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정부가 진보라는 착각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4일 페이스북에 “이명박·오세훈 시장 시절에 속도와 효율이 강조됐다면 박원순 시장 시절에는 안전과 복지가 두드러졌다.”며 “선거를 다시 치르는 이 시점에 성찰과 평가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전날에도 박 전 시장을 “가장 청렴한 공직자”로 치켜세우며 “박원순은 정말 그렇게 몹쓸 사람이었나. 그의 열정까지 매장되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썼다. ‘2차 가해’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임 전 실장은 연이틀 박 전 시장을 소환했다.

이에 앞서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7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에 대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위에는 맑아지기 시작했는데, 아직 바닥에 가면 잘못된 관행이 많이 남아 있다.”며 “그런 것까지 고치려면 재집권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19일에는 “우리는 관리를 잘못한 일이지만, 오세훈 후보는 (서울 내곡동 그린벨트 해제를) 자기가 한 일이니, 차원이 다르다.”며 “이것 때문에 위축될 필요 없다.”고 말했다.

왜 1년짜리 서울시장 선거를 다시 하게 됐는지, 눈곱만큼의 반성도 없는 무책임한 발언들이다. 하긴 더불어민주당에게 뭔가 반성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당헌을 바꿔 4·7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낸 것부터가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진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6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이던 시절에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는 당헌(당헌 96조 2항)을 만들었다. 그런데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장의 잘못으로 치러지게 됐음에도 후보를 내기 위해 이 당헌을 스스로 뒤집었다.

당헌 개정은 억지투성이였다. 전 당원 투표 형식을 취했는데, 전 당원 투표의 투표율은 26.4%에 그쳤다. 더불어민주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전 당원 투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투표율이 3분의 1 이상이어야 하는데 기준에 미달했다. 투표의 효력을 두고 논란이 일자,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전 당원 투표는 의결 절차가 아닌 당원들의 의견을 묻고자 하는 투표였다.”고 말을 바꿨다. 또 4·15총선 때 ‘비례정당 참여 여부를 묻는 전 당원 투표’(30.6%), ‘더불어시민당 합당 여부를 묻는 전 당원 투표’(22.5%) 역시 투표율이 3분의 1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문제가 없다고 강변했다.

억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무공천 기존 당헌 규정에 ‘단, 전 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문구가 추가됐는데, 여기에다 부칙까지 추가했다. 전 당원 투표에 관한 특례 조항인데, 서울시장·부산시장 재보선에 관한 전 당원 투표를 2020년 10월 31일~11월 1일 실시한 투표로 갈음한다.’는 내용의 부칙이다. 더불어민주당은 11월 3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당헌 개정을 완료했다. 그런데, 당헌 개정 후에 서울시장·부산시장 재보선에 대한 전 당원 투표를 실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헌 개정 이전의 당원 투표로 이를 갈음하는 꼼수를 쓴 것이다.

정치적·도덕적 정당성 이전에 형식적·절차적 정당성조차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런 더불어민주당의 행태에 대해 친노 원로인 유인태 전 의원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명분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4·15총선 당시) 비례위성정당을 저쪽(야권)에서 만드니깐 아주 천벌 받을 짓이라고 해놓고 똑같이 천벌 받을 짓을 했다. 이번 당헌·당규를 뒤집은 것도 마찬가지”라고 쓴소리를 했다.

새삼 더불어민주당의 지난 행태를 상기시키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최근 이어지는 임종석, 이해찬 등의 발언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정부·여당의 속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착각하지 말자. 뻔뻔스러워 부끄러움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점에서는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이나 도긴개긴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진보일 거라 여기고 아직도 뭔가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허망한 착각에 지나지 않다는 말이다.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이해충돌방지법)의 3월 국회 처리가 끝내 무산됐다. 국회는 24일 본회의를 열어 공공주택특별법·한국토지주택공사법·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약속하고 문재인 대통령도 입법을 당부했던 이해충돌방지법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이해충돌방지법은 LH 직원은 물론 국회의원, 중앙정부·자치단체 공무원 등 모든 공직자의 사익 추구 행위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하나다. 사적 이해관계의 신고와 회피, 직무상 비밀을 이용한 재산상 이익 취득 금지, 취득 이익의 몰수 및 추징 등의 방안을 담고 있다.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이 터지자 이 법이 일찌감치 국회를 통과했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를 미리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해충돌방지법은 지난 2013년 발의됐으나 국회는 그동안 여론의 질타를 받을 때만 잠시 입법 시늉을 내다가 슬그머니 폐기하는 행태를 되풀이했다. 21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덕흠·이상직 의원 등의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지자 잠시 입법 논의가 있었지만 흐지부지됐다. 더불어민주당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25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해충돌방지법 처리가 무산된 책임을 국민의힘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이런 뒷북치는 소리는 핑계일 뿐이고 책임회피에 불과하다. 21대 국회는 더불어민주당의 단독 국회나 다름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처리를 안 한 것이지 못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국민의힘이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에 찬성할 리 만무하다는 건 익히 예상되는 바다. 서울 내곡동 그린벨트를 풀어 보상금 36억원을 받은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나 해운대 엘시티 아파트 특혜 분양 의혹과 함께 40억원에 달하는 차익을 얻은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만 봐도 자명하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도 예외가 아니다. 양이원영, 양향자 등 7명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니 이해충돌방지법에 관한 한 국민의힘은 말할 것도 없지만 더불어민주당 역시 소극적인 게 아니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도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다. 개정안은 내부 정보를 이용한 공직자의 투기 이익을 몰수·추징하는 조항에 대해 소급 적용을 배제했다. 이로써 공분이 들끓는 LH 직원들의 투기 행위에는 적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패가망신’ 운운하면서 투기 이익을 철저히 환수하겠다던 정부·여당의 의지와 공언이 무색해진다.

여론이 심상치 않자 정부·여당은 28일 LH 직원들의 부당이득을 소급 적용해 몰수하고 공직자 재산 등록 대상을 ‘모든 공직자’로 넓히는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8일 고위당정협의회 뒤 기자들과 만나 “공직자의 지위를 활용해 부당한 부동산 투기 이익을 얻는 자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와 같은 반열로 규정해야 한다. 반드시 소급 적용을 통해 (투기 이익을) 몰수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지금껏 문재인 정부는 매번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도 민주당 정부가 진보라는 착각이 아직 남아 있다. 민주당 정부가 진보라는 사고는 계급적 관점에서 보면 형용모순이다. 역대 민주당 정부(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는 예외 없이 노동법을 개악했다. 노동법을 개혁한 게 아니라 개악했던 것이다. 반노동의 진보란 존재할 수 없다. ‘노동 개악의 진보’는 ‘둥근 사각형’처럼 형용모순이다. 민주당 정부가 진보라고? 환상이고 착각이다. (2021년 3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