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에 대한 찬양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능력주의가 새삼 화제다.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능력주의에 대한 공공연한 옹호다.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문제라고 반박한다. 교육평론가 이범은 경향신문 기고에서 <‘능력주의 비판’을 비판한다>고 직설적으로 썼다. 안병진 경희대 교수는 <‘이준석 현상’을 이해 못하는 이들에게>에서 “능력주의를 비판하다가 아예 엘리트주의의 장점마저 버리면 시민은 진보를 버린다.”라고 충고한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당선 효과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대표의 30대라는 젊은 나이에만 주목하여 ‘정치의 세대교체’니 뭐니 하면서 요란법석을 떨어서 그렇지, ‘스펙’으로 보면 그만큼 화려한 정치인이 몇이나 있을까? 나이가 아니라 스펙으로 치면 이 대표의 당선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그걸 ‘이변’이라고 하거나 ‘이준석 현상을 이해 못하는 이들’이 오히려 진짜 문제로 보일 것이다.

이준석의 당선은 능력주의의 승리라고 할 만도 하다. 이번 국민의힘 당대표 성적은 나이 순서도, 다선 순서도 아니었다. 정확히 스펙 순이었다. 당대표 후보자의 성적을 출신 대학으로 따져보면, 1등은 하버드대, 2등은 서울대, 3등은 영남대, 4등은 부산대, 5등은 건국대 순이었다. (이준석 43.82%, 나경원 37.14%, 주호영 14.02%, 조경태 2.8%, 홍문표 2.2%) 하위 3명의 득표를 전부 합쳐도 2등의 겨우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 서울대와 비서울대의 현격한 격차를 보여준다. 비서울대 출신 후보의 3등에서 5등 순서는 법대, 공대, 농대라는 전공의 차이이고, 지금의 수능 합격선과 대체로 일치한다. 학벌로는 국내 최고인 서울대도 하버드대 앞에서는 게임이 안 된다는 해석이 덧붙여지면 말문이 막힌다.

그러니 이 대표의 1등 당선은 ‘공정’한 결과라는 주장이 나올 법하다. 스펙의 차이에 따른 결과는 합리적이고 공정하며, 정치도 이제 나이나 다선이 아니라 실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근거에서다. 봉건 신분 사회도 아닌데, ‘장유유서’를 따지는 것은 구시대적인 ‘꼰대’ 짓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안병진 교수는 “한국의 기득권 정치는 부족주의의 특징이 강했다”라면서 “이준석은 새로운 시대정신 중 하나인 능력 만능주의 전도사”라고 호평한다.

이준석 대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공정한 경쟁’을 주장하는 능력주의 신봉자이다. 그는 자신의 중학교 시절 경험을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의 사례로 든다. “중학생에 불과한 아이들 700명이 등수를 두고 다투었어요. 좀 잔인한 측면도 있지만 저는 그 시절의 공부가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고요.” (이준석 저/강희진 편, 『공정한 경쟁』)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라니, 기가 차다. 그는 “저를 ‘엘리트주의’라고 비난한다고 해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밝힌다. 강남만큼 사교육이 치열한 서울 목동의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끼리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을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같은 또래의 대한민국 중학생 가운데 목동에서 그런 입시 경쟁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의 아버지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증권회사 간부였다. (그의 아버지는 유승민 전 의원과 경북고·서울대 경제학과 동기동창이고 김부겸 국무총리와도 같은 동문이다.)

나아가 이 대표는 ‘정글의 법칙’을 공공연히 찬양한다.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은 정글이죠. 또한 정글에는 나름의 법칙이 있습니다. 약육강식입니다. 강자가 다 먹는 세상이죠. 미국은 이런 정글의 법칙, 약육강식의 원리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아요. … 그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보는 것이죠.” (『공정한 경쟁』)

이준석 대표가 인용한 정글의 왕국, 능력주의 사회라는 미국의 현실에 대하여,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늘어난 국민소득 대부분이 상위 10%에게 돌아갔고, 하위 50%는 거의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실질소득 기준으로 노동 가능 연령 인구의 중위소득은 약 36,000달러인데, 이는 40년 전보다 낮은 수준이다. 오늘날 가장 부유한 1%의 미국인이 하위 50%가 버는 것보다 더 많이 벌고 있다. 하버드와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소득 상위 1%(연봉 63만 달러 이상) 출신의 학생은 하위 50% 가정 출신 학생보다 많다. 노력과 재능만으로 누구나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미국인의 믿음은 더 이상 사실과 맞지 않다.” (『공정하다는 착각』)

샌델 교수를 인용할 것도 없이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의 와중에 미국의 실상을 똑똑히 보았다. 코로나19로 인한 미국인 사망자가 현재 617,166명으로 단연 세계 1위다. 미국이 최근에 치른 ‘5대 전쟁’에서 발생한 전사자를 전부 합친 수의 무려 6배에 달한다. (미국 의회조사국에 따르면, 5대 전쟁 참전 중 사망한 미국인은 베트남전 47,434명, 한국전쟁 33,739명, 이라크전 30,519명, 아프가니스탄전 1,909명, 걸프전 148명이다.) 이게 과연 이 대표가 말하는 “자연의 섭리”의 결과란 말인가?

미국이 세계 최고의 의술을 자랑한다지만, “강자가 다 먹는 세상” 미국의 의료제도는 형편없다. 낮은 의료보험 가입률과 허약한 보장성, 감당하기 어려운 높은 의료비용이라는 고질적 문제가 코로나19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난해 6월 AFP통신은 미국에서 코로나19로 62일 동안 입원 치료를 받은 한 70세 남성이 110만달러(약 13억2330만원)가 넘는 ‘폭탄 청구서’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고액의 보험 가입자들이야 걱정할 게 없겠지만, 서민들에겐 끔찍한 의료제도다. 2018년 기준으로 미국 인구의 8.5%(약 2,750만명)가 의료보험이 없다. 의료보험이 없으면 의사와 단 몇 분 동안 상담하는 데만 수백달러(수십만원)를 내야 한다. 기본 보험에 가입돼 있어도 환자 본인 부담금이 상당하다. 게다가 아파도 참고 견뎌야 하는 약 1000만 명(2017년 기준)의 불법 이민자는 의료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코로나19는 미국의 가면을 가차 없이 벗겨냈다. 미국의 감추어진 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제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폭로됐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라는 탄식이 나올 만큼 충격적이었다. 이준석 대표가 찬양해 마지않은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의 신세계가 아니었다.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가 아니라, ‘아메리칸 나이트메어(악몽)’의 나라였다.

정글의 법칙이 작용하는 생존경쟁의 각축장에서 살아가려면 각자 스펙을 쌓고 능력을 키워 경쟁에서 승리해 살아남는 수밖에 없다. 스펙이 변변치 않은 저스펙자는 고스펙자를 ‘리스펙(respect)’해야 하며, 찌질하게 조건 탓하지 말고 아니꼬우면 열심히 노력해서 레벨을 높이면 된다. 정글의 법칙을 찬양하는 이준석 대표야말로 능력주의의 화신이고 숭미사대 미국찬양론자이며 신자유주의의 끝판왕이라고 할 만하다.

능력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용어이다. 봉건사회는 태어날 때 신분이 정해져 인생이 결정되는 신분제 사회이다. 자본주의는 봉건사회의 신분제를 폐지하고 자유와 평등의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등장했다. 신분제가 폐지되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천명되었으나,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 양극화의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바로 능력주의이다.

능력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쓴 마이클 영은 “능력주의 사회의 끝은 사회 붕괴”라고 경고하였다. 능력주의의 나라 미국에서도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이 비등해지고 있다. 그런데 어찌 된 노릇인지 대한민국에서는 능력주의의 화신이 제1야당의 대표로 당선되자, 그걸 ‘보수의 혁신’이요 ‘정치의 세대교체’라면서 환호하고 있다. 덩달아서 능력주의를 찬양하는 얼빠진 지식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제정신들이 아니다. (2021년 6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