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열풍, ‘달까지 가자’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암호화폐에 2억 원을 투자해 650억을 벌고 회사를 퇴사했다는 소식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제다. 최근 암호화폐 시장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지난 20일 ‘한컴토큰’으로 알려진 아로와나토큰이 상장됐다. 50원으로 시작한 가격은 상장 30분 만에 5만3800원으로 뛰었다. 상승률이 무려 10만%다. 미쳤다!

도지코인의 상승률도 미쳤다. 도지코인의 가격은 올해 들어서만 8000% 이상 폭등했다. 암호화폐 전문가들도 위험성을 경고할 정도다. 그런데도 도지코인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도지코인의 거래대금은 지난 16일 17조원에 달했다. 이는 4월 하루평균 코스피 거래대금인 15조원을 뛰어넘는다. ‘미친 바람’(광풍)이다!

도지코인은 2013년 IBM과 어도비 출신의 개발자가 만들었다. 비트코인에서 시작된 암호화폐 시장의 열풍을 풍자하기 위해 재미 삼아 개발했다고 한다. 개발 당사자들이 도지코인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는 부적합하다고 말해왔지만, 현재는 폭발적인 성장으로 인해 주요 암호화폐로 인정받고 있다. 22일 암호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 자료를 보면, 도지코인의 시가총액은 363억달러로 암호화폐 중 6위에 올라있다.

암호화폐 투자자는 2030 청년세대(만 20~39세)가 다수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복 계좌를 뺀 개인 투자자는 1년 동안 20대에서 69만명이, 30대는 74만명이 늘었다. 21일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든 투자자도 10명 중 6명(63.5%)이 2030 청년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상화폐 앱 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월 암호화폐 앱 월간 이용자 중 2030 청년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59%에 달했다.

2030 청년세대의 현실은 최근 나온 소설에서도 확인된다. 장류진 작가의 신작 소설 『달까지 가자』(창비)는 20대 여성 3인의 암호화폐 투자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달까지’(투더문 To the Moon)는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사들인 코인값이 달까지 수직으로 상승하길 바란다며 쓰는 은어라고 한다.

소설에서 몇 대목을 들여다보자. “은상 언니, 지송이, 그리고 나. 우리가 금세 친해질 수 있었던 건 암묵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같은 부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몇 년간 깨닫게 된 것 중에 하나는 같은 회사에 다녀도, 비슷한 월급을 받아도, 결코 같은 세계를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이에는 투명한 선과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었다.” “코인은 엉뚱한 곳에 난데없이 뚫린 만화 속 포털 같은 거라고. … 닫히기 전에 얼른 발부터 집어넣으라고. 오직 이것만이, 우리 같은 애들한테 아주 잠깐 우연히 열린 유일한 기회 같은 거라고.” “‘난 이게 우리 같은 애들한테 아주 잠깐 우연히 열린,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해.’ ‘우리 같은 애들’이라는 세 어절이 머릿속에 메아리처럼 계속, 또 계속 맴돌았다.” “나는 그냥 부스터 같은 걸 달아서 한 번에 치솟고 싶었다. 점프하고 싶었다. 뛰어오르고 싶었다. 그야말로 고공 행진이라는 걸 해보고 싶었다.”

그들은 암호화폐가 얼마나 혁신적인 기술인지 아닌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해외 토픽성 기사를 몇 개 읽어본 게 암호화폐 관련 지식의 거의 전부다. “블록체인이, 암호화폐가 뭔지도 모르면서… 어떤 혁신적인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내겐 그 기술이 직접적으로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부 당국자나 전문가들이 투자 위험을 경고하는 것도 잘 알고 있고, ‘묻지마 투자’의 위험도 인정한다. “말로는 달까지 갈 거라고 하면서 이러다 결국 쫄딱 망해버리면 어떡하지, 매일 걱정하면서 떨었어.”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답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뭔가가 간절히 필요했다. “보수적인 조직, 멍청한 리더, 짜디짠 박봉 … 여기에서는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암호화폐 열풍은 위험천만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순간순간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등락을 반복하고 급기야 10만% 상승이라니…. 이건 결코 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작은 원룸에 반전세로 살며, 빠듯한 월급으로 주거비·생활비를 치르고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종종거리는 20대 후반 청년들에게 암호화폐는 마법 같은 존재다. 암호화폐야말로 흙수저 신분에서 탈출할 수 있는 희망의 비상구로 비치는 것이다.

2030 청년세대는 ‘영끌’ 해서 부동산, 주식, 코인을 안 하면 늪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는 세대이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는 원룸 임대료, 교통비, 식비, 생활비를 감당하기도 빠듯하다. 인스타엔 좋은 것이 너무 많아서, 맛보고 놀고 싶은 것들투성이인데 숨만 쉬고 살기에도 마이너스 인생이다. 소설은 ‘수저 계급’ 사회의 ‘헬 조선’ 탈출을 위하여 몸부림치며 신음하는 우리 청년들의 현실을 비춰준다. 위험천만한 암호화폐 투기지만 여기에 전 재산을 걸고 뛰어든 우리 시대 2030 청년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고발한다.

하지만 어디 투기판의 현실이 만만한가? 암호화폐의 실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보니, 코인 투자자들은 ‘암호화폐의 등락은 귀신도 모른다’고 말한다. 게다가 암호화폐 투자는 낮도 밤도 없는 24시간 초긴장의 연속이다. 24시간 동안 거래되는 시장 특성 탓에 잠을 제대로 자기도 힘들다. 가격의 등락이 커서 예민해지고 조증과 울증을 널뛰기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일상생활에 집중하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암호화폐가 ‘우연히 열린, 유일한 기회’의 비상구이며,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초조와 불안이 2030 청년세대를 사로잡는다. ‘코인으로 수십억원을 벌었다’ ‘회사를 그만두었다’ ‘집도 사고 차도 샀다’는 등의 소문들이, 이러다간 자신만 뒤처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부추긴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수익 인증 후기’가 주저와 망설임에 마지막 쐐기를 박으면 결국 코인 투자 열풍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집값 폭등과 자산 격차 심화가 그 원인이다. 2030 청년세대는 “집값을 원상회복시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믿었다가 ‘벼락 거지’가 됐다고 자조한다. 그러니 이제 정부 당국에서 뭐라고 하든 ‘코인 거지’는 되지 않겠다고 작정한다. 카지노 홀짝에서 손모가지를 거는 것과 같은 위험한 도박이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꾼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생집망’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코인에 올인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투기 열풍의 끝이 좋았던 적은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영원히 오르기만 하는 투자 자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코인에 빠진 청년들에게 ‘한탕주의에 빠졌다’고 비난하거나, ‘노동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고 훈계할 일이 아니다. ‘평등, 공정, 정의’의 헛소리가 2030 청년세대의 분노를 촉발했듯이, 한낱 기득권 꼰대들의 주제넘은 충고로 치부될 터다. 계층상승의 사다리가 사라지고 ‘수저 바꾸기’가 불가능한 사회구조를 놔둔 채 그들만 탓하는 것은 청년들의 화를 부채질할 뿐이다. 청년들에게 좌절과 포기를 강요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변혁하는 것이 먼저다. (2021년 4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