021년 2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