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실현된다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지난주 4월 29일 헌법재판소의 정당 해산 결정으로 국회의원직을 잃은 이석기 전 의원 등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에 대해 대법원이 “국회의원직 상실이 인정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2014년 12월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의원직 소송 6년 만에 최종 결론이 나온 것이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2호 법정에서 열린 상고심 선고에서 대법원 특별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구체적 사건에서의 헌법과 법률의 해석·적용은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으로서 그 권한은 법원에 있다”면서 “법원은 위헌정당 해산 결정에 따른 법적 효과와 관련한 헌법과 법률의 해석·적용에 관한 사항을 판단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위헌정당 해산 결정의 효과로 그 정당의 추천 등으로 당선되거나 임명된 공무원 등의 지위를 상실시킬지 여부는 헌법이나 법률로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면서도 “원고들이 위헌정당 해산 결정의 효과로 의원직을 상실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이 소송의 핵심 쟁점은 헌재가 정당 해산 심판과 함께 의원직 상실을 선고했는데, 헌재가 헌법과 법률에 명시적 규정이 없는 의원직의 상실 여부까지 판단할 수 있느냐 여부였다. 이석기 전 의원 등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이에 대한 행정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1심 서울행정법원은 “헌법에 대한 최종적인 해석 권한은 헌재가 하는 것”이라며 “법원은 이에 대해 다시 심리·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야 한다”며 소 각하 판결을 했다. 반면 2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의원직 상실 여부는 헌법과 법률에 명문 규정이 없지만, 이번 사건은 국가를 상대로 낸 국회의원 지위 확인에 관한 행정소송이어서 법원에 판단 권한이 있다는 게 명확하다”면서 “법률에 명시적 규정이 없더라도 정당 해산 결정이 내려졌다면 그 소속 의원들은 당연히 의원직을 상실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상고 이후 5년 만에 대법원은 2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최종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같은 날 통합진보당의 이현숙 전 전라북도 도의원의 퇴직 처분 취소소송에서는 이 전 의원이 승소했다. 대법원 특별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정당 해산 결정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지방의회 의원직은 국회의원과 역할이나 헌법·법률상 지위 등에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하고 지방의원은 그 직을 유지한다는,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고 서로 어긋나는 판결을 대법원이 같은 날 동시에 내놓은 것이다.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고 모순투성이 판결이 아닐 수 없다. 명색이 법률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라는 대법관들이 이런 어처구니없고 한심한 판결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도무지 믿기질 않는다. 대법원 특별3부는 판결문을 아예 읽지도 않고 “상고를 기각한다”는 한마디를 남긴 채 총총히 법정에서 빠져나갔다. 그러자 오병윤 전 의원이 벌떡 일어서 “야이 XXX들아! 늬들이 대법관이냐!”고 소리치며 항변하였다. 장내에 소란이 일고 법정 경위들이 오 의원을 에워싸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는 법정 밖으로 나오면서도 “대법원을 폭파시켜버리고 싶다”면서 울분을 토했다.

사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분노는 어제오늘 생긴 게 아니다. 오랜 기간 쌓이고 쌓인 뿌리 깊은 반감이다. 불신과 분노가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과격한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2018년 11월 27일, 대법원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70대 노인이 김명수 대법원장이 탑승한 출근 차량에 화염병을 던졌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패소한 판결에 대한 불만 때문에 그랬다고 진술했다.

국가 서열 3위 대법원장이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사상 유례가 없는 초유의 사건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 대법원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강한 유감을 밝혔고, 김명수 대법원장도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해야 하는 법관이나 직원들에게 위해가 가해질 수 있다는 것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중대한 일”이라고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범행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것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 특별3부는 판결문에서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요지를 길게 인용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위헌 정당 해산제도에 따라 정당에 대한 해산 심판을 청구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었고, 헌법재판소에서 정당 해산 결정이 내려진 것도 최초의 일이었다. 21세기에 정부가 법의 이름을 빌려서 정당을 강제로 해산시킨 것은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지난 세기에 터키 헌법재판소는 세속주의와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26개의 정당을 해산시킨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터키 헌재조차도 정당 해산을 이유로 소속 의원들의 자격을 획일적으로 박탈하지는 않았다. 의원들이 위헌적 활동에 얼마나 개입했는지를 별도로 심사해 자격 여부를 심사했다. 그런데 21세기에 대한민국 헌재는 원내 제3당이었던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조리 국회에서 축출시켜 버렸다. 20세기 터키 헌재의 악명 높은 판결보다 못한 수치스러운 오점을 남긴 것이다.

문명국가의 양식 있는 재판부라면 시대착오적인 오판을 바로잡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그래야 대법원이 사법 정의 실현의 최후 보루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은 “헌법과 법률의 해석·적용은 법원에 있으며 정당 해산 결정에 따른 법적 효과에 관한 사항을 법원이 판단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국회의원직 상실은 위헌정당 해산에 따른 당연한 효과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이 헌재의 부끄러운 판결을 바로잡기는커녕 똑같이 시대착오적인 오류를 반복한 것이다.

2014년 12월 19일 헌재가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을 심판하던 당시는 박근혜 정부 치하였다. 헌재가 박근혜 청와대의 압력을 받고 눈치를 살피면서 판결을 내렸을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했고, 박근혜의 탄핵 이후 ‘사법 농단 사건’을 통하여 그 진상이 드러난 바 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때와 달리 사법부가 청와대의 눈치를 봐야 할 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7년 전 박근혜 치하의 헌재와 똑같은 판결을 내렸다. 헌재 판결보다도 더욱 기가 막힐 일이다.

사법부는 남을 심판만 하지 심판을 받지 않는 권력이다. 사법부는 자기의 독립만 강조할 뿐 판결의 책임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사법부의 독립은 사법부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며, 법관의 이름으로 아무 판결이나 내려도 좋다는 면허장을 주는 것이 아니다. 법의 악용과 오판은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는 독약과 같다. 통합진보당 의원직 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4.29 판결은 김명수 사법부에게 사법 정의를 기대할 게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인류에게 법학의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라고 불리는 법사회학의 대가 루돌프 폰 예링(1818~1892)은 일찍이 “당신은 투쟁하는 가운데 스스로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예링은 “법의 목적은 평화이지만 그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며, 싸우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누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쟁취하는 자만이 향유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라고 하여 저절로 당연하게 이뤄지는 법은 없다. 정의는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실현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2021년 5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