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년 밀린 숙제, 전작권 환수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지금으로부터 71년 전 7월 14일, 대한민국은 미국의 일개 장군에게 한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넘겨줬다. 1950년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에게 보낸 〈대한민국 육해공군 지휘권 이양에 관한 공한〉을 통해 한국군의 지휘권을 미국에게 이양했다.

공한(公翰)은 공적인 편지를 뜻한다. 이 대통령은 이 공한에서 “본인은 현 작전상태가 계속되는 동안 일체의 지휘권을 이양하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기는 바”이고, “한국군은 귀하의 휘하에서 복무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할 것이며, 또한 한국 국민과 정부도 귀하의 전체적 지휘를 받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나라의 주권을 갖다 바치는 것은 만고의 수치인데, 온갖 미사여구로 아첨을 늘어놓으면서 군대와 국민을 모욕하고 있다. 치욕스럽다.

1975년 유엔군 사령부가 해체될 당시 마지막 유엔군 사령관을 겸했던 리처드 스틸웰 주한미8군 사령관은 한국군의 지휘권이 미국으로 넘어간 것을 “지구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주권의 양도”라고 말했다. 주권을 다른 나라에 이양하는 것은 대통령의 통치 재량권을 넘어선다. 주권을 다른 나라에 넘겨주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이다. 게다가 국무회의도 거치지 않고 국회 비준 동의도 없이 달랑 편지 한 장으로 작전지휘권을 넘겨줬으니, 지구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이양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주권을 말할 때 외교주권과 군사주권을 핵심으로 꼽는다. 국제사회에서 부탄을 온전한 독립국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외교권과 군사권을 인도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군사주권이 없으니 비슷한 취급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한때 분단국이었던 독일(서독)도 군 통수권을 미국에게 이양한 적이 없다. 타이완도, 아시아 최대의 미군기지가 있는 일본도 군사주권을 미국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71년 전 이승만 대통령의 작전지휘권 이양 자체가 헌법 위법의 원천 무효이지만, 그것을 논외로 하더라도 애초에 군 지휘권을 넘겨주는 조건은 “현 작전상태가 계속되는 동안”이라고 밝혔었다. 백 보 천 보를 양보해서 전시라는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졸속으로 작전지휘권을 이양했다고 치자. 그렇지만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을 통해 교전 상태가 중지됐으므로 한국 정부가 작전지휘권을 바로 돌려받았어야 정상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1994년 말이 돼서야 겨우 작전지휘권의 일부만을 돌려받았다. 작전지휘권을 평시와 전시로 억지로 분리하여 평시작전통제권만을 환수했다. 당시 보수 언론들의 논조도 전시작전지휘권(전작권)까지 빨리 돌려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전시작전통제권까지 환수하는 것이 다음의 과제다.”(조선일보 1994년 12월 1일 사설) “휴전이 성립된 지도 41년이나 지났으니 작전권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하루속히 되찾아야 할 일이다.”(동아일보 1994년 10월 9일 사설)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전작권 환수에 나서자 보수 언론들의 태도가 돌변했다. 그들은 전작권 환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부추기는 데 지면을 아낌없이 할애했다. “前국방장관들 ‘작통권 논의중단 성명서’ 준비”(조선일보 2006년 8월 10일), “전작권 환수를 주권으로 보는 건 잘못”(중앙일보 2006년 8월 10일), “戰時작전권에 관한 대통령의 傲氣와 모험주의”(동아일보 2006년 8월 10일) 등등. 감추었던 친미사대의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2006년 9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작권 전환에 대해 합의가 이뤄졌고, 2007년 2월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2012년 4월 17일부로 한국으로 이양한다’라고 전작권 환수 시점이 정해졌다. 당시 국방부 관계자들은 4월 17일을 선택한 데 대해, 작전지휘권이 처음 이양된 날인 7월 14일의 숫자를 거꾸로 조합한 4월 17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합참은 2005년 5월 전작권 환수 방안을 연구하면서 이 연구작업 명칭을 7월 14일을 연상해 ‘7·14계획’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작권 전환 합의는 기만임이 드러났다. 2010년 6월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전작권 전환 시점을 2015년 12월 1일로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2014년 10월 박근혜 정부는 미국 정부와 전환 시기를 2020년대 중반으로 재연기하자고 합의한 데 이어, 2015년 11월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계획’에 합의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합의가 번복되고 전환 시기가 계속 미뤄지더니, 결국에는 아예 전작권 환수 시점마저 없애버린 것이다.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이란 ‘전환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반환 시점을 특정하지 않고 미국이 전작권을 계속 행사한다는 내용이다. 애당초 그 무슨 조건을 갖다 붙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현 작전상태”가 끝났으므로 정전협정 체결 이후 진작에 작전지휘권을 돌려줬어야 마땅한데도, 터무니없는 조건을 들먹이는 까닭은 작전지휘권을 반환하지 않겠다는 속셈을 보여준 것이다.

탄핵으로 끌어내린 박근혜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적폐 청산’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바로잡은 게 아니라 그대로 계승하였다. 2017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그리고 2021년 5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조건”을 재확인해주고 만 것이다. (※ 세부적인 내용은 지난 칼럼들-2020년 8월 17일 칼럼 <미완의 해방과 진정한 광복>, 2020년 10월 19일 칼럼 <임기 내 전작권 전환 무산>, 2021년 5월 24일 칼럼 <철통같은 한미동맹의 재확인>-에서 이미 다뤘으므로 반복하지 않는다.)

거듭 확인하지만, 작전지휘권 이양은 애당초부터 위헌이었다. 그래서 작전지휘권 이양은 원천 무효이므로 폐기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국회에서도 작전지휘권 이양 폐기 건의문이 제출되기도 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제6대 국회 당시 1966년 10월 29일 ‘국군의 작전지휘권 이양에 관한 협정에 대한 건의안’이 제안되었다.

육사 출신의 예비역 준장으로 중앙정보부 기획실장을 지낸 민주공화당 최영두 의원이 대표발의자였고, 그 외 11명의 국회의원들이 박정희 정부에게 작전지휘권 이양 협정의 폐기 조치를 강구하라고 제안했다. 이들은 “작전지휘권 이양이 중대한 국권의 포기일 뿐 아니라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지 않아 명백히 위헌 무효”라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또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월남에서도 그러하고 어떤 국가도 작전지휘권을 다른 나라에 이양한 예를 발견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박정희 독재정부 치하에서도 작전지휘권 이양은 위헌 무효이므로 폐기하고 작전지휘권을 환수해야 한다고 바른 소리를 내는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그때로부터 55년이 지나 지금은 21대 국회이며 헌정사상 최초로 ‘민주파’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집권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전작권 환수라는 71년 밀린 숙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그리고 진보를 자처하는 의원들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7월 14일을 맞이하는 단상이다. (2021년 7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