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현상에 대하여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이준석 돌풍, 이준석 현상, 이준석 신드롬 등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에 관한 언론 기사가 요란하다. 이 현상을 여러 시각에서 분석한 다양한 평가가 잇따른다. 국회의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36세 정치인이 제1야당의 대표로 당선됐으니 그 자체로 화제가 될 법하다. 더구나 4년 전 박근혜의 탄핵으로 심판받아 수명이 다한 줄 알았던 정당이 ‘박근혜 키즈’에 의하여 기사회생하는 것처럼 보이니, 탄핵의 촛불을 들었던 쪽에서는 무척 당혹스러울 만도 하다.

국힘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구꼴통’, ‘태극기 부대’, ‘아스팔트 우파’ 등으로 불리면서 청년들이 ‘극혐’ 했던 정당이다. 지난해 총선 때까지만 해도 청년들이 가장 찍고 싶지 않은 정당은 단연 1순위가 국힘이었다. 그러니 30대의 비주류 후보가 국힘의 대표로 당선된 것은 상전벽해의 격세지감을 느끼게 만드는 이변으로 비쳐질 수 있다. 찻잔 속의 태풍이려니 생각했는데, 당선까지 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대표의 당선을 정치의 세대교체라고 야단법석을 떠는 일은 눈꼴 사나운 추태다. 사실이 아닌 과장일 뿐 아니라 현상의 본질을 왜곡하여 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사실관계를 살펴보자. 이 대표는 당원투표와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합쳐 43.8%를 득표해 당선됐다. 당원투표에서 37.4%로 나경원 후보(40.9%)에게 뒤졌다. 국힘 당원들은 여전히 아스팔트 우파를 상징하는 나경원을 더 선호했다. 이 대표는 여론조사에서 58.8%의 지지로 당선됐을 뿐이다.

국힘은 당원의 70%가 ‘50세 이상’이고 영남권 당원이 55%를 차지한다. 이 대표가 당선됐다고 국힘 당원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는가? 국힘의 세대교체도 아닌데, 하물며 정치의 세대교체라고 요란을 피우는 것은 한참 ‘오버’하는 거다. 요란법석을 피우고 과장을 하더라고 정도껏 해야지 이 정도면 눈꼴 사납다.

이준석 현상을 정치의 세대교체라고 해석하는 것은 사실 왜곡의 과장을 넘어 정치적 본질에 대한 왜곡이자 미화이다. 국힘에서 이 대표가 당선된 것, 곧 국힘 지지자들이 이 대표를 지지한 까닭은 무엇인가? 정치의 세대교체를 실현하자는 게 목적인가? 전혀 아니다.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여 반드시 정권을 탈환해야 한다는 것이 국힘의 목표이고, 대선 승리에 어떤 대표를 내세우는 게 더 유리할 것인가가 당 대표 선택의 기준이었다. 그들은 나경원이나 주호영 같은 인물보다 이준석 같은 후보가 더 적합하다고 보고 그를 대표로 뽑았을 따름이다.

국힘은 나경원 같은 인물을 당 대표로 내세우면 ‘수구꼴통’, ‘태극기 부대’, ‘아스팔트 우파’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러면 ‘도로 박근혜당’이 되어 대선 필패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을 터다. 그들은 지난해 4.15 총선에서 황교안과 나경원을 간판으로 내세웠다가 치명적인 참패를 당한 바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4.7 보선에서는 나경원이 아니라 비주류 이미지의 오세훈을 내세워서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하여 참패의 악몽에서 벗어났다. 따라서 다가오는 대선에서 국힘이 승리하려면 당의 이미지 변신이 불가피하고, 그 도구로 이준석 카드가 선택된 것이다. 대선 승리를 위한 카드로 이준석을 써먹기 위해 당 간판으로 세운 것이지, 이준석의 당으로 국힘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그를 당 대표로 추대한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 한 번 하지 못한 ‘0선’은 경륜 부족 등 약점이 아니라 기득권에 때 묻지 않은 신선함으로 포장돼 미화된다. 다선이 되레 ‘오래 해먹은 낡은 특권’의 상징처럼 치부된 지 오래다. 국힘의 당 대표는 ‘0선’, 최고위원은 초선의 조수진·배현진 의원과 나머지 두 명의 비의원들이 선출됐고, 그리고 청년 대표도 비의원이 당선됐다. 그렇다고 하여 국힘이 ‘원외 정당’으로 변신하고, 기득권과 특권을 포기한 서민의 당으로 바뀌는가?

정권 탈환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도구적 선택을 ‘정치의 세대교체’라고 포장하여 미화 찬양하는 것은 국힘과 그 지지자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정말 한심한 것은 그들의 장단에 놀아나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현상이다.

가령 자칭 진보언론의 이런 평가들이다. “국민의힘이 11일 전당대회를 열어 이준석 후보를 새 당대표로 선출했다. 한국 헌정사상 최초로 36살 청년이 유력 정당 대표에 오른 ‘일대 사건’이라 할 만하다. 지난 한달여 우리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이준석 돌풍’의 현실화는 일차적으로 그가 이끌 제1야당의 파격적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젊은 정치 리더십의 출현이 한국 정치 전반에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몰고 오기를 기대한다.” “1985년생 30대 당 대표의 등장은 그 자체로 정치권, 특히 보수정치 세력에게는 혁신에 가까운 충격을 안긴다. 단순히 연령이 젊어진 것뿐이라 해도, 당을 대표하는 얼굴이 5·60대 중장년에서 30대 청년으로 바뀐 것은 분명 주목할 일이다.”

한국 정치가 정상화되려면 국힘이 정치권에서 퇴출돼야 마땅하다. 국힘은 박근혜의 탄핵과 동시에 벌써 해체돼 사라졌어야 할 당이다. 그런데, 다 죽어가던 국힘이 자기의 정치적 생존과 정권 탈환을 위한 안간힘으로 이준석을 정략적으로 선택한 것이 과연 한국 정치 발전에 그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명백한 정치의 퇴행이다. 그런데 거기에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구석이 뭐가 있단 말인가?

이준석이 아니라 그가 선 자리를 봐야 한다. 그는 박정희 이래 대대로 특권과 반칙을 일삼아온 한국 정치의 최대 거악 국힘의 대표일 뿐이다. 그는 청년들의 분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국힘에 의하여 소환돼 소비되고 있는데 불과하다. 이준석의 국힘이 아니라 국힘의 이준석이다. 그가 기득권 정치의 청산을 내걸고 독자적으로 ‘청년당’ 국힘을 창당한 게 아니지 않은가? 거듭 강조하지만, 국힘 지지자들은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한 도구로 이준석 대표를 세운 것이지, 그를 국힘의 미래 지도자로 추대한 것이 아니다.

이준석 현상을 불러온 일등 공신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애당초 기대와 호의가 없었더라면 실망과 분노도 없었을 텐데, 문재인 정부는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과 ‘결과의 정의’를 약속했었다. 하지만 ‘조국 사태’를 비롯하여 연이은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은 청년들의 격한 반발과 거센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은 집값 폭등과 ‘이생집망’, 평등과 공정과 정의의 실종, 차별과 일자리 불안의 가중, 현재의 불안과 미래의 암울함에 대하여 일말의 반성과 책임감도 보여주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재벌의 중대범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세우고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한 약속을 깨고 이재용에 대한 사면 의사를 밝히자, 민주당은 ‘가석방도 가능하다’며 맞장구를 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준석 대표가 당선되자 환영 논평과 동시에 이 대표의 ‘공직 후보자 자격시험’ 및 ‘여성·청년 할당제 폐지’ 등이 지나친 능력주의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흙수저 20·30대 청년층이 직면한 현실적인 ‘격차’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지적이다. 가관이다. 이게 민주당이 할 소린가? 자기들이 스스로 격차를 심화시키고 불공정 이슈를 키워 놓고서 반성하기는커녕 남 탓하고 앉아있으니,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되레 이준석을 띄워주고 있는 꼴이다.

지금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현재의 청년들은 우리 사회가 해방 이후 줄곧 유지해왔던 전제, 곧 부모 세대에 비해 더 잘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잃어버린 첫 번째 세대이다. 1997년 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되고 고착돼 대를 이어 세습되고 있다. 불안정한 일자리, 턱없이 치솟은 집값, 학교와 직장에서 겪어야 하는 끝없는 경쟁은 청년들을 ‘포기 세대’로 전락시키고 있다.

그래서 으레 선거가 다가오면 기성 정당들은 청년들을 동정하고 위하는 척하면서 ‘청년 팔이’를 해왔다. 몇몇 ‘잘 나가는’ 청년들을 영입하여 간판으로 내세우고 마켓팅에 이용하곤 한다. 그 몇몇이 정치권에 진출한다고 해서 청년들의 상황이 개선되진 않는다. 선거 때마다 ‘청년 팔이’가 계속되었지만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다들 알고 있는 바이다.

누가 대신해 주지 않는다. 청년의 문제는 청년들이 스스로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기득권 거대 정당에 기대서 청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희망 고문’일 뿐이다. 청년 의제가 선거 때 반짝 장식품으로 활용돼 소모되고 버려지는 현상이 반복돼선 안 된다. 청년의 세력화는 청년 대중운동의 발전 속에서만 이룰 수 있다.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청년 대중운동을 활발하게 일으키고, 그 힘을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정치적 진출을 도모하는 것이 진정한 청년 정치의 실현이다. 자주적으로 싸워서 얻은 것이 아니면 진정한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투쟁 없이 쟁취 없다! (2021년 6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