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와 정치꾼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정부·여당이 28일 코로나19 위기 대응 4차 긴급재난지원금 규모를 19조5천억원으로 확정했다. 대상자는 690만명이다. 이에 따라 소상공인·자영업자뿐만 아니라 특수고용노동자·프리랜서·법인택시기사 등이 4차 재난지원금을 받게 되고, 노점상·일용직 등에게도 한시적 생계지원금 50만원이 지급된다.

4차 재난지원금은 네 차례 재난지원금 가운데 가장 많다. 올해 첫 추가경정예산(추경) 15조원과 올해 본예산에 기편성된 예산 4조5천억원을 합쳐 19조5천억원이다. 4차 재난지원금 규모는 앞선 세 차례의 재난지원금을 크게 웃돈다. 지난해 5월 지급됐던 1차 재난지원금 규모는 14조3천억원이었다. 1차 재난지원금은 4인 가구 기준으로 최대 100만원씩 전 국민에 지급됐다. 지난해 9월 소상공인과 고용 취약계층에 지급된 2차 재난지원금은 7조8천억원, 지난 1월 지급된 3차 재난지원금은 9조3천억원 규모였다.

당·정은 추경 편성과 관련하여 2일 국무회의 의결, 4일 국회 제출, 18일 본회의 처리 일정에도 합의했다. 지난해 2차 재난지원금의 경우 추경 국회 통과(9월 22일) 일주일 뒤(9월 29일)부터 지급됐다. 이에 비춰보면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되는 시기는 3월 25일쯤이 될 것으로 보인다. 3월 25일은 4·7 재보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날에 맞춰 역대 최대 규모의 재난지원금이 시중에 풀리는 셈이다. 택일이 기가 막히다.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이와는 별도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도 추진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민주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가진 간담회에서 “국민 위로 지원금, 국민 사기 진작용 지원금 지급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4차 재난지원금 규모나 지급 시기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5차 재난지원금 지급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것 같진 않고, 선거를 앞둔 선심성 포퓰리즘 발언의 혐의가 짙어 보인다.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 각종 특혜를 담은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찬성 181표, 반대 33표, 기권 15표로 통과됐다. 청와대와 여당이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인 결과다. 특별법을 심사하던 더불어민주당 의원조차 “실시 설계가 나오기 전에 일단 공사부터 한다? 우리 동네 하천 정비할 때도 그렇게 안 한다.”고 탄식했을 정도다.

이에 앞서 정부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국회 국토교통위 위원들에게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검토 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국토부 보고서는 가덕도 신공항이 안전성·시공성·운영성·환경성·경제성·접근성·항공수요 등 7개 항목에 대해 가덕도 신공항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 애초 부산시가 가덕도 신공항 사업비로 7조5천억원을 계산한 데 대해 “접근교통망 확충, 국제선과 국내선, 군 시설 등을 갖추는 비용을 고려하면 사업비가 모두 28조6천억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2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연대체인 기후위기비상행동은 “그동안 가덕도 신공항을 밀어붙이던 청와대와 여당의 모습은 아무런 타당성도 없는 선거용 토건사업을 향한 폭주였다.”고 비판했다. 이어 “과거 정권이 4대강 사업을 추진하던 모습과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따졌다. 입으로는 ‘그린뉴딜’을 말하면서 4대강 사업을 능가하는 초대형 토건사업을 밀어붙이는 것은 자가당착의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가덕도 신공항 추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누구보다 앞장섰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국회 통과 하루 전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를 방문했다. 이날 행사는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보고’라는 이름으로 치러졌다.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물론,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등 정부의 재정과 사업을 책임지는 장관들이 총출동했다. 송철호 울산시장, 김경수 경남지사, 이병진 부산시장 권한대행 등도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가덕도 신공항 추진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뒤, “가덕도에 신 관문 공항이 들어서면 세계로 뻗어가고 세계에서 들어오는 24시간 하늘길이 열리게 된다.”며 “하늘길과 바닷길, 육지길이 하나로 만나 명실상부한 세계적 물류 허브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적극 홍보했다. 이어 “묵은 숙원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속한 입법을 희망한다. 정부도 특별법이 제정되는 대로 관련 절차를 최대한 신속히 진행하고,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변창흠 국토부 장관을 향해 “신공항에 국토부가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질책했다. 변 장관은 “반대처럼 비쳐 죄송하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4월 7일 치러지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불과 41일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이뤄진 문 대통령의 부산 방문에 대해 뒷말이 무성할 수밖에 없다. 그러자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부산 방문은 보궐선거와 무관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소통 행보의 일환으로 오래전 결정된 행사”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부산 방문이 4·7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무관한 행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문 대통령의 부산 방문에 동행했던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는 특별법 통과 직후 김영춘·박인영·변성완 민주당 부산시장 경선 후보들을 만났다. 이낙연 대표는 당대표 회의실에서 부산시장 출마 후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부산은 이제 운명을 바꿀 수 있게 됐다. 대한민국도 새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됐다. 부산시민이 저희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설계하도록 이번 선거 과정부터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정치가는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정치인을 말하고, 정치꾼은 자신을 위해 나라를 이용하는 정치인을 말한다.”는 얘기도 새삼스럽다. 이 나라에 진정한 정치가가 있는가? (2021년 3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