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치 검찰의 추락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사퇴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완전 분리(‘검수완박’-검찰 수사권의 완전 박탈)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가 총장직의 사퇴 이유다.

윤 총장의 사퇴문은 궤변투성이다. 그는 먼저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2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수청 신설은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70여 년 형사사법 시스템을 파괴하는 졸속 입법”이라고 강하게 비난하면서, “법치 말살” “헌법정신 파괴” “검찰 해체” 등 날 서고 과격한 표현을 서슴없이 쏟아냈다.

터무니없는 궤변이다. 대한민국 검찰은 기소권의 독점은 물론 수사권까지 동시에 갖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검찰의 수사·기소권 독점으로 인한 폐해는 숱하게 누적돼왔고, 그 피해자는 권력의 눈 밖에 난 힘없는 시민과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그래서 억울한 피해자와 시민들은 한결같이 검찰 개혁을 외쳐왔다.

검찰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기 위해 수사·기소의 분리는 선진 형사사법의 원칙이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특권을 독점해온 검찰은 수사·기소 분리에 한사코 반대하고 결사 저항해왔다. 검찰 특권의 폐지가 왜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의 파괴인가? 검찰 특권이 폐지되는데 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가는가? 특권이 폐지되면 시민의 보편적 권리가 향상돼 억울한 피해가 줄어들지 어째서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간단 말인가? 황당무계한 궤변이다.

오죽하면 검찰 출신의 홍준표 의원이 나서서 일갈했을까? 홍 의원은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은) 조폭 같은 의리로 뭉쳐 국민 위에 영감(令監)으로 군림해 왔다.”면서, “수사권 분산 그 자체는 결코 반민주주의가 아니다. 국민들이야 어디 가서 수사를 받던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썼다. 이어 “그 사이 검찰이 인권 옹호기관으로 역할을 한 일이 한 번이라도 있었느냐”라고 반문하면서, “당신들은 수술을 당하고 있는 거다. 자업자득이다.”라고 비판했다. 끝으로 “이제부터라도 말만 하지 말고 진정으로 국민의 검찰로 거듭 나거라. 그것만이 당신들(검찰)이 살길”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윤 총장은 또 사퇴문에서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라고 했다.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되묻고 싶다. ‘선택적 정의’가 정의인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와 ‘정치적 편파 표적 수사’가 상식인가? 검찰 내부 비리는 철저히 은폐하여 무혐의 처리하고, 검찰총장의 가족 비리는 봐주고 넘어가거나 피해자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우리네 보통 시민들의 정서다.

자기의 직속 상관인 법무부 장관 두 명(조국, 추미애)을 그만두게 만든 것이 검찰총장으로서 자기가 한 일이고, 이제 그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은 나머지 검찰총장을 사퇴하고 더 무엇을 해보겠다는 심보인가? 그의 속셈은 이어지는 사퇴문에서 드러났다. 그는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라고 했다. 마치 자기가 자유민주주의의 파수꾼이고 국민의 호민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어이가 없다. 누가 그런 권한을 위임했고, 누가 그런 자격을 주었단 말인가?

윤 총장의 사퇴문은 누가 봐도 정치 활동 선언이다. 게다가 자신의 정치적 색깔도 분명히 드러냈다. 보수우파들이 흔히 쓰는 ‘자유민주주의’란 말이 그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사퇴 전날에는 국민의힘의 지지 기반인 대구를 방문했다. 노회한 정치인의 행보 그대로다. 그러니 호불호를 떠나, 차기 대선 출마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현직 검찰총장이 중도 사퇴하고 정치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한 건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검찰의 수장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송두리째 뒤흔든 것으로, 이거야말로 “헌법정신의 파괴”가 아닐 수 없다.

윤 총장은 정치 검찰의 우두머리였다. 2년 전 윤석열이 검찰총장에 취임할 당시 그는 역대 가장 강력한 검찰총장이었다. 윤 총장은 대검 반부패부장(과거 중수부장), 서울중앙지검장에다가 차장, 특수부장까지 모두 ‘윤석열 사단’으로 채웠다. 그가 결심만 하면 언제 어떤 수사든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법치 시스템’인가?) 검찰청은 법무부의 외청으로, 윤 총장 이전에는 법무부 장관 수사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윤 총장은 일종의 하극상이라고 볼 수 있는 사상 초유의 법무부 장관 수사를 강행하고, 사사건건 법무부 장관과 충돌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청와대와의 대립도 불사했다. 윤 총장이 무소불위의 권세를 과시했던 것이다.

정치 검찰의 최정점에서 최고의 권세를 휘두른 자가 윤석열 총장이었다. 나는 일찍이 2019년 9월 30일 칼럼에서 윤 총장과 관련한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윤 총장은 매번 문재인 대통령이 외국 순방 중일 때마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에 대하여 압수수색을 실행했다. 문 대통령이 (2019년 9월) 22일 오후 미국 방문을 위해 출국하자 바로 이튿날 아침부터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자택을 11시간 동안 압수수색 했다. 그리고 다음 날(24일) 크리스토퍼 레이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만났다. FBI 국장의 대검찰청 방문은 20년 만의 일이다. 그런데 하필 문 대통령이 미국 방문으로 청와대를 비운 기간이었다. 이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였을까?’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다.

그처럼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것처럼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리며 행세하던 윤 총장이었지만, 청와대와 법무부의 인사권 행사로 인하여 자기 측근과 손발이 전부 잘려나가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정치 검찰이 사지로 내몰린 결정적인 계기는 4·15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둬 국회가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의 단독 국회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공수처법이 제정돼 공수처가 출범하고, 급기야 ‘검수완박’과 중수청 설치까지 추진되자 윤 총장으로선 더 버틸 재간이 없이 추락의 벼랑 끝으로 밀려났다.

윤 총장의 사퇴는 정치 검찰의 추락을 보여준다. 윤 총장의 사퇴를 조중동과 보수우파들은 마치 유력 대선 후보의 출정이라도 되는 양 미화하고, 연일 그의 발언과 동정 기사를 대서특필하면서 띄워주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 봐야 사퇴는 퇴장이다. 영전이 아니라 추락임을 숨길 수 없다.

하기야 보수우파들의 사정이 딱한 건 사실이다. 대선을 1년 앞두고 제1야당에서 지지율 5%를 넘는 후보가 하나도 없는 상황이니 오죽하겠는가? 지난 1일 리얼미터가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를 보면, 국민의힘 후보들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3.2%), 유승민 전 의원(2.4%), 원희룡 제주도지사(1.6%) 전부 다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나마 윤 총장(15.5%)이 높은 지지를 받았고, 이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7.0%), 홍준표 무소속 의원(6.6%) 순이었다. 그러니 보수우파들이 윤석열에게 마지막 한 가닥 기대를 걸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과거 한때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고건 전 국무총리 등이 '대망론'의 주인공으로 각광 받았던 적이 있다. 하지만 고위공직자 출신들은 현실 정치판에서 혹독한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자진 낙마하고 말았다. 더구나 한때 정치 검찰로 악명을 떨치다가 사지에 내몰려 사퇴한 윤석열이 보수우파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희망고문'일 뿐이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2021년 3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