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판을 벌여놓고 투기를 단속한다고?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1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해 사의를 밝혔다. 지난 2일 민변·참여연대의 기자회견으로 해당 의혹이 불거진 지 열흘 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변 장관의 사의를 수용했다.

변 장관이 임명된 지 두 달여 만에 물러나게 됐다. 분노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청와대가 장관 사퇴 카드를 꺼낸 것인데, 과연 장관의 사퇴로 수습이 될지 의문이다. 나는 지난해 12월 21일 칼럼-국토부 장관 경질, 갈수록 태산-에서 변 장관의 임명이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변 내정자의 자진 사퇴와 청와대의 임명 철회를 촉구했었다.

변 장관의 사퇴는 예고된 인사 실패이다. 변 장관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부적절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고, LH 사태에서도 직원들을 비호하는 헛소리를 일삼았다. “이들이 개발 정보를 알고 땅을 미리 산 것은 아닌 것 같다. 신도시 개발이 안 될 것으로 알고 샀는데, 갑자기 신도시로 지정된 것 같다.”는 둥 “전면 수용되는 신도시에 땅을 사는 것은 바보짓이다.”이라는 둥 허튼소리를 지껄여 활활 타는 민심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문제는, 변 장관의 발언이 단순한 실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변 장관은 2016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도 구설수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공유주택 입주자를 언급하며 “못 사는 사람들은 집에서 밥을 해 먹지 미쳤다고 사 먹느냐?”고 비하했으며,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에 대해서도 “위탁업체 직원이 실수로 죽은 거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걔(김 군)가 조금만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는데 이만큼 됐다.”라고 망언을 했다.

이런 부적격자를 장관에 임명한 것 자체가 문제였고, 결국 사달이 난 것이다. 그 책임은 장관 임명권을 갖고 있는 청와대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공급에 있어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려고 한다. 그 대책에 대해서는 앞으로 국토부가 방안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신임 변창흠 장관이 설 전에 발표할 계획이다. … 저도 기대가 된다. 그 발표를 함께 기다려 주시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변 장관에게 잔뜩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가 묻어나는 발언이다.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 대한 정부합동조사단의 1차 조사 결과 직원 20명의 확인 사례 중 11명이 변 장관의 LH 재임 기간 중 투기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변 장관이 LH 사장으로 1년 8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벌어진 일이니 관리·감독의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도 변 장관은 바로 사퇴하는 것이 아니라 장관직을 당분간 계속 수행한다. 문 대통령이 “‘2·4 대책’의 차질 없는 추진이 매우 중요하다. 변 장관 주도로 추진한 공공 주도형 주택 공급 대책과 관련된 입법의 기초 작업까지는 마무리해야 한다.”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변 장관이 주도해온 2·4 대책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조치한 뒤 물러나라고 한 것이다.

2월 4일 발표된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 방안’에 따르면, 재개발‧재건축 사업, 역세권·준공업지·저층 노후지 개발, 소규모 개발 등을 공공 주도로 개발하여 2025년까지 전국 83.6만호, 서울 32만호, 경기 30만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나는 지난 1월 25일 칼럼-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정부-에서 문 대통령이 예고한 정책(2·4 대책)은 방향이 잘못됐으며, 되레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2·4 대책’은 공공기관 주도로 주택 공급을 대거 확대해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정책이다. 그런데 LH 사태는 이 대책이 시행도 되기 전에 좌초할 위험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부지개발과 주택공급을 주도해야 할 LH가 투기꾼들의 온상이라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으니 과연 어느 누가 ‘공공 주도 개발’을 신뢰하겠는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LH 사태에 대해 대통령의 대국민사과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61.5%로, 필요 없다는 의견(32.3%)의 두 배에 달했다. 여론조사기관 에스티아이가 지난 12~13일 서울시민들을 대상으로 서울시장 보궐선거 및 현안에 대해 여론조사 한 결과이다. 또한 이번 사건이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의견이 75.4%에 달했다. (‘매우 영향을 미칠 것이다’ 44.3%,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31.1%)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22.4%)이라는 응답의 세 배 수준으로 나타났다.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17.8%,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4.6%)

가뜩이나 부동산 민심이 들끓고 있던 차에 LH 사태가 불을 지른 격이다. 민심의 불신과 분노가 치솟고 있으니 정부로선 곤혹이고 낭패가 아닐 수 없을 터다. 정부‧여당에서 한껏 강경한 발언이 나오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용납할 수 없는 비리행위로 투기 의혹 발본색원”, 정세균 국무총리는 “사생결단으로 파헤쳐서, 패가망신 시켜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중대범죄로, 투기 가담자들을 철저히 색출해 엄단” 등의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정부‧여당 책임자들의 발언이 과연 얼마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LH 직원들의 땅 투기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여론이 팽배해 있다. 관련 중앙부처·지자체 공무원,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 등 공직자 전체로 조사 대상을 확대하고, 3기 신도시뿐 아니라 LH 등 공공기관이 주도한 전국의 주요 택지지구까지 전부 조사를 한다고 해도 믿을까 말까다. 불신이 팽배하고 분노가 들끓어서 정부가 아무리 강력한 후속 조치를 발표한다고 해도 사후약방문으로 치부될 공산이 크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역대 가장 강력한 대책”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임기 첫해부터 부동산 대책들을 발표했다. 2017년 6회, 2018년 5회, 2019년 7회, 2020년 6회, 2021년 1회 등 총 25차례, 두 달에 한 번꼴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다. 그런데도 부동산 투기가 잡히지 않고 기승을 부려 ‘이생집망’이니 ‘벼락거지’니 하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변명의 여지없이 명백한 정책의 실패이다.

나는 이전에 발표한 칼럼들에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숱하게 지적하고 비판했고, 어떤 조치가 필요하고 대안의 정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입이 아플 정도로 반복하여 말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은 채 요지부동이다. 급기야 LH 사태가 터지고 민심이 심상치 않자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엄단하겠다고 야단법석을 피우고 있다. 물론 투기는 단속해야 한다. 더구나 LH 직원들의 땅 투기는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정작 투기의 원인 제공자는 다름 아닌 정부다. 정부가 투기판을 벌여놓고 투기꾼을 단속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닌가? 도박장을 개장해놓고 도박꾼을 단속하겠다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2021년 3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