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전략, 적대에서 동맹으로?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빈센트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이 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Foreign Affairs》에 ‘북한과의 일괄 타결’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그는 한반도 정세에 대한 나름의 분석에 입각하여 한미 두 나라 당국을 향해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등 새로운 대북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북한을 동맹으로 만들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2년 7개월간 한미연합사 사령관을 역임한 브룩스는 자기 휘하에서 부사령관으로 일한 임호영과 공동으로 기고한 글에서 새로운 대북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과거 한미가 북한에 대해 취했던 적대 정책, 곧 군사적 압박, 경제제재, 중국의 협조를 통한 비핵화 시도 등이 유효하지 않았다는 평가이다. 임호영 전 부사령관은 4일 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략적 성급함을 드러냈다. 둘 다 잘못됐다.”라고 지적했다.

브룩스 전 사령관은 네 단계의 대북 접근법을 제안했다. 첫 번째 단계로, 북한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북한이 대화에 임하면 인도주의와 의료 지원 등 즉각적인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자고 주장했다. 군사적으로는 종전선언을 제안했는데, 이로써 추가적인 신뢰구축 조치가 가능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길을 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종전선언을 현재의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과 혼동돼서는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두 번째 단계로,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중국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재정립하자고 주장했다. 이 단계에서는 미국과 한국이 북한 경제 활성화를 위해 과감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북한 기반시설 개발기금 조성, 남북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을 통해 북한의 중국 경제 의존도를 줄인다는 구상이다. 한미가 북한과의 군사 관계도 정상화하여 군사적 분쟁을 방지하는 조치를 취하고, 이렇게 되면 유엔군사령부의 역할도 축소된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 단계로,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주장했다. 핵무기의 검증된 파괴가 이뤄지고, 남북한 군대가 현실적으로 서로를 침공할 수 없을 때 정전협정을 항구적으로 대체하는 협정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다만 평화협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상응하는 조치와 양보를 전제로 한 ‘전략적 신중함’을 견지하고 한미동맹으로 확고한 방위태세를 견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 단계로, 평화협정을 넘어 북한을 한미동맹 주도의 질서에 완전히 통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계에서 한국은 북한의 주요 교역상대·직접투자자가 되고 미국은 제2의 교역국이자 국제금융 조달의 조력자 역할을 하면서 남북 자유무역협정을 인도-태평양 무역 파트너십으로 확대하여 북한이 아시아 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이런 조치를 통해 동북아에 새로운 경제 질서가 공고해지고, 동북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쪽으로 새로운 세력균형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과의 일괄 타결’에서 주장하는 핵심 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동북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새로운 세력균형의 구축이 한미의 전략적 목표이며, 이 목표 달성을 위해 한미동맹체제에 북한을 편입시켜 공동으로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하려면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가 필요하고 북한을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로 수용하기 위해 북한이 원하는 경제부흥과 안전보장을 제공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브룩스 전 사령관의 주장은 지금까지 미국이 취해왔던 대북 전략의 방향을 180도 선회하자는 파격적 제안이다. 곧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정치·경제·군사 제재를 가하여 체제를 전복하는 적대 전략에서 일대 전환하여 북한을 동맹으로 끌어들이자는 새로운 전략이다. 만일 미국의 대북 전략이 이렇게 바뀐다면 동북아와 한반도의 지정학에서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거대한 변화가 벌어질 게 틀림없다.

물론 미국 내에서 이런 주장이 대세인 건 아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으로 입안되어 곧 시행된다는 뜻도 아니다. 미국이 중국과 대립하면서 갈등의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건 맞지만, 북핵 문제에 대해서 여전히 미국은 중국과 공조한다는 입장이다. 유엔을 앞세운 미국의 대북 제재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래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가까운 장래에 미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대북 정책을 전환할 가능성은 0 퍼센트에 가깝다.

주목하는 것은, 《포린 어페어스》에 예비역 미국군 대장과 한국군 대장이 공동으로 기고한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라는 사실이다. 《포린 어페어스》는 미국외교협회(CFR)가 격월간으로 발행하며, 1922년에 창간된 보수 성향의 외교전문지이다. 미국 대통령 후보나 측근 참모들도 기고문을 게재할 만큼 미국의 외교정책에 있어서 권위와 영향력을 인정받는 잡지이다. 한미연합사령관을 역임한 미국의 최고위급 장성의 새로운 대북 제안이 《포린 어페어스》에 실린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한반도 상황을 숙지하고 있는 브룩스 전 사령관의 제안은 미국이 대북 전략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브룩스와 임호영은 지난 2016~2017년 북한 핵·미사일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당시에 한미연합사에서 사령관과 부사령관으로 일했던 장성들이다. (브룩스는 2016년 4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사령관으로, 임호영은 2016년 9월부터 2017년 8월까지 부사령관으로 각각 재임했었다) 기고문이 학자나 연구원의 주장이 아니라 전선에서 복무했던 군 최고 지휘관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더해진다.

브룩스 전 사령관이 ‘북한과의 일괄 타결’이라는 새로운 제안을 내놓게 된 것은 한반도 정세 변화의 산물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었으며, 정세는 미국이 대북 전략을 대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2주 전 칼럼(‘정전체제 해체의 법칙’)에서 “북측이 핵무장을 완성함으로써 한반도에서는 핵 억지력의 문법이 작동하게 되었다. 핵 억지력의 문법이 작동하게 되면 한반도에서의 전면전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로 바뀐다. 68년의 정전체제라는 역사적 적폐가 청산되고 한반도에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필연의 법칙이다.”라고 정리한 바 있다.

법칙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포린 어페어스》에 ‘북한과의 일괄 타결’이 실린 것은 미국 내부에서 대북 전략의 전환과 새로운 정책 수립을 위한 공론이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전체제 해체와 평화체제 확립은 막을 수 없다.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관계 타개를 위해 나서지 않으면 미국 정부는 점점 막다른 궁지로 내몰리는 수밖에 없다. 거대한 전환은 현재 진행형이다.

문제는 한국 사회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지정학에서 거대한 전환이 진행되고 있는데, 정작 한국 사회에서는 이 중대한 사변적 변화에 대하여 아예 관심조차 없는 것 같다. 가령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나선 후보들은 많으나 이 중대 현안을 대선 의제로 삼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 한반도 남쪽의 우리만 시대의 변화에 뒤떨어져 낙오하는 게 아닐까. (2021년 8월 9일)