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사면도 세습인가?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4대 재벌그룹 대표들을 청와대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재벌 대표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을 건의했고, 문 대통령은 “고충을 이해한다. 국민도 공감하는 분들이 많다. 기업에 대담한 역할이 요구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5단체가 이 부회장 사면 건의서를 청와대에 제출했고, 그에 앞서 조계종, 성균관 등 종교계도 사면 건의에 나선 바 있다. 심지어 미국 자본가들까지 동참했다. 영국 매체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는 일정에 맞춰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가 이 부회장의 사면을 촉구하는 서한을 청와대에 발송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2일 발언은 사실상 이 부회장의 사면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부회장은 올 1월 국정농단 뇌물공여·횡령 사건으로 징역 2년 6월의 실형이 확정돼 내년 7월까지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발언 이후 이 부회장이 이르면 ‘광복절 특사’를 통해 석방될 것이라는 예상이 벌써 흘러나오고 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만일 이 부회장이 대통령의 사면으로 풀려나게 된다면,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초유의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의 아버지 고 이건희 전 회장에 이어 사면을 세습 받는 최초의 진기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삼성 재벌의 총수 일가가 경영권의 세습을 넘어 사면의 세습까지 달성한다면, 대한민국은 민주 국가가 아니라 삼성 왕국임을 세계만방에 과시하게(?) 될 터이다.

이건희 회장은 2009년 연말 특별사면·복권의 특혜를 받았다. 재벌 총수 1명만을 대상으로 한 사면은 헌정사상 처음이었고, 국경일이나 기념일이 아닌 연말 사면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작품이었다. 이 회장은 같은 해 8월 배임과 조세포탈 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그는 1997년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유죄를 선고받은 뒤 특별사면된 바 있어, 두 번째 특별사면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회고록(『대통령의 시간』)에서 ‘원포인트 사면’이라고 칭한 이건희 회장의 사면에 대해 당시 진보적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강하게 비판했다. “국가의 품격과 ‘법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가 무너져버렸다”, “이 회장이 ‘대통령 위의 재벌 총수’일 정도로 절대적 존재라는 사실에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 “품격과 국격이 갖춰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단독으로 특별사면을 할 수 있는지 한심할 뿐이다”, “경제 질서를 교란한 중범죄자를 불과 4개월 만에 사면한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정부는 더 이상 법치를 운운하지 말라”….

그런데, 만일 이건희의 아들 이재용이 특별사면·복권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촛불항쟁의 수혜자로 스스로 촛불정부를 자임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삼성 재벌 총수에게 사면의 세습이 이뤄진다면? 문재인 정부의 흑역사로 길이 남을 일이다.

사면이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해도, 형이 확정된 사건 이외에 또 다른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 중인 피고인을 풀어주는 것은 명백한 권한 남용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삼성물산 합병 주가조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으로 지난해 9월 기소돼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다른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먼저 판결이 확정된 형사사건에 대해 사면을 한 전례가 없다. 재판 중인 사람을 사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통치 행위라고 할지라도 사법의 영역을 침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일 이 부회장의 사면이 단행된다면 법조인 출신의 문 대통령이 스스로 법치를 훼손하고 부정하는 꼴이다.

게다가 이 부회장은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은 끝에 최근 기소된 상태다. 이 부회장은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지난 4일 벌금 5천만원에 약식 기소 처분됐다. 약식 기소는 징역·금고형보다는 벌금형이 적절하다고 판단될 때 검찰이 정식 재판에 넘기지 않고 법원에 서면 심리를 신청하는 절차다. 법원은 공판절차 없이 심리를 거쳐 벌금형을 선고한다. 이 부회장이 수사와 기소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결과다.

이 부회장은 검찰 수사와 기소를 피하기 위해 지난 3월 외부 전문가들이 수사와 기소 타당성을 판단해 달라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를 신청했다. 삼성의 총수가 아니라면 감히 엄두도 내기 어려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놀랍게도(아니 예상대로) 수사심의위는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의결했다. 수사심의위가 기소 여부에 대해서는 차마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검찰은 약식 기소 처분을 했다. 삼성의 총수가 아니었다면, 과연 이런 관대한 처분이 가능했을까?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 부회장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의 ‘취업제한’ 위반으로 고발된 상태다. 특경가법은 대규모 배임, 횡령 등의 처벌을 받은 사람이 ‘범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 일정 기간 취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5억원 이상 횡령·배임 등의 범행을 저지를 경우, 징역형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된 날부터 5년 동안 관련 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

이 부회장은 올해 1월 86억원에 달하는 업무상 배임 등으로 징역형이 확정돼 수감 중이므로, 현행법상 삼성전자에 취업할 수 없다. 법무부는 올 2월 삼성전자 쪽에 이 부회장에 대해 ‘취업제한’을 통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로부터) 취업제한 통보를 받았음에도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버젓이 재직하고 있다. 거리낌 없이 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특경가법 위반이고 형사처벌 대상이다.

특경가법 제14조 제4항은 ‘법무부 장관은 위반한 사람이 있을 때에는 그 사람이 취업하고 있는 기관이나 기업체의 장 또는 허가 등을 한 행정기관의 장에게 그의 해임이나 허가 등의 취소를 요구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즉각 삼성전자 측에 해임을 요구해야 한다. 만약 삼성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의법 조치해야 마땅하다. 법무부 장관이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계속 방치하면 직무유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4년 전 취임 당시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는 사면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2017년 1월 “재벌의 중대한 경제 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원칙을 세우겠다. 중대한 반시장 범죄자는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없게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 또 법정형을 높여 집행유예가 불가능하게 하고 대통령 사면권을 제한하겠다.”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뇌물을 제공한 사람을 사면하게 되면 뇌물을 받은 사람도 풀어줘야 형평성에 맞을 터다. 이재용 부회장을 사면하자는 것은 다시 말해 박근혜·최순실(최서원) 일당도 사면하자는 것과 다름없다. 결국 국정농단의 특급 범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결론이다. 더구나 대를 이어 사면까지 세습이 이뤄진다면, 이걸 어떻게 ‘나라다운 나라’라고 할 수 있을 텐가? (2021년 6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