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4년, 나라다운 나라인가?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4주년이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7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4주년을 맞아 10일 오전 11시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통령 취임 4주년 특별연설’을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특별연설에서 지난 4년을 돌아보고, 남은 1년의 국정 운영 계획을 밝힐 예정이라고 청와대는 전했다.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취임 4주년 특별연설 일정을 발표한 7일, 기획재정부가 ‘문재인 정부 4주년, 그간의 경제정책 추진성과 및 과제’라는 보도참고자료를 냈다. 기재부는 지난 4년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추진성과를 ｢3대 분야 10대 성과｣로 요약했다.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먼저 코로나 위기 이전 수준으로 경제가 회복됐고 수출강국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일자리･가계소득을 확충해 코로나 충격을 최소화했고, 촘촘하고 튼튼한 사회･고용안전망을 구축했으며, 핵심생계비 경감을 통한 가계부담 완화를 통해 삶의 질을 제고했다고 자평했다.

정부 당국으로서도 나름대로 노력했고 성과가 없지 않을 터이니 일방적으로 깎아내리거나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일자리･가계소득 확충, 사회･고용안전망 구축, 삶의 질 제고라는 평가를 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자화자찬이 도가 지나쳐 민망하지 않은가? 기재부 관료들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인지, 도대체 어느 나라 공무원들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9일 산업연구원이 발간한 ‘코로나 팬데믹 이후 1년의 한국경제: 경제적 영향의 중간 평가’ 보고서에도 ‘코로나 고용 충격이 외환위기 이후 가장 컸다’라고 나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일자리 45만7000개가 줄었는데, 이는 151만2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가장 큰 규모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31만1000개의 일자리가 감소한 것보다도 훨씬 충격이 컸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서도 일자리는 계속 줄고 있다. 올해 1월 취업자 감소는 전년 대비 98만2000명으로 100만명에 육박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체 임금근로자 수는 1년 전보다 20만6000명이 줄었다. 게다가 고용의 질도 더 나빠졌다. 상용직이 줄고 임시·일용직 등 단기 근속자가 늘었다. 청년 실업률이 높은 것도 문제다. 지난 3월 20대 실업률은 10%(40만4000명), 30대는 4.1%(22만3000명), 40대는 2.7%(17만3000명) 등으로 집계됐다.

‘이생집망’ ‘벼락거지’라는 신조어에서 드러나듯이, 문재인 정부 들어 자산 격차가 크게 벌어진 데 대해선 여러 번 지적한 바 있다. KB국민은행의 월간 ‘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전국 평균 주택 1분위(하위 20%)와 5분위(상위 20%) 간 차이가 9억895만원으로 집계됐다. 집값의 격차가 9억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7년의 4억8653만원 차이에서 두 배 가량 격차가 커진 것이다. 전국 평균 주택가격의 5분위 배율은 8.7배로, 2017년 5.1배보다 크게 뛰었다. 주택 소유주 중에서도 상위 20%는 하위 20%보다 9배 가량 비싼 집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가계는 빚더미에 올라있다. 가계부채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가계신용은 지난해 말 기준 1726조원이고 증가율은 7.9%였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01.1%로 사상 최초로 100%를 넘었다. 다른 주요국들과 비교하면 매우 높고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이 81.2%, 선진국 평균은 78%, 50여 개 나라 평균은 65.3%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다는 뜻이다.

가계부채에 빨간불이 켜진 건 2014년부터다. 박근혜 정부가 주택 관련 대출규제를 대폭 풀어주면서 ‘빚내서 집 사라’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4년 말 80%를 넘어서 미국(79.7%)을 앞질렀다. 미국은 2008년 집값 거품 붕괴로 금융위기를 겪은 뒤 부채 감축에 나섰으나, 우리나라는 박근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오히려 주택 대출규제를 더 풀어줬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 들어서만 가계부채 비율이 20% 포인트 가까이 올라 지난해 3분기 말 마침내 100% 선을 뛰어넘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이미 빨간불이 켜졌고 해마다 100조원 이상씩 늘고 있다. 게다가 세 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가 약 420만명에 이르고 그 금액이 480조원에 달한다. 어느 한 곳에서 터지면 곧바로 위기가 연쇄적으로 번진다는 뜻이다. 빚으로 부풀려진 거품은 터지게 마련이며, 거품이 터지면 파산이 줄을 잇게 된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자. 국제통화기금(IMF)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량실업과 내수 침체로 경기가 어려워지자 김대중 정부는 신용카드를 남발해 부채를 늘리는 방법으로 소비를 유지하는 정책을 썼다. 길거리 회원모집을 허용해 대학 캠퍼스는 물론이고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며 아무에게나 카드를 발급해줬다. 카드를 4개 이상 가진 사람이 무려 988만명이나 되었다.

카드사들의 현금서비스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1999년 48조원에서 2002년 358조원으로 일곱 배나 증가했다. 그 결과 어떻게 됐을까? 부채 거품이 터졌고 상황은 참혹했다. 업계 1위 LG카드가 현금서비스를 중단하는 사태가 터졌고, 362만명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1000만원 미만 소액 신용불량자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고, 특히 20대 청년 신용불량자가 20%에 달했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내놓은 ‘자본시장 위험 분석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말 개인투자자들의 신용융자 잔고는 19조2천억원으로 지난해 3월(7조5천억원)보다 무려 155.6%나 증가했다. 개인투자자들이 지난해 대거 빚을 내 주식투자에 나선 것이다. 이런 증가율은 미국과 일본보다 각각 3배, 5.2배 높은 수준이다. 미국은 지난해 말 51%, 일본은 같은 기간 30% 증가했다.

신용융자는 증권사에서 고금리로 돈을 빌려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빚을 내 투자)의 전형이다. 대개 단기투자에 활용되며, 주가가 오를 때는 이익을 보지만 주가가 조정 국면에 들어서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특히 주가가 급락하게 되면 적절한 시점에 손절매할 겨를도 없이 증권사의 반대매매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반대매매는 투자자가 정해진 날까지 결제대금을 갚지 못할 경우 증권사가 강제로 주식을 매도해 대출금을 회수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신용융자는 전 연령층에서 확대됐으나, 특히 청년층에서 두드러졌다. 20대 청년층의 신용융자액은 지난해 말 4800억원으로, 전년 말(1600억원)보다 3200억원 증가했다. 증가율이 무려 200%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로 ‘빚투’하는 현실의 방증이다.

4년 전 오늘을 돌아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선서에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게 나라냐”며 박근혜 탄핵의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기대에 대한 화답이었다. 과연 나라다운 나라로 되었는가? 나라의 미래인 청년들이 ‘영끌’로 ‘빚투’하며, 가계부채가 사상 최고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의 현실, 이게 과연 나라다운 나라인가? (2021년 5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