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끝난 다음이 중요하다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4·7 선거에서 여당이 완패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총선부터 대선·지방선거·총선으로 이어진 전국선거 4연승 끝에 패배했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180석의 거대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1년 만에 성난 민심과 마주쳤고 분노의 표심은 매섭게 여당을 심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서울 선거에서 10년 만에 완패했다. 두 자릿수 표차로 크게 졌고 강남·북을 불문하고 전 지역에서 패배했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카드까지 동원해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밀어붙였지만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참패를 면치 못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패다.

4‧7 선거 하루 전 이낙연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그동안 말하지 않던 우리 지지자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표현하기 시작했다.”며 “3%(포인트) 내외의 박빙 승부를 오래 전부터 예측했다. 이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른바 ‘샤이진보’라고 불리는 지지층 결집이 시작됐다는 주장이었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는 “하루하루 2%씩 따박따박 상승세를 탔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선거 캠프에선 “지지율 격차가 한 자리 이내로 들어왔다.”고 주장했고, “사전 투표에서 이겼다.”는 문자 메시지도 발송했다.

하지만 정말로 박빙 승부인지, 상승세를 탔는지 확인하는 건 불가능했다. 개표하지 않은 사전 투표에서 누가 이겼는지를 알 도리란 없었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로 판세를 보도할 수 없다는 사정을 이용한 여당 쪽의 일방적 주장이었을 뿐이다. 결과를 보면 ‘샤이진보’는 없었고 박빙 승부가 아니라 여당의 완패로 결말이 났다.

여당의 관계자들이 정말로 객관적인 여론의 추이를 모르고 있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언론에 공포가 금지돼 있을 뿐 여론조사는 쉬지 않고 진행되며 그 결과는 속속들이 선본 관계자들에게 실시간으로 보고가 이뤄진다. 그러므로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 ‘깜깜이’ 기간에 쏟아낸 더불어민주당의 주장은 모조리 ‘가짜 뉴스’였다. 여당의 관계자들은 다 알고 있으면서도 버젓이 거짓말을 퍼뜨리면서 혹세무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도적이었건 아니면 주관적 희망사항이었건, 알고 있었으면서도 사실이 아닌 ‘가짜 뉴스’를 유포하면서 민의를 왜곡하고 호도했으면 응당 사과와 반성이 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여당 관계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일언반구의 사과가 없다. 하긴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었다면 아무리 선거의 승패가 중요하다고 쳐도 거짓말을 입이 닳도록 하진 않았을 터다.

더불어민주당의 민낯은 선거 패배 이후의 반응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선거 참패 이후 여당과 그 지지자들이 보인 반응은 가관도 아니다. 선거 뒷날 아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김종민 의원은 언론의 불공정한 보도 때문에 표차가 벌어졌다며 언론 탓을 했다. ‘뉴스공장’의 김어준 공장장은 포털에서 생태탕을 띄어주지 않은 것이 결정적인 패인인 양 힐난했다. 친여 지지자들이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그렇다고 어떻게 친일보수 정당을 뽑을 수 있느냐? 2~30대에게 투표권을 주면 안 된다.”는 등의 성토와 망언이 난무했다. 패배의 결과를 인정하고 자숙하기는커녕 눈곱만큼도 반성하는 기색이 없다.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보궐선거 참패 요인을 진단하는 ‘2030 의원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당헌·당규를 고쳐 후보를 공천한 일과 조국 전 장관을 옹호했던 일을 자성했다. 민주당이 기득권 정당이 된 것을 인정하며 앞으로 당 혁신의 주체가 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강성 당원들이 “당명에 빌붙어 당선되더니, 이제는 청와대·조국 탓을 하며 분열을 조장하느냐?”며 격하게 비난했다. 일부 당원들은 이들을 ‘초선 5적’, ‘초선족’으로 칭하면서 문자 폭탄을 보내고, 국회 앞에서 “배은망덕한 초선들은 낙선만이 갈 길”이라며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게 다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4·7 선거 일주일 전 교보문고의 유튜브 채널에서, ‘신념을 무조건 잘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느냐?’는 독자의 질문에 대해 “한결같은 것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구체적인 생각을 안 바꾸고 환갑이 지난 때까지 그대로 갖고 있으면 일관성이 있는 게 아니고 벽창호”라고 답했다. 이 말이 주목받은 것은 “임명직 공무원이 되거나 공직 선거에 출마하는 일은 제 인생에 다시는 없을 것”(2018년 10월 15일)이라던 이전의 발언을 떠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유 이사장은 2013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2018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을 당시 ‘사실상 정계복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선거 출마는 없다’고 못을 박았었다. 하지만 그가 미묘한 시기에 “신념은 가변적인 것”이라는 말을 꺼내자 대번에 정치복귀의 시사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한 친문 유튜버는 “그가 복귀한다면 여권 세력에겐 천군만마가 생기는 것”이라며 “부디 다시 복귀하길 간절히 희망한다.”고 반색을 표했다. 댓글에서도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항할 친문 후보는 유시민뿐”이란 글이 이어졌다.

이와 같은 행태는 여권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선거 완패의 경종을 울린 민심에 대한 겸허한 경청과 진지한 성찰은 외면한 채 금세 대선의 정치공학으로 옮겨가서 오로지 파당적인 이해관계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작금에 정부·여당의 행태를 보건대, 4·7 선거 이후 그 어떤 성찰과 변화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그릇된 환상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고 했듯이 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일은 다반사다. 민심을 얻지 못하면 패배하게 마련이다. 물론 패배는 뼈아프지만 중요한 것은 패배 이후다. 패배 이후에도 반성하지 않고 교훈을 찾지 못한다면 그게 더 문제다.

나는 지난 칼럼들에서 ‘민주당 정부가 진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하며, ‘4·7 보궐선거는 개발과 성장의 프레임에 갇힌 과거 퇴행적 선거’이고 ‘선거 이후 민생이 걱정’이라고 지적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민생은 여전히 실종된 채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오로지 선거 결과에 따른 거대 양당의 정치적 이해득실 계산만 요란하다.

안타까운 점은 대안 세력의 힘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KBS·MBC·SBS 등 방송 3사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공동 출구조사를 보면, 진보의 가치를 내건 후보들이 얻은 득표가 미미하기 그지없다. 기본소득당 신지혜(0.48%), 미래당 오태양(0.13%), 여성의당 김진아(0.68%), 진보당 송명숙(0.25%), 무소속 신지예(0.37%) 후보들의 득표율은 모두 합해 1.91%에 그쳤다. 정의당은 당대표의 성추행 사건 때문에 아예 후보조차 내지 못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제크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세상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느끼든, 우리의 입장이 어떻든, 우리는 급진적인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 서 있는 곳에서 일단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생존이 걸린 험난한 항해를 시작했다.” (슬라보이 지제크, ‘영국 총선, 노동당은 왜 졌는가’, 한겨레 2019.12.22.) (2021년 4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