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 없는 공정의 함정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부동산 시장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2018년, 2020년 두 차례 주택가격 폭등이 있었는데 세 번째 폭등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상반기(1~6월) 아파트값 상승률이 지난해 연간 상승률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4일 KB국민은행 월간 주택가격동향 시계열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 아파트값이 9.97% 상승해 이미 지난해 상승률(9.65%)을 넘어섰다.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이 12.97% 올라 지난해 연간 상승률(12.51%)을 뛰어넘었고, 상반기 기준으로는 2002년(16.48%) 이후 19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경기도 아파트값은 올해 상반기에만 15.35% 올라 2004년 통계 집계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 기간 시흥시(24.53%), 고양시(21.38%), 동두천시(20.58%), 의정부시(20.37%)가 20% 이상 올랐다. 인천도 14.90% 올라 상반기 기준으로 1989년(15.85%) 이후 32년 만의 급등세를 보였다. 서울은 8.43% 올라 상반기 기준으로 2006년(9.03%) 이후 15년 만에 최고치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분야가 부동산 자산 격차인데, 갈수록 태산이다. <한겨레>가 올해 1월 1일 발표한 새해 여론조사에 따르면, 양극화가 가장 심각한 분야는 부동산 등 자산 격차가 42.7%로 압도적 1위였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14.8%,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10.1%)

이처럼 부동산 문제가 최대의 민생 현안이 된 까닭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집값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의 지난달 23일 기자회견 보도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서울 아파트값은 평당 2,061만원에서 1,910만원(93%)이 올라 3,971만원이 됐다. 경실련이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에서 2021년 5월까지의 서울 아파트 11만 5천 세대의 시세변동을 분석한 결과다. 30평형 아파트로 환산하면 6.2억짜리 아파트가 5.7억이 올라 11.9억이 된 것이다. 같은 기간에 가구소득이 300만원 늘었으니, 비교하면 아파트 불로소득이 무려 190배에 달한다.

집이 없으면 졸지에 ‘벼락 거지’로 전락한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너도나도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2030 세대까지 ‘영끌빚투’(영혼까지 끌어모아 빚 내서 투자)에 뛰어들고 있는 판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울의 아파트 매매 건수는 5,090건으로, 연령대별로 보면 30대가 1,867건으로 가장 많고 40대(1,299건), 50대(828건), 60대(437건), 70대 이상(311건), 20대 이하(277건) 등의 순이었다. 2030 세대의 서울 아파트 매수 비중이 42.1%를 기록했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생애 처음으로 서울 부동산을 매입한 30대는 2019년 상반기 2만5,121명에서 올 상반기 4만9,068명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홍남기 부총리는 지난달 30일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부동산 시장의 과도한 레버리지와 금리 인상으로 집값이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경고했다. 도규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역시 지난 2일 금융리스크 대응반 회의에서 “수년간 지속해 온 통화 완화 기조가 바뀌는 부동산시장에 ‘검은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집으로 돈을 벌 수 없도록 하겠다’라고 수차례 공언했으나 공염불에 그쳤고, 정부를 믿었던 지지자들에게 실망과 배신만 안겨줬다. 불로소득 척결을 외치면서도 정작 불로소득을 챙기려는 고위 공직자들의 행태가 확인된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최근에도 청와대 김기표 반부패비서관이 투기 의혹으로 사퇴했다. 그러니 ‘내로남불’의 부동산 대책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 속에서도 자조와 한탄이 이어지고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말을 들은 사람은 ‘벼락 거지’가 됐고, 반대로 안 들은 사람은 ‘벼락 부자’가 됐으니, 그럴 수밖에 더 있겠는가.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는 ‘집값이 내려갈 테니 집 사지 말라고 정부가 말린 적이 한두 번이었냐’며 오히려 정부가 말릴 때가 사야 할 시점이라는 주장까지 횡행하고 있다. 26번의 부동산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잡히기는커녕 천정부지로 뛰고 있으니, 정부 정책이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앞날이 더 걱정이다. 올해 상반기 수도권 아파트값이 급등하게 된 요인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건설 계획 확정이다. GTX 노선을 따라 집값이 뛰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그런데 내년 대선 경주가 벌써 시작되었다. 과연 어떤 부동산 정책이 나올까. 지난주 칼럼에서 썼듯이, 여야가 한통속으로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를 완화하는 입법을 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부동산 규제 완화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여야가 경쟁적으로 선심성 지역개발 공약을 남발할 게 뻔하다. 그러면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집값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유력 대선 주자들이 지난주에 잇따라 출마 선언을 했다. 그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단어가 ‘공정’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1일 출마 선언에서 ‘공정 성장’을 강조하며 공정을 13회 언급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달 29일 ‘공정과 상식’을 주제로 출마 선언을 하며 공정을 9차례 거론했다.

유력 대선 주자들의 출마 선언문에서 알 수 있듯이, 대선이 다가올수록 공정 논란이 한층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공정의 가치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터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특권과 반칙이 만연해 있고 그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공분이 강하기 때문이다.

공정을 앞세우는 주장은 출발선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복불복’이고 해결이 요원한 문제이니 제쳐놓고, 과정이라도 공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불평등의 세습 구조는 어쩔 수 없으니 그대로 존치하고, 마음껏 경쟁할 수 있도록 절차의 공정이라도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싸하게 들린다.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인 부동산 문제에 대해 공정의 논리를 적용해 보자. 부동산 자산은 매매 과정에서 특혜와 반칙이 없고 절차상의 하자가 없이 공정해야 할 것이다. 공정의 논리에 따르면, 부동산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불공정(특혜·반칙·탈법·불법)이 없으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절차가 공정하면 부동산의 양도차익이 얼마가 발생하건 문제 될 게 없다고 한다면, 공정이 불로소득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된다. 절차가 공정하면 부동산 소유의 불평등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공정이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된다. 정의 없는 공정, 평등 없는 공정의 함정이다. 공정을 앞세우고 강조하는 이들이 평등과 정의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 이유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최대 과제는 불평등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 세습되는 불평등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것이다. 세습되는 불평등이 고착된 현실에서는 공정의 원칙이 지켜진다고 해도 불평등이 해결될 수 없다. 태어나서부터 시작의 출발선이 다르고 처음부터 경쟁에 참여할 기회도 봉쇄된 상황에서 형식적 공정만 밀어붙이면 결국 불평등이 더 심각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평등 없는 공정의 함정이다. (2021년 7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