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보궐선거 이후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4·7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는 부동산에서 시작해 부동산으로 끝날 모양이다. 서울시장 선거를 보자.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서로 경쟁하듯이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를 공약으로 앞세운다. “재건축·재개발 추진이 느렸던 곳을 한 곳 한 곳 직접 찾아가 챙겨보겠다.”(박영선 후보) “취임하면 일주일 안에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서울시 방침(재건축·재개발 규제)을 바꿀 수 있다.”(오세훈 후보)

오 후보는 민간 주도 재개발·재건축은 물론 아파트 층수 제한 해제 등을 내놓았고, 박 후보는 부분적으로 민간 주도 재개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두 후보는 모두 현재 35층으로 제한된 한강변 아파트 층고 제한 규정을 풀겠다고 공약한다. 재건축 층고 규정의 완화는 은마아파트와 잠실 주공 5단지 등 강남 재건축 조합들이 끈질기게 요구해왔던 사안이다. 누가 서울시장이 돼도 재건축·재개발 바람이 불 조짐이다.

게다가 두 후보는 재건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이익을 환수하는 초과이익환수제도도 완화해 주겠다고 공약한다. 박영선 후보는 지난달 29일 MBC 100분 토론에서 초과이익환수제 폐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일정 부분 풀겠다.”고 답했다. 오세훈 후보도 초과이익환수제 완화를 중앙정부에 건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재개발·재건축 규정 완화가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은 공식이다. 그러니 벌써부터 서울 강남 등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급기야 ‘빚 내서 집 사라’는 정책까지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지난달 31일 대국민호소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사과하면서, 생애 첫 주택 구입자에 대한 금융규제 완화와 ‘50년 만기 모기지 대출 국가보증제’ 추진을 밝혔다. 처음 내 집 마련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정부가 지원하는 정책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적용 대상을 넓히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청년과 신혼 세대가 안심대출을 받아 내 집을 장만하고 ‘50년 만기 모기지 대출 국가보증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주택대출의 경우 대출 기간은 최장 30년인데 대출 기간을 50년으로 늘리면 월 상환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집값 폭등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4·7 보궐선거에서 궁지에 몰린 여당이 대출 규제를 완화해 대출을 더 받아 집을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빚 내서 집 사라’고 했던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정책이 다시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2014년 7월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의 70% 수준인 현 상태에서 30%만 더 있으면 집을 살 수 있다. 신용보강이 이뤄지면 전세를 살고 있는 사람 상당수가 매매로 전환할 수 있다.”고 했던 발언이 떠오른다.

빚 내서 집 사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지금 민심이 분노하는 게 대출 규제 때문인가? 민심의 분노를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되레 화를 북돋우는 격이다. 건설업계와 다주택자들의 투기 수익을 부풀리고 가뜩이나 위험수위를 넘어선 가계부채 상승만 부채질하게 될 게 뻔하다. 아무리 당장 눈앞에 다가온 선거가 다급하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황당하고 무모한 정책을 발표하는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선거 판세가 불리하다고 해서 허둥지둥 규제를 푸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금리 상승 위험에 대비해야 할 시점에 금융규제를 완화하여 대출을 늘리겠다는 것은 투기를 유발하고 거품을 더 크게 부풀리는 일이다. 이것은 결국 감당하기 힘든 거품 붕괴의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또한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 속도도 늦출 계획이다. 정부가 집값 안정과 조세 형평성 제고를 위해 현재 시세의 70%인 공시가격을 2030년까지 90%로 높이겠다고 발표한 지 불과 5개월 만에 말을 바꾼 것이다. 박영선 후보는 9억원 이하 주택의 공시지가 인상률을 10% 이내로 제한하겠다고 말한다.

정책의 일관성이 훼손되면 부동산 시장에 혼선이 커질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된다. <쿠키뉴스> 의뢰로 데이터리서치가 지난달 22일 전국 만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현 정부의 주택 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를 물은 결과, 신뢰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74.6%(전혀 신뢰하지 못함 55.6%, 다소 신뢰하지 못함 19.0%)로 나타났다. 정부의 정책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무참하게 무너졌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같은 조사에서 ‘주택공급 확대’보다 ‘다주택 임대사업자의 보유주택 매도’가 더 효과적인 공급정책이라고 보는 의견이 50.2%로 나타났다. 또한 ‘다주택 임대사업자 세금특혜 폐지’에 찬성하는 사람이 46.3%로, 반대 38.7%를 오차범위 넘어 앞섰다. 서울에 50만 채의 임대주택이 등록돼 있는데, 2·4대책에서 서울에 공급하겠다는 32만 채보다 훨씬 많다. 더구나 2·4대책은 실제 공급까지 몇 해가 걸리지만, 임대주택 매물은 당장 시장에 나올 수 있다. 그러니 임대사업자가 소유한 주택을 매도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공급대책이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주택임대사업자의 특혜를 폐지하기는커녕 오히려 특혜를 확대한 것이다. 지난 2월 1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종합부동산세법 시행령 제3조(합산배제 임대주택)가 개악되었다. 이 조항은 임대사업자가 등록한 주택에 종부세를 비과세하는 조항으로, 주택임대사업자들 대부분이 종부세를 한 푼도 안 내도 되는 근거 조항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 특혜 조항을 폐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종부세 비과세 대상을 건설사까지 더 확대하도록 개정을 했다. 집값 폭등의 원인이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세금특혜이고 이것을 폐지하라는 것이 민심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정책 개악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모든 정부의 정책이 그러하지만 특히 부동산 정책에서도 일관성만큼 중요한 원칙이 없다. 그런데 그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방향 자체가 흔들려 혼선을 초래하고 신뢰가 추락했다. 정부는 투기수요 근절과 집값 안정화 의지를 밝혔으나 그간 많은 부동산 정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집값 상승은 멈추질 않았다. 투기 수요가 집값 상승의 원인이라면서 규제 정책을 쓴다고 했다가, 이제 와선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를 통해 공급을 늘리겠다고 정책 방향을 틀었다. 정책이 왔다 갔다 하면서 정책의 신뢰도 추락이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코로나19로 민생이 시름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 투기 열풍으로 자산 양극화 문제가 심각해져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사회적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일자리가 줄어들고 민생이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아무리 성실히 땀 흘려 일해 봤자 임금 소득으로는 폭등하는 집값을 따라잡기에 턱도 없다는 암담한 현실이다. ‘벼락거지’로 추락하는 좌절감에다가 근로의욕 자체가 사라지는데 누가 열심히 일하려고 하겠는가?

자산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 대결이 벌어지는 선거가 아니라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고 거품을 부풀리기 위한 공약이 난무하는 선거는 미래 지향적이 아니라 과거 퇴행적이다. 정치는 프레임 전쟁이다. 4·7 보궐선거는 개발과 성장의 프레임에 갇힌 선거다. 누가 서울시장에 당선돼도 재개발·재건축 바람으로 집값이 들썩일 전망이다. 4·7 보궐선거 이후 민생이 걱정이다. (2021년 4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