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다운 설을 보내려면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우리 모두 초유의 설을 보냈다. 5인 이상 모이는 게 금지돼 직계가족들조차도 한 자리에 모이지 못했으니 명절이라고 부르기도 뭐하다. 2021년 설은 명절 같지 않은 설이다.

통계청이 10일 발표한 ‘1월 고용 동향’을 보면, 취업자가 2581만8천명으로 1년 전보다 98만2천명 줄었다. 외환위기 당시 1998년 12월(128만 명 감소) 이후 최악이다. 실업자도 157만명으로, 1999년 6월 통계 작성 이후 최대다. 실업률도 5.7%로, 1999년 8월 이후 최고다. 실제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 실업자 집계에서 빠지는 비경제활동인구 중 ‘그냥 쉰 사람’과 원하는 일자리가 없어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구직 단념자’를 합치면 실업자가 무려 349만명이다. 1년 전보다 61만명 이상 늘어, 통계 작성 이후 최대다. 명절을 한층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흥겨운 명절 분위기를 만드는 데서 아이들의 뛰어 노는 소리를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 웃음소리를 듣기 어렵다. 이달 말 발표되는 인구동향에서 확인되겠지만, 2020년 (합계)출산율은 0.9 미만으로 떨어질 게 틀림없다. 2020년 1분기 출산율 0.90명에 이어, 2분기와 3분기에 연속으로 출산율이 0.84명을 기록해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7개 회원국의 출산율을 매년 조사해 발표한다. 한 나라가 현재의 인구 수준을 현상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출산율이 2.1명이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983년 2.06명으로, 2.1명 아래로 내려간 이래 계속 하락했다. 2017년 1.05명으로 1명대를 간신히 유지하다가, 2018년 처음으로 1명 아래(0.98명)로 떨어졌고 2019년 0.92명으로 더 떨어졌다.

출산율 1명 미만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인구 감소 추세가 가팔라진다. 한국은 이미 지난해에 주민등록인구가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자연 감소했다. 출생아가 사망자보다 적은 ‘인구 데드 크로스(dead cross)’ 현상으로 1년 전보다 인구가 약 2만명 줄었다. 오는 2029년부터 인구 감소가 시작될 것이라던 통계청의 인구 추계보다 9년이나 앞당겨졌다.

작년 출생아는 역대 최저치인 27만5815명으로 30만명선이 붕괴되며 2019년보다 10.7%나 줄었다. 1990년 출생자 수(65만명)와 비교해 30년 만에 58% 줄어든 것이다. 한 세대 간 인구 차이가 이렇게 나는 경우는 전쟁 상황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렇게 진행될 경우 인구 5000만명 선이 붕괴되는 시점도 2034년으로, 당초 예상보다 10년 빨라지게 된다.

출산율의 선행 지표가 조(粗)혼인율이다. 조혼인율이란 인구 1천 명당 혼인 건수를 의미하는 말로, 혼인의 가장 기본적인 지표이다. 조혼인율은 2012년부터 계속해 하락하는 추세다. 통계청의 ‘2019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혼인 건수는 23만9200건으로 전년(2018년)보다 7.2% 줄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70년 이후 역대 최저다. 2019년 조혼인율은 4.7건을 기록했으나, 지난해 3분기엔 3.7건으로 급락했다.

지난해 코로나19의 충격으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연애·결혼·출산의 ‘삼포’ 현상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미 지난해 3~9월 혼인 건수는 재작년 같은 기간(13만4천 건)보다 10% 넘게 감소해 11만8천 건에 그쳤다. 또 국민건강보험에 따르면, 임산부가 진료비 지원 등을 위해 발급받는 국민행복카드 발급 건수는 지난해 4~8월 13만7천 건으로, 1년 전보다 6.7% 줄었다.

청년들은 결혼을 안 하는 것일까, 못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청년들은 결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그리고 결혼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불안이다.

‘저출산과 청년 일자리’(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16.11.) 보고서에 따르면, 일자리가 안정적이고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혼인율이 높았다. 소득수준에 따른 혼인율 차이가 극명하게 대비됐다. 가장 낮은 소득분위 1분위에 속하는 20~30대 남성의 결혼 비율은 6.9%에 불과한 반면, 가장 높은 소득분위 10분위에 속하는 20~30대 남성의 결혼 비율은 82.5%에 달해 10배 이상의 차이가 났다. 고소득에 속하는 소득분위 7분위에 속하는 20~30대조차도 남성 혼인율(49.0%)이 절반에 못 미쳤고, 소득분위 8분위가 되어야 비로소 혼인율이 과반을 넘었다.

청년들이 결혼을 못하는 이유가 경제적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특히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혼인율의 차이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한국 사회는 상위 30% 이내의 고소득자가 되어야만 결혼 가능성이 과반 이상일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그야말로 ‘헬 조선’이다.

높은 청년실업률, 불안정한 비정규직 일자리,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고용 불안의 확산은 청년들의 현재는 물론 미래마저 불안하게 만든다. 이렇게 소득이 안정적이지 않고 당장 몇 달 앞의 미래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평생을 함께할 결혼은 꿈도 꾸기 어려울 터다. 혼인율이 떨어지면 출산율이 감소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반면에 일단 결혼한 부부들의 출산율은 과거보다 더 높아졌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철희 교수가 2000~2016년 통계청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기혼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2.23이었다. 지난 2000년(1.7명)보다 더 높은 수치다. 일단 결혼을 할 수만 있다면 출산율은 2.1명 이상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으로 떨어진 것은 결혼을 하지 못하는 청년층이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트렌드모니터가 지난달에 전국 만 19~49세 미혼 남녀 10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혼자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 공감했다. 전체 응답자의 88%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답했으며, 저출산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는 주장에 79%가 공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저출산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다는 응답은 5.3%에 불과했다.

2017년 트렌드모니터에서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결혼 관련 조사에서 결혼 준비 때 가장 염려되는 부분(중복응답)을 물었더니, 집 마련 문제(77.4%)가 가장 부담이 된다고 답했다. 결혼 자금(65.2%)과 임신/육아 문제(42.9%)가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집값이 터무니없이 비싸서 어지간한 노동자의 임금으론 내 집 마련이 어렵고, 전세(월세)집 구하기도 만만치 않은 현실의 반영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달 14일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25평 아파트값이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6.6억원에서 5.3억원이 올라 11.9억원이 됐다. 무려 82%나 올랐다. 그런데 이 기간에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고작 9%(3백만원) 올랐다. 노동자 임금을 한 푼도 안 쓰고 36년을 모아야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다. 지난 4년 동안 아파트 구입에 드는 기간이 21년에서 되레 15년이 늘어 36년이 됐다. ‘이생집망’(이번 생에 집 사기는 망했다)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출산율이 1명 미만인 유일한 나라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 출산율은 1.63명이다. 한국의 0점대 출산율은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로 알려진 일본(1.42명), 그리스(1.35명) 등보다도 훨씬 낮고, 초저출산 기준(1.3명)에도 크게 미달하는 압도적 꼴찌다. 대한민국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사람의 생명이 가장 태어나기 어려운 나라다. 이게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인가?

청년들이 ‘N포세대’라고 불리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내일의 주역인 우리 청년들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이라고,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라야 미래가 있다. 불평등의 세습을 끝내는 대담한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명절다운 설을 보낼 수 있게 된다. (2021년 2월 15일)

○ 덧불이는 글

최근 출산율 대신에 출생률이라는 말이 쓰이는데요. 출산은 여자만의 일이 아니라 남녀 공통의 일이라는 인식을 확산하기 위해서입니다. 유럽에서는 출산율을 더 많이 쓰는데, 한국과는 반대로 여성이 출산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뜻에서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는 출산율을 씁니다. 그래서 칼럼에서는 출산율이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출산율과 출생률은 다른 개념입니다. (합계)출산율이라고 말하는 출산율(fertility rate)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자녀수의 예측치입니다. 출생률(birth rate)은 특정 집단에서 1년 간 인구 1,000명 당 태어난 출생아 수를 말합니다. 출생률은 남녀노소를 모두 포함한 전체 인구 대비 출생아 수를 의미하죠.

출산율은 젊은 세대가 몇 명의 자녀를 낳느냐에 따라 크기가 달라집니다. 반면, 출생률에는 한 가지 요인이 더 추가되죠. 그것은 청년 세대의 수입니다. 즉, 청년들의 생활형편이 나아지지 않아도 청년 세대의 규모가 늘면 출생아 수가 늘어나고 출생률은 올라갑니다. 반대로 청년 세대의 규모가 줄어들면 출생률은 떨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청년 세대가 아이를 몇이나 낳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인구구조에 영향을 받는 출생률이 아닌 출산율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