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쓸데없는 걱정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지난해 11월 ‘쓸데없는 걱정’에 대해 쓴 바 있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과 가장 끔찍한 악몽’ 2020.11.9.)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 세 가지-재벌 걱정, 연예인 걱정, 건물주 걱정-에 더하여, 급기야 미국 걱정까지 해대는 한심한 세태에 대한 비판의 글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4대 쓸데없는 걱정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5대 걱정을 추가해야 할 판이다. 정부와 여당 걱정이 그것이다. 자칭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 ‘민주당이 저러다가 국민의힘에 밀리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이들이 꽤 있다. 정부·여당 걱정을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비판하는 건 오지랖이 넓은 것을 탓하려는 뜻이 아니다. 민주당을 걱정하는 이들이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나는 4·7 재보선 투표일 직전 주에 쓴 칼럼(‘민주당 정부가 진보라는 착각’ 2021.3.29.)에서 “민주당 정부가 진보라고? 환상이고 착각이다.”라고 비판한 것을 비롯하여, “민주당의 갸륵한 부자 걱정이 눈물겨울 지경이다.”(‘부자 감세와 민주당의 정체’ 2021.5.31.)라고 직설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청와대와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국회의 단독 입법권까지 독차지한 민주당에 대하여 왜 걱정을 하는 건지,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은지, 당최 이해가 안 된다.

정부·여당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들의 본색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최근의 사례를 두 가지만 들겠다. 첫째, 종합부동산세 인하 조치다. 지난 18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종합부동산세 완화안’이 통과됐다. 그들은 지난해 8월 집값 폭등을 막겠다며 종부세 인상을 위한 종부세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그런데 개정된 법을 단 한 번도 시행하지 않고 뒤집어엎겠다는 것이다.

올해 기준으로 전국 주택(공동주택+단독주택) 중 종부세 부과 대상 주택은 3.3%에 불과하다. 96.7%가 종부세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대한민국 3.3% 최상위 금수저 부자들의 불편한 심기를 살피는 데만 신경을 쓸 뿐, 96.7%의 시민들은 안중에도 없다. 민주당이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을 표방하는 것은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한 위장 술책이며, 그들의 본색은 최상위 금수저 부자들의 정당임이 탄로 난다.

정부·여당은 잡으라는 집값은 안 잡고 되레 종부세를 잡겠다고 한다. 그들은 지난해 4·15 총선 때 ‘개혁을 위해 힘 있는 여당이 필요하다’고 표를 달라고 애원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단독 입법권의 압도적 권력을 갖게 된 ‘힘 있는 여당’ 민주당이 한다는 짓이 부자 감세 정책이다. 이런 정부·여당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묻고 싶다. 걱정이란 약자를 두고 하는 것이지 강자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지 않나?

그래도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밀릴까 봐 걱정이라고? 세상 쓸데없는 걱정이다. 지난달 24일 국민의힘이 종부세 부과 기준을 현행 9억원(공시가격)에서 12억원으로 올리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공시가격 12억원을 비율로 따지면 상위 1.9%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종부세만 놓고 보면 민주당(2%)과 국민의힘의 차이는 0.1%포인트이다. 도긴개긴이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자.

둘째, 지난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공휴일에 관한 법률 제정안(대체공휴일법)이 통과됐다. 대체공휴일법은 추석·설·어린이날에만 적용되던 대체 공휴일을 모든 공휴일로 확대한 것이다. 법안이 오는 29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의결되면 일요일인 광복절(8월 15일)부터 대체 공휴일(8월 16일)이 발생하게 된다. 개천절(10월 3일)은 일요일, 한글날(10월 9일)과 성탄절(12월 25일)은 토요일이어서 각각 10월 4일과 11일, 12월 27일이 대체 공휴일로 된다.

문제는,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개정 대체공휴일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근로기준법은 최저기준이다. 그 어떤 이유로도 적용제외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특히 그 적용에서 제외되는 이들이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가뜩이나 5인 미만 사업장은 현행 근로기준법상 공휴일도 유급휴일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쉴 권리에서도 배제돼 차별받아야 하는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언제든 해고될 수 있고 해고되더라도 구제신청을 할 수 없다. 연장·야간·휴일근로 시 통상임금의 50%에 해당하는 가산수당, 연차 휴가 등의 혜택도 없다. 주 52시간 근무제 대상도 아니며, 중대재해법의 적용 대상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공휴일 대상에서도 제외되어 차별 조항이 하나 더 추가되는 셈이다. 차별을 줄이기는커녕 되레 차별을 심화시키는 데 정부·여당이 앞장서고 있다.

‘힘 있는 여당’이 해야 할 일은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에 대한 입법이다. 그간 여러 정부 기관들(국가인권위원회, 법제처,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이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할 것을 권고해왔고, 고용노동부도 그 필요성을 인정한 바 있다. 민주당이 진정으로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이라면 단독 입법권은 이런 데 활용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정반대로 오히려 차별을 심화시키는 입법을 하고 있으니…. 민주당의 본색이 드러난다.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밀릴까 봐 걱정이라고? 거듭 말하지만, 세상 쓸데없는 걱정이다. 만에 하나 민주당이 차기 대선에서 정권을 잃고 야당이 된다고 한들, 그걸 왜 우리가 걱정해야 하나? 1등 재벌 삼성이 2등으로 바뀐다고 한들 그걸 왜 우리가 걱정해야 한단 말인가? 설령 민주당이 행정부를 넘겨준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국회를 단독으로 지배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 제1야당이다. 뭐가 그리 걱정할 일인가?

대한민국 1등 정당이고 정치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민주당을 걱정하는 것은 1등 재벌 삼성 걱정만큼이나 세상 쓸데없는 걱정이다. 최저임금 걱정을 해야 할 노동자가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상속세 걱정을 하고 있다면 제정신이 아닌 거다. 그래도 국민의힘에 밀려 2등이 될까 봐 걱정이라고? 최태원 회장의 1조원대 재산분할 이혼소송에 따른 SK그룹의 경영권 걱정을 하는 것만큼이나 넋 빠진 상태 같다.

금수저가 은수저 되고 은수저가 금수저 되는 변화가 발생해도 흙수저의 신분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금수저와 은수저의 자리다툼에 흙수저가 자기 일인 양 감정이입을 하면서 일희일비한다면 얼마나 슬픈 코미디인가?

진보를 자처하며 민주당 걱정을 하는 이들은 자기가 왜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아직도 민주당이 진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냉철하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착각과 환상에서 깨어나 자기 정체성부터 올바로 자각해야 비로소 쓸데없는 걱정에서 해방될 수 있다. (2021년 6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